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아빠들은 왜 모였을까···“아이 처음 키우는데 물어볼 데가 마땅치 않아요”

2024.06.04 06:00 입력 2024.06.04 10:33 수정

‘100인의 아빠단’ 참가자 윤종현씨가 지난 27일 세종시의 자택 주변 오솔길에서 딸 시아양(4)과 함께 걷고 있다. 박용필 기자

‘100인의 아빠단’ 참가자 윤종현씨가 지난 27일 세종시의 자택 주변 오솔길에서 딸 시아양(4)과 함께 걷고 있다. 박용필 기자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건지 알고 싶은데, 물어볼 데가 마땅치 않아요” 세종 지역 공무원인 우용익씨(36)는 아내와 5살 아들의 육아를 분담한다. 그러나 아이를 처음 키워보는 초보아빠 우씨는 막막할 때가 많다.

지난달 27일 경향신문과 만난 그는 “특히 집에서 엄마는 친구 역할, 아빠는 주로 훈육 역할을 맡고 있는데, 자칫 잘못된 훈육으로 아이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된다”며 “다른 집에선 어떻게 키우는지 알고 싶어 수소문 끝에 ‘100인의 아빠단’에 참가하게 됐다”고 했다.

‘100인의 아빠단’은 지방자치단체들이 3~7세 자녀를 둔 지역 내 초보 아빠들의 커뮤니티를 만들어주는 사업이다. 맞벌이가 필수인 시대, 공동 육아도 필수다. 그러나 이웃, 선후배, 직장 동료들과 커뮤니티를 곧잘 이뤄 육아 정보 등을 나누는 엄마들과 달리 아빠들은 정보가 부족하다. 동네 아빠들끼리 육아 노하우부터 학원 정보, 야외 활동 콘텐츠까지 서로 나눌 수 있게 하려는 게 이 사업의 취지다. 지난 18일엔 세종시에서 ‘제6기 세종 100인의 아빠단’의 발대식이 열렸다.

아빠단 커뮤니티를 통해 영유아 아빠들은 ‘아빠 요리사를 위한 간식 레시피’ 같은 것들을 , ‘딸 바보’ 아빠들은 ‘아빠와 아이가 함께하는 꽃꽂이 교실’ 같은 이벤트를, 학령기 자녀를 둔 아빠들은 동네 학원 정보 등을 주고받는다. 우씨는 “아이들과 함께 가볼만한 곳이나 함께하면 좋을 놀이 등의 콘텐츠를 얻는 게 쏠쏠했다”고 했다.

세종 지역 공기업에 다니는 윤종현씨(35)의 경우 올해부터 아빠단에 참가 중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다른 아빠들과 나누고 싶다고 했다. 그는 “아빠가 아이를 키우는 게 엄마가 키우는 것보다 나은 점도 많다”며 “아빠들은 엄마만큼 준비물을 꼼꼼하게 챙기지도 못하고 아이들과 정서적 대화를 나누는 것도 서툴지만 아이들에게 보다 도전적인 경험과 생각을 줄 수는 있다”고 했다.

그는 “아이를 데리고 전국의 명소와 거의 모든 지역 축제를 돌았고, 템플스테이와 ‘한 달 살기’도 했다”며 “낯선 곳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를 본 적이 있는데, 우리 딸은 오히려 들뜬다. 아빠와 함께 수많은 낯섦을 헤쳐나갔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다른 참가자 설창환씨(40)는 “아이들은 오히려 내게 정서적 유대감을 더 느낀다”고 했다. “아이의 몸집이 커지면서 아이를 안거나 업는 건 이제 내 몫이 됐다”며 “아이를 안고 잘 때 아빠와 몸이 닿은 아이는 정서적 안정감 속에 잠이 드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100인의 아빠단’ 참가자 설창환씨(오른쪽)가 지난 4일 아내와 두 자녀와 함께보성 율포해수욕장을 찾았다. 설창환씨 제공

‘100인의 아빠단’ 참가자 설창환씨(오른쪽)가 지난 4일 아내와 두 자녀와 함께보성 율포해수욕장을 찾았다. 설창환씨 제공

그는 시대가 달라졌음을 피부로 느낀다고 했다. “우리 회사에선 어린 자녀를 둔 남자 직원들끼리 모여 육아 얘기를 나누는 게 낯선 풍경이 아니다”라며 “술자리에서 일 얘기, 돈 얘기, 정치 얘기만 하던 예전과는 다르다”고 했다. “회식 자리에 아이를 데리고 가곤 한다. 아이가 함께 있다 보니 험담이나 갑질·폭언 같은 건 등장하지 않는다. 아이들 안전 때문에 과음을 하지도 않는다. 가족 모임 같은 분위기가 형성될 때도 있다”고도 했다.

그는 “아빠가 아이를 키우는 게 보편화되는 시대는 아마도 지금이 처음일 것”이라며 “그러나 아빠들의 육아를 위한 기반과 사회적 배려는 아직은 충분치 못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엄마와 아빠, 두 사람 모두의 고민과 사랑이 아이에게 골고루 전해지는 게 ‘독박 육아’보다 바람직할 것”이라며 “밤늦게까지 사무실이나 회식 자리에 아빠들을 잡아두기보단 아이 곁으로 보내주는 배려 같은 게 직장 문화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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