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윤석열, 잘잘못 따져보기

2020.01.13 21:11 입력 2020.01.13 21:13 수정
박래용 논설위원

폭풍 같은 인사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전격전(blitzkrieg)으로 하루 만에 폴란드를 점령했다. 추미애 법무장관은 전격전으로 검찰 내 ‘윤석열 사단’을 와해시켰다. 윤 검찰총장은 대외적으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김조원 청와대 민정수석은 검찰 고위인사로부터 ‘윤 총장의 전언’이라며 “이번 인사는 수용할 만하다”는 입장을 전달받았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인사 파문은 일단락됐다고 볼 수 있다. 보수언론의 ‘대학살’ ‘인사 참사’란 호들갑이 무색하게 검찰 내부 분위기는 생각보다 평온하다. 부글부글 끓는 건 검찰이 아니라 보수언론이다. 그들은 검찰이 부글부글 끓지 않는 데 화가 나고, 그래서 더 악을 쓰는 것 같다.

[박래용 칼럼]추미애·윤석열, 잘잘못 따져보기

검찰 고위간부 인사 전후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복잡한 것 같지만 상식의 잣대로 보면 단순하다. 잘잘못을 따진다면 내 생각은 이렇다.

#검찰 간부 인사를 앞두고 법무장관이 검찰총장의 의견을 듣는 과정은 쌍방 과실이 있다. 검찰총장이 요식행위라는 이유로 장관 호출을 거부하고 제3의 장소에서 만나자고 한 건 과했다. 법무장관이 검찰총장의 의견을 듣지 않은 채 인사 발표를 강행한 것도 무리였다.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검사의 보직을 제청한다’는 조항의 입법 취지는 서로 협의하라는 의미가 강하다. 협의는 없었다. 대신 법무부와 대검은 번갈아 입장문을 내며 장외에서 충돌했다. 양쪽 다 잘못이 있다.

#‘윤석열 사단’ 물갈이는 인사의 정상화다. 역대 대검과 서울중앙지검에 검찰총장의 왼팔·오른팔이 요직을 꿰차고, 그도 모자라 열 손가락까지 차장과 특수부장 자리를 싹쓸이했던 적이 없다. 그래서 검찰판 ‘하나회’란 말까지 나왔다. 이들은 지난해 7월 윤 총장 취임 후부터 대통령의 인사권을 무력화시키고, 정치에 개입하고, 사회를 지배하려 했다.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조국 수사에 뛰어든 논리대로라면 정세균 총리 후보자에 대해서도 수사에 착수했어야 한다. 유재수를 청와대가 감찰하다 덮었다는 논리대로라면 그간 검찰이 수사하다 덮은 수많은 암장(暗葬) 사건들도 전부 다시 들여다봐야 이치에 맞다. 이번 인사는 검찰의 수사권 남용을 인사권으로 바로잡은 것이요, 정치검찰에 대한 응당한 처분이라 할 수 있다.

#법무부가 ‘특별수사단 설치 시 장관의 승인을 받으라’고 한 것은 부적절했다. 이는 윤 총장이 전국으로 흩어진 ‘하나회’를 모아 특별수사단을 꾸리는 조치를 막으려는 것이란 비판을 자초했다. 추 장관 1호 지시는 ‘오상방위(誤想防衛)’다. 뒤에서 급하게 뛰어오는 사람을 자기를 죽이려는 줄 잘못 알고, 정당방위라 생각하여 사살한 경우와 같다. 이미 검찰근무규칙엔 검사를 1개월 이상 파견 근무할 때는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돼 있다. 향후 수사단 설치 요청이 있을 때 이 규정에 따라 장관이 판단하면 될 일이었다.

#검찰이 청와대 비서실에 대해 압수수색에 들어간 것은 불순했다. 검찰이 법원에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한 시점은 8일로 확인됐다. 그날은 법무부와 대검이 인사를 앞두고 하루 종일 기싸움을 펼치던 때였다. 그날 검찰은 뒤에서 ‘홧김에 영장질’을 했다. 울산시장 수사는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 압수수색이 필요하다면 며칠 앞당기거나 뒤로 늦출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검찰은 굳이 인사 다음날인 9일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 사무실과 10일 청와대에 밀고 들어갔다. 그것도 영장에 압수 대상이 특정되지 않아 거부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쇼’를 연출했다. 공권력 행사에도 품격이란 게 있다. 지금 검찰에는 그런 절제와 품격이 느껴지지 않는다.

#당·정·청이 윤 총장의 태도를 ‘항명’으로 규정하며 징계를 거론하는 것은 도가 지나쳤다. 추 장관이 “내 명을 거역했다”고 말한 것도 듣기 거북하다. 인사 과정에서의 검찰총장 의견 개진은 윤 총장이 주장하는 ‘관례’와 추 장관의 ‘해석’이 맞서는 대목이다. 대통령이 임명한 두 수장이 갈등을 조정하지 못하고 더 키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여권은 윤석열을 겨냥하고 있지만, 검찰총장직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윤 총장은 매일 지하 주차장을 통해 출퇴근하고 있다. 내부에선 “검찰총장이 왜 뒷문으로 다니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검찰총장은 검찰을 대표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게 상식이다. 여권은 여기서 멈춰야 한다. 검찰도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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