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체로 당당한 아름다움

2016.09.22 21:09 입력 2016.09.22 21:25 수정
김현진 에세이스트

‘별내작은말학교’에서 말과 함께 일하면서 내가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전처럼 마음 편하게 영화 같은 걸 즐기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얼마 전 <황야의 7인>을 리메이크했다고 하는 <매그니피센트 7>을 보러 갔다.

[별별시선]그 자체로 당당한 아름다움

그런데 다이너마이트가 뻥 터져서 말들이 내팽개쳐지는 장면이나 말 우리를 가운데 두고 총격전이 벌어지는 것에만 신경을 쓰며 “아니 말! 말 어떡해!” 하며 피 흘리는 미남 배우의 안위보다 넘어져 네 다리를 버둥거리는 말의 생사만 확인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영화 사상 가장 멋진 기병전으로 꼽히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 중 ‘로한’ 기마대 돌격전 같은 장면도 전처럼 편하게 볼 수 없다. 창에 꿰뚫리고 화살의 비를 맞아 쓰러지는 말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말 산업은 현재 경마에 대부분 편중돼 있다. 그래서 ‘말 산업’ 같은 기사를 보면 혈통이 어떠어떠한 잘생긴 말의 얼굴을 떡하니 올려놓고 “XXX 드디어 씨수말 데뷔! 데뷔 기념으로 목장당 1회씩 무료 교배!” 이런 커다란 글씨에 느낌표를 아끼지 않는 광고 천지라 “아이고 말의 세계는 좀 노골적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곰곰이 보니 노골적인 것은 사람이지 말이 아니다.

나는 경마의 매력을 잘 모르지만, 그 짜릿함을 알고 말을 빨리 달리게 하고 싶은 것도 결국 사람의 욕심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말은 참 신기한 동물이다. 세상천지에 어느 동물이 등에 누굴 태우고 걷거나 달리고 싶을까. 그런데 순순히 안장을 올리고 복대를 차고 사람이 가자는 대로 가는 걸 보면 신기하기 짝이 없다.

몽골 설화에 따르면 사슴이 말이 먹을 풀을 몰래 먹어치워 말이 화가 나 있었다. 그때 사람이 말에게 다가와 안장과 굴레를 채우게 해 준다면, 사슴을 잡아 복수를 해 주겠다고 제안한다. 말은 그만 그걸 받아들여 그때부터 말은 사슴 사냥을 하고, 사람을 태우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고 한다.

홋카이도의 농사말처럼 몸무게가 1t이나 나가는 힘센 짐말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일하는 작은말학교의 말들은 고작해야 염소만 한 조그만 말들이다 보니 위압감보다는 귀엽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50㎏ 정도 나가는 조그만 막내말 ‘제니’가 갑자기 마장을 마구 달리기 시작하자 한가롭게 마장을 노닐던 다른 말들도 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마침 말똥을 치우느라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들고 엉거주춤 서 있는 내 앞을 말들이 갈기를 휘날리며 휙휙 무섭게 달려 나갔다. 조그만 ‘고셔’가 내 발을 밟아 엄지발톱이 그대로 빠진 다음이라 덜컥 무서웠다. 부딪혀서 짓밟혔다간 갈비뼈 서너 대 나가는 건 금방일 거 같았다. 일단 말똥이 잔뜩 든 쓰레받기를 꼭 붙잡고 벽에 바짝 붙었다.

‘다그닥다그닥’ 소리를 내며 네 다리로 땅을 박차고 아무 이유 없이 무조건 달리는 말들의 모습이 문득 무척 아름다워 보여서, 나는 숨을 죽였다. 사람에게 잘 보이건 말건 전혀 상관하지 않는 존재들이 간혹 내뿜는 아름다움은 그렇게 압도적이다. 이럴 때면 ‘우리가 그토록 아름다움을 숭배하는 것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멸시하기 때문이다’라는 릴케의 글귀를 떠올린다.

인간은 우리가 세상의 중심에 존재하는 게 너무나 마땅한 듯이 지금껏 살아와서, 다른 동물들에게는 잘 보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달리는 말들의 그 자체로 당당한 아름다움을 보면, 마치 그것이 우리를 멸시하는 듯 느끼게도 된다.

일상에서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이러한 아름다움을 볼 때, 인간으로 태어난 비루함과, 인간으로 태어난 고마움이 동시에 찾아온다. 우리는 더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등에 태워 주고, 무시무시한 창을 향해 함께 내달리고, 안겨 주고, 쓰다듬게 해 주고, 위로해 주고 심지어 털가죽을 내주고 잡아먹혀 주는 그 모든 인간 아닌 것들에게.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