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듣고 있나요

2021.08.20 03:00 입력 2021.08.20 03:03 수정
이게 어떤 쓰임이 있을지
의미가 있을지 모르는데

어떤 사람들은 즐거웠다 하고
기뻤다 하고 눈물 흘렸다 하고

내게 많은 사람들이 건네는
인사말은 “잘 듣고 있어요”

날 만난 적 없어도 만나지 않아도
처음 만나도 “잘 듣고 있어요”

잘 듣고 있나요 어떤 시간에
어떤 순간에 왜 이 노래를

듣고 있나요 아무것도 아닌
질문밖에는 없는 이 노래를


일에 지치고 삶이 고된 순간이 찾아오면 3년 전 유튜브에 올린 <잘 듣고 있어요> 뮤직비디오 댓글들을 읽으러 간다. 이상하게 이 영상의 댓글들은 읽고 또 읽어도 감동적이고 매번 힘이 난다. 누군가의 대답을 들을 거라 생각하며 이 가사를 쓴 건 아니지만, 많은 분들이 ‘물어봐 줘서 고맙다’며 자신이 어떤 시간에, 어떤 순간에 이 노래를 듣고 있는지 댓글에 쓰기 시작했다. 나는 사람들이 이 질문 하나에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펼칠 줄 몰랐고, 놀랐고, 동시에 너무 기뻤다. 처음에는 ‘잘 듣고 있나요’란 가사의 대답처럼 ‘잘 듣고 있어요’라고 짧게 달리던 댓글들이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다.

이랑 뮤지션·작가

이랑 뮤지션·작가

‘당신의 이야기는 이제 나의 이야기도 되어 기차에서 한 번, 시골 밤하늘 보면서 한 번, 퇴근길에 두 번, 친구가 울 때 한 번, 다시 만나자고 할 때 여러 번. 잘 듣고 있어요.’

‘혼란스러울 때, 화가 날 때, 울음을 참고 집에 돌아와서 펑펑 눈물을 쏟고 싶을 때 들어요. 그때마다 노랫말을 따라 읽고 물음을 던지다 보면 답은 나오지 않아도 그때의 감정만큼은 이 노래와 같이 풀어낼 수 있었어요. 잘 듣고 있어요.’

‘숨 막히게 지치는데 이유를 알 수 없을 때 이 노래로 돌아오게 돼요. 답답함과 억울함인지 아니면 슬픔인지 가사가 물어봐 주거든요. 천천히 생각하고 위로받게 되어 자꾸 찾네요. 잘 듣고 있어요.’

‘공부하다 너무 힘들 때, 부모가 미울 때, 잠든 아이를 보고 감정이 복잡하고 쓸쓸해질 때, 숨 막힐 때, 설거지하다 흥얼거릴 노래를 찾다가 문득, 정적이 흐르는 집에 혼자 있을 때, 인적이 드문 도로 옆 길가에서. 잘 듣고 있어요.’

‘서럽게도 아픈 오늘 야자를 빼고 조퇴해 집에 온 수능 13일 남은 지금 잘 듣고 있어요. 공부하다 이 노래 들으면서 위로받고 가요. 잘 듣고 있는 모두만의 ‘지금’을 이야기하는 댓글이 많이 보이고요. 노래 하나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많은 이야기가 이어져 나간다는 것이 정말 즐겁고, 좋고, 사랑스러워요.’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랑님 노래를 처음 접했고 이제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도 매년 노래를 들으면서 새로운 감정을 느꼈어요. 점점 더 가사와 음이 몸에 와닿는 느낌이었습니다. 어쨌든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정말 잘 듣고 있단 거예요. 나중에 어른이 돼서도 이랑님의 노래로 위로받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평소 모니터 앞에 혼자 앉아 오랜 시간 글만 쓰고 있다 보면 내가 과연 이 사회에 속한 사람인지 아닌지 혼란스러워질 때도 있다. 그럴 때 나와 다른 사람들이 어떤 시간에, 어떤 순간에 내 노래를 듣고 있는지 다시 찾아 읽으며 나도 다시 일을 하고, 글을 쓰고, 노래할 힘을 찾는다. 무척 좋아하는 사회학 책 <사람, 장소, 환대>(김현경, 문학과지성사) 본문 중에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안에 들어가며 사람이 된다”라는 문장이 있다. 나는 3년째 계속 이어지는 이 댓글창의 환대가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그래서 내가 이 사회 속의 한 사람으로 계속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마음 깊이 바라고 있다.

나는 오늘도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내 노래를 들으며 중학교 3학년이 된 어떤 사람과, 2년 전 수능을 13일 앞두고 찾아왔던 어떤 사람과,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쓸쓸한 감정을 느꼈던 어떤 사람과, 기차를 타고 시골 밤하늘을 보며 노래를 들었던 어떤 사람과, 펑펑 쏟아지려는 울음을 참고 집에 돌아와 <잘 듣고 있어요> 비디오를 켜고 노래를 듣던 어떤 사람과 함께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그들이 어떤 이름을 가지고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다 알 수는 없지만 이 하나의 노래를 매개로 서로의 순간을 공유하는 시간이 있기에 우리가 같은 사회 안에 있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리고 나도 당신들의 이야기를 정말 “잘 듣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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