트라우마에 스러진 10대…방치된 ‘이태원 참사 치유’

2022.12.14 20:55 입력 2022.12.15 10:33 수정

친구 2명 잃은 고교생 극단 선택

“희생자 모욕 댓글 보며 고통받아”

참사 정쟁화·중대본 조기 해체로

수습커녕 피해자들 더 힘들게 해

“범정부 차원 재난 대응 부재한 탓”

이제서야 너희를…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이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광장에 마련된 시민분향소에서 희생자의 영정을 만지며 오열하고 있다. 이날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시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이 설치한 시민분향소 제단에는 영정 158개가 놓였다. 검은 리본이 달린 76개 액자에는 희생자의 사진과 이름이 담겼다. 유가족들이 얼굴이나 이름 공개를 원하지 않은 나머지 액자에는 국화꽃 사진이 끼워졌다. 한수빈 기자

이제서야 너희를…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이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광장에 마련된 시민분향소에서 희생자의 영정을 만지며 오열하고 있다. 이날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시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이 설치한 시민분향소 제단에는 영정 158개가 놓였다. 검은 리본이 달린 76개 액자에는 희생자의 사진과 이름이 담겼다. 유가족들이 얼굴이나 이름 공개를 원하지 않은 나머지 액자에는 국화꽃 사진이 끼워졌다. 한수빈 기자

‘이태원 핼러윈 참사’ 생존자인 고등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 학생은 참사 이후 심리치료를 정기적으로 받았지만 트라우마를 끝내 극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심’의 사고 수습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점검해서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태원 참사를 겪은 고등학생 A군이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의 한 숙박업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족 의사에 따라 부검은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A군은 참사 당일 현장에 있다가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함께 이태원에 갔던 친구 2명은 사고로 숨졌다. A군은 병원에 입원한 지 이틀 만에 죽은 친구들 장례식에 가야 한다며 퇴원했다고 한다. 참사 발생 일주일 만에 등교한 A군은 정신적 충격으로 힘들어했고, 이 때문에 정기적으로 심리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A군은 특히 악성 댓글에 상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A군 어머니는 이날 MBC와 인터뷰하며 “(아들이) 11월 중순 정도에 울면서 얘기한 적이 있다. ‘연예인 보러 갔다가 죽은 것 아니냐’고 죽은 친구들을 모욕하는 댓글을 보면서 굉장히 화를 많이 내더라”고 했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부상을 입었다가 회복 중인 학생은 14일 현재 5명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생존자 학생 소속 학교에 대해 관할 Wee 센터에서 긴급 심리정서 지원상황을 점검하고,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한 경우 지원할 계획”이라며 “일반 학교에 대해서도 이태원 참사 트라우마 치유를 위해 교직원, 학생, 학부모, 관리자 등 대상별 심리정서 지원을 유관기관과 협력해서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피해자 중심의 참사 수습이 미흡하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재난대응기구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사건 발생 한 달 후인 지난 2일 해체했다. 중대본 구성 및 운영 등에 관한 규정은 ‘대규모 재난이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어 대응·복구하는 기간’ 동안 기구를 운영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그런데도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의 심리적 치유와 돌봄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에 중대본을 조기 해체한 것이다.

과거 사례와 비교해도 중대본 운영기간이 짧은 편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중대본은 범정부사고대책본부(범대본)로 확대됐다. 운영 기간도 4월16일부터 11월18일까지 7개월간이었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행정안전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19년 ‘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고’ 발생 시에도 중대본은 5월30일부터 7월30일까지 2개월간 운영됐다.

서울시자살예방 센터장을 지낸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부가 중대본을 일찍 닫아버렸는데, 이 기구가 없으면 범정부 차원의 지원이나 대책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중대본이 있을 때보다 유가족과 생존자들의 심리지원을 위한 소통이 잘 이뤄지지 못할 것”이라며 “재난을 범부처 차원에서 대응하지 않으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권, 생존자·유족의 심리적 외상 키우고 책임 떠넘겨

참사를 ‘정쟁적 사안’으로 대하는 여권의 태도, 거기에서 비롯된 일부 여권 인사들의 막말이 제대로 된 수습과 치유를 저해하고 유족과 생존자의 심리적 외상을 키운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0일 자신의 SNS에 ‘이태원이 세월호와 같은 길을 가서는 안 된다’는 글을 올렸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도 지난 11일 SNS에 ‘애초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는) 합의해줘서는 안 될 사안이었다’고 적었다. 김미나 국민의힘 창원시의원은 유가족들을 향해 ‘나라 구하다 죽었냐’고 막말을 했다가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에 회부됐다.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시민참여위원회’에서 활동 중인 이재근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국회의원들의 막말과 참사 유족들을 향한 모욕성 댓글 등이 생존자들을 위축시킬뿐더러 일상으로의 복귀를 방해하는 상황”이라며 “정부와 국회가 생존자들에 대해 더욱 적극적인 지원과 지지를 표해야 하는데 중대본 해체 이후 사실상 책임을 생존자들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현수 교수는 “유가족이나 생존자들이 모여 함께 울고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분향소를 비롯한 애도의 공간을 더욱 장기적으로 마련하고, 유가족들을 위한 세밀한 치료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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