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달의 중심에서 불효를 외치다

2018.05.09 21:14 입력 2018.05.09 21:17 수정

[직설]가정의달의 중심에서 불효를 외치다

얼마 전 어버이날을 맞아 불효에 대해 생각했다. 자식이 부모에게 욕설을 퍼붓거나 주먹과 발길질을 내리꽂는 일은 명백한 불효이다. 나로서는 이런 불효만큼은 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러나 자식이 부모의 비위를 맞추지 않는 행위 전반을 불효로 본다면, 범주가 넓어도 너무 넓다. 한국 사회는 ‘효’라는 가치를 중시하는 데다 불효의 범주가 넓고 모호하다 보니 자식으로서 죄책감이 쉬이 발생하고, 부모가 장래를 멋대로 기획하며 몸과 마음을 통제하려 들 때 무력하게 끌려가기 쉽다. 나는 이것이 한국 사회에 불행한 사람들이 많은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조건은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자유롭다는 감각,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관계의 형성, 불안에 잠식되지 않고 담대히 펼치는 상상력이 행복의 요건이라는 점에는 널리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가족은 때론 행복을 주는 공동체지만, 오롯한 개인으로 행복해지는 일을 어렵게 만드는 굴레가 되는 일 또한 잦다.

내 주변만 봐도 친구의 자식과 비교하며 자존감을 깎아대는 부모를 둔 A, 며느리에게 바라는 것이 많은 모친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미루게 된다는 B, 성장 과정 동안 방임했으면서, 성인이 되자 노후는 자식이 책임지는 거라며 기대는 부친 때문에 속이 문드러지는 C는 빙산의 일각이다. 대중매체가 재현하는 수위를 훌쩍 뛰어넘는 구체적 불행을 보고 듣는 것은 나를 번번이 숨 막히게 한다. 나 역시 양육자의 미숙함이 남긴 상처가 남아있음은 물론이다.

거대한 빙산 앞에 서면 질문하게 된다. 인간은 왜 자식을 낳아 기를까? 전근대사회에서는 자식을 노동력 수급이나 가문 간의 거래를 위한 자원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개인’이 발명되고, 아동인권의 중요성이 대두된 뒤에는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은 행복을 위한 개인의 선택이자, 성체의 돌봄 없이 생존할 수 없는 여린 생명체에 대한 책임을 떠맡는 대업이 됐다. 현대 사회에서 출산과 육아는 부모들이 어느 정도 희생과 인내를 감수한 채 내리는 (특히 여성의 경우는 경력 단절의 높은 가능성까지 감수하는) 결단인 것이다.

경계해야 할 부분은, 무리한 희생은 보상 심리로 흐르기 쉽다는 사실이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마음이 삐죽이 올라오는 일. 자식이 전문직을 갖거나 유명 기업에 입사하기를 바라며, 배우자의 부모까지 ‘받들어 모시는’ 이와 결혼하여 손주를 안기고, 궁극적으로 본인을 빛내주는 장식이 되기를 욕망하는 일. 이런 부모의 바람과 요구는 스스로의 선택으로 삶을 꾸리고 싶은 성인에게는 억압과 착취가 될 수 있다.

자식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태어날 수 없다. 탄생 자체가 부모에게 달려있기에 부모는 책임의 무게를 지게 된다. 즉, 자식을 일정 시기까지 돌보는 일은 선택에 따른 책임을 다하는 것일 뿐, 자식을 도구로 휘두를 권리를 부여하지는 않는다는 것. 당연하다는 듯 요구하고, 충족되지 않으면 비난하는 일의 반복은 가족을 남보다도 못한 관계로 만들 뿐이다. 오히려 ‘가족 같은 회사’를 믿고 거르는 작금의 현실을 돌이켜 볼 때, 가족일수록 남처럼 상호 예의를 차리는 태도가 좀 더 건강한 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부모와 적당히 거리를 두는 일마저 불효라면 나는 차라리 불효자가 되겠다.

부모와 자식이 건강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사회적 뒷받침도 필요하다. 아이를 낳지 않는 타인의 선택에 손가락질하며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이가 적지 않음을 확인할 때마다 어리둥절하다.

사회적 약자를 온전히 함께 돌보는 공동체 내에서도 개인의 선택을 두고 ‘이기적’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폭력일 텐데, 공동체의 존재가 흐릿한 한국 사회에서 그런 말과 행동이 유통되는 일은 부조리의 극치다.

경쟁이 극심하고, 부모가 자식에게 투여하는 자원의 양과 질이 자식의 계급에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한국에서 자식의 보육과 교육에 큰돈을 쓰고, 독립할 때 보증금이라도 마련해주려 애쓰다 보면 부모는 노후의 불안에 더욱 취약해지는데, 이는 자식들의 죄책감으로 귀결된다. 악순환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사회안전망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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