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처 총리 흉내는 시대착오

2013.12.25 20:43
홍기빈|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대대적인 민영화 흐름에 반대가 거세다. 철도 파업은 물론 의료계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으며 ‘안녕’ 대자보도 크게 확산되고 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이에 강력하게 대응하고 민영화를 밀어붙이라는 주문이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나오고 있다. 하필 현직 대통령과 코레일(철도공사) 사장이 모두 여성이다 보니, 1980년대 영국에서 초강경 대응으로 민영화 등 시장 개혁의 반대를 분쇄한 ‘철의 여인’ 대처 전 총리가 빈번하게 그 모범으로 불려나오고 있다. 이는 한마디로 심각한 시대착오로서, 나라 전체에는 물론 보수 진영의 앞길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경제와 세상]대처 총리 흉내는 시대착오

20세기 자본주의에는 대략 30년에서 40년에 이르는 순환 주기가 존재한다. 대처 총리의 80년대 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시 그 전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전후 51년까지 집권했던 노동당의 공세 아래에서 대형 산업의 국유화와 공공 부문의 강화는 향후 30년간 영국 자본주의의 중요한 특징으로 자리 잡는다. 위기를 맞은 산업 부문에 대한 고통스러운 합리화 대신 고통없는 하지만 아주 비효율적인 국유화가 이루어질 때가 많았고, 지나치게 강력해진 공공 부문은 사회적 합의와 통제를 벗어나 집권 노동당 내각조차 손을 대기 힘든 존재가 되었다. 70년대 들어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산업 구조 전환 등의 와중에서 영국이 IMF에 손을 벌리는 큰 경제 위기가 나타났음에도 이러한 추세는 계속 영국 사회의 변화를 가로막았다. 특히 전면적인 공공 부문의 파업으로 영국 사회 전체가 마비되다시피 했던 1979년의 ‘불만의 겨울’을 지나면서 많은 이들의 참을성이 바닥이 났고, 기존 영국 자본주의 구조에 대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확산되었다. 이것이 ‘철의 여인’ 대처의 파격적인 통치 행태가 최소한 사회 일각의 강력한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

그 후 다시 30년이 지났다. 이후 공공 부문의 민영화와 금융 자본주의 특히 투자자의 권력 강화는 전 세계 자본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으로 자리잡는다. 공공 부문은 비효율과 부패의 장이요, 민간 부문은 효율과 혁신의 장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선악의 이분법이 ‘과학’처럼 자리잡으면서 민영화는 절대적 지상 명령이 되었고, 투자자들이야말로 이 세상을 가장 합리적으로 만들어주는 혁명가들이라고 여겨져서 일국 내에서나 지구적 차원에서나 이들의 이익은 일체의 민주주의적 통제와 규제가 침범해서는 안되는 성역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이러한 교리 또한 산업 자본주의의 끊임없는 기술 변화와 산업 및 사회 구조 전환의 물결에서 낡은 질곡이 되어 전면적인 저항과 반대에 직면하고 있다.

공공 부문의 민영화가 사회적 후생을 실제로 증대시켰다는 증거는 찾기 어려운 반면, 이것이 공공의 소중한 재산을 소수의 지배 세력이 공공연히 사유화하는 짓이라는 비난은 갈수록 거세져왔다. ‘법과 질서’라는 이름 아래 온갖 강경 수단으로 이러한 극단적 조치를 마구 밀어붙여 민주적 합의와 절차를 뭉개버리는 통치 방식에 사람들의 염증은 계속 커져만 갔다. 그리하여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영국에서 대처는 ‘러시아를 망친 레닌’과 비교되는 오명을 쓰게 된다.

이제 지금의 한국 상황을 보라. 안됐지만 80년대 대처를 불러냈던 초강력 노조나 초대형 공공 부문 같은 것은 여기에 없다. 오히려 지난 정권 이래 사람들이 염증을 느껴온 것은 국가 권력을 둘러싼 세력이 소수의 특권 계층들만이 이득을 볼 것이 뻔한 각종 조치들을 마구 밀어붙이는 행태였다. 그리고 이에 반대하는 이들에게는 ‘법과 질서’를 빌미로 무자비한 폭력으로 눌러버리는 것도 지긋지긋하게 본 바였다. 작년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 진영이 ‘경제민주화’와 ‘복지 국가’를 공언했던 것은 분명히 이러한 시대정신의 흐름을 읽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어째서 느닷없이 철지난 80년대 대처 총리 기록 영화를 2014년 한국에 틀겠다는 황당한 발상이 나오는 것일까?

이는 연출자의 의도와는 달리, 보수 진영의 이미지를 강력한 리더십이 아니라 ‘불만의 겨울’의 주범인 없어져야 할 구태 세력으로서 강력하게 각인하는 엉뚱한 결과만 낳을 것이다. 지금 정말로 사람들이 목마르게 원하는 리더십의 혁신은 대화와 토론을 통한 사회적 합의의 도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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