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살아 있다

2020.11.07 03:00 입력 2020.11.07 03:02 수정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볼 때 미국 민주당의 조 바이든 대선 후보의 당선이 확실해 보인다. 트럼프 측에서 소송 등 딴지를 걸겠지만, 대세는 기울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트럼프는 버틸 것이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혼란으로 몰아갔던 트럼프의 4년 시절은 이것으로 일단 종식되었다고 믿고 싶은 이들이 많지만, 최소한 당분간은 트럼프 진영의 결사항전이 이어질 것이다. 그런데 그 결사항전의 성공 여부를 떠나, 악몽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트럼프는 혹은 트럼프현상은 끝나지 않는다. 지난 4년간 미국 국내에서나 세계적으로나 트럼프에 대한 비판과 비난과 욕설은 차고 넘쳤고, 그는 국제적으로 공인된 무뢰한으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그런 황당한 인물이 어떻게 미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가라는 불편한 질문은 대부분 회피하였다.

홍기빈 전환사회연구소 이사

홍기빈 전환사회연구소 이사

오늘날 정치학에서 거의 금칙어가 되다시피한 개념이 있다. ‘국가 이성(raison d’etat)’이다. 근대국가는 종교나 윤리나 세상 그 어떤 논리나 원칙과도 동떨어져 있는 스스로의 합리성을 가지고 있다는 논리이다. 그래서 국가 스스로의 논리에 입각하여 필요하다면 국민의 자유를 박탈하거나 전쟁을 벌이는 일은 물론 그밖의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현대국가의 또 다른 핵심 원리인 민주주의와 묘한 긴장 갈등을 내포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사람들이 원하는 혹은 최소한 납득할 수 있는 논리로 국가가 운영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국가 이성’은 국가가 그러한 국민 다수의 합의나 상식과 무관하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는 원리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미국의 헌법과 정치체제는 이 두 상충되는 원리를 최대한 공존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천재적 작품이라고 칭송돼왔다. ‘무지한 다수의 횡포’에 의해 국가가 본연의 역할을 못하게 되는 사태도 막고, 또 국가권력을 틀어쥔 자들이 국민 다수의 위에 군림하는 ‘귀족’이 되는 사태도 막도록 주도면밀히 짜여진 체제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외양을 띠고 있고 또 분명히 그것이 일정한 권력을 행사하지만, 또한 동시에 국가의 운영과 작동이 ‘다수의 합의와 상식’(이라 쓰고 ‘무지한 다수의 횡포’라 읽는다)에 의해 휘둘리는 일이 없이 국가 운영의 자율성이 지켜지도록 하는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현대국가의 디자인이 산업혁명 이전인 18세기에 생겨난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산업혁명과 기계제 생산 그리고 이와 맞물린 야수적인 자본주의의 경쟁과 수탈로 쑥밭이 돼버린 20세기와 21세기 세상의 현실에서 이러한 민주주의와 ‘국가 이성’의 행복한 결혼이란 거의 항상 불가능한 이야기가 되고 만다. 인정사정없이 쳐들어오는 시장과 경쟁의 논리 속에서 일자리를 뺏기고 삶이 불안정해진 이들은 ‘국가가 무언가 해주길’ 바라고 그 민주주의라는 장치에 매달리고자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선출된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국가 이성’의 논리에 입각하여 삶이 고단한 보통 사람들로선 도저히 알아듣지도, 납득할 수도 없는 요설을 늘어놓으면서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는다고 보인다. 트럼프는 혼자가 아니다. 오늘날 이러한 ‘먹통에 무능하기까지 한’ 국가와 정당 정치에 대한 불만은 전 세계 거의 어느 나라에나 팽배해 있다.

트럼프는 결코 다수의 국민을 대변하는 자라 볼 수 없다. 처지가 불안한 백인들 일부의 감정을 악용해 혐오와 분열의 논리로 대중을 통제하는 어릿광대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쌓여왔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충격적 사실은 외려 그런 인물이 광범위하게 끈질긴 지지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설가 스티븐 킹이 전하는 한 미국인의 표현이 있다. “그는 최소한 자기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해요.” 보통 사람들로선 이해할 수도, 또 납득할 수도 없는 ‘국가 이성’의 논리가 아니라, 그들이 들을 수 있고 또 듣고 싶은 언어로 이야기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트럼프를 포퓰리스트라고 딱지 붙일 수 있겠지만, 그 뒤에 더 큰 불편한 진실은 그래서 은폐된다. 오늘날의 국가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사람들의 근본적인 불신과 혐오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각종 소송과 재검표 소동을 한바탕 벌일 기세다. 그는 결코 어리석은 짓을 할 사람이 아니다. 선거는 졌다 해도 놀랄 만한 지지세력을 확보한 그이다. 트럼프는 죽지 않는다. 일부 리버럴 지식인과 매체들은 그를 희대의 어릿광대 정도로 폄하하지만, 그는 우리 문명이 안고 있는 보다 크고 근본적인 문제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새로 바이든 정권이 출범한다고 해도 새로운 국가로 탈바꿈하지 않는 한 트럼프 세력의 발호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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