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차별할 권리가 없다

2022.04.22 03:00 입력 2022.04.22 03:01 수정

e메일을 받은 날은 2018년 8월30일이었다. 다가오는 새 학기 개강을 앞두고 긴장하고 있던 때였다. ‘장애학생지원센터’의 전문연구원으로부터 온 것이었기에 당황했다. 2학기에 담당하게 된 4학년 전공수업에 들어올 한 학생에 대한 안내 사항이 담겨 있었다.

오창은 문학평론가·중앙대 교수

오창은 문학평론가·중앙대 교수

주요 내용은 ‘하희은(가명) 학생은 청각장애를 갖고 있다. 장애학생지원센터에는 전문속기사를 배치했다. 속기사가 실시간으로 강의내용을 타이핑한다. 속기록은 해당 학생에게 학습을 위한 목적으로 제공되며 유출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한다. 강의실의 지정 좌석에서 들으며, 학생의 발음이 어색할 수 있으니 세심한 이해를 부탁한다’였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첫 만남의 느낌은 ‘이번 학기 정말 힘들겠다’였다. 모든 강의 내용이 기록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위축되었다. 그다음에는 난도가 높은 4학년 전공수업에 잘 따라올 수는 있을지 걱정되었다. 하희은 학생은 조용하고 진지했다. 속기사도 차분한 태도로 강의를 듣고 기록해 나갔다. 교수자인 나는 평소보다는 더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 더 또박또박 천천히 발음하려고 노력했다.

강의가 중반으로 접어들던 10월 즈음이었다. 전공 수업이다보니, 발표와 토론이 활발했다. 한 학생이 진은영 시인의 ‘훔쳐가는 노래’에 대해 밝은 유머를 곁들여 발표했다. 발표 중간중간에 몇몇이 웃다가 나중에는 모두가 크게 한바탕 웃는 상황까지 갔다. 그 발표를 들으며 속기사가 먼저 웃었고, 이어 하희은 학생도 웃었다. 웃음은 참 묘한 힘이 있다. 웃음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긍정적 기운을 주고, 타인과 연결하고 싶은 마음도 만든다. 함께 웃으면 미래도 ‘희망의 미소’를 짓는 것 같다. 한바탕 웃은 이후부터 하희은 학생을 대하는 공식적이었던 태도가 조금씩 바뀌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하희은 학생과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를 돌이켜 보면, 하희은 학생에게 고마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처음에는 하희은 학생을 배려한다고 생각하며, 강의 속도도 조절하고, 어려운 대목은 일부러 쉽게 해석하려고 했다. 그게 하희은 학생을 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야 나는 평소 강의를 할 때 말하는 속도가 빨랐다는 점을 깨달았고, 4학년 전공수업이라는 이유로 어려운 용어를 너무 자주 썼다는 점도 반성하게 되었다. 나는 하희은 학생을 가르치면서 ‘존중과 공감’에 대해 더 깊이 성찰했다. 하희은 학생의 처지에 비추어 내 생각과 행동을 살펴보려는 노력이 바로 진정한 ‘존중과 공감’이었다. 약소자의 처지에서 바라보면, 당연한 듯 생각했던 일상이 낯설어짐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장애학생지원센터 전문연구원을 통해 알게 된 것이지만, 하희은 학생이 대학당국으로부터 지원을 받게 된 것은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2007)이 제정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법으로 대학에 장애학생지원센터(2012)가 생겨났고, 장애학생지원 의무가 부여되었다. 무엇보다 장애학생들이 스스로에게 당당해진 것도 대학사회의 조그만 변화이다. 중앙대의 경우 장애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서명운동을 조직하여 총학생회 산하에 장애인권위원회(2019)가 설립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하희은 학생은 그때 수업에서 일반학생들도 받기 힘든 ‘A+’를 받았다. 동등한 위치에서 스스로 노력하여 당당하게 받은 학점이었다. 한국사회 현실을 생각하면, 하희은 학생의 미래는 ‘밝은 미소’로만 채워져 있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장애인이고, 여성이다. 자신의 노력과 의지와 능력으로 온 힘을 다해 학력의 장벽만 겨우 벗어났을 뿐이다.

하희은 학생과 같은 수많은 약소자들이 ‘기회의 평등한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차별금지법(평등법)’이 제정되기를 희망한다. 2007년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논의가 있었고, 어느덧 15년째 제정 운동이 이어져오고 있다. 4월11일부터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이종걸·미류 활동가가 법 제정을 촉구하며 무기한 단식 중이다. 지난 20일에는 문화예술인들이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문화제’를 국회 앞에서 개최했다. 세상이 평등하지 않다고 해서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까지도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 우리 모두에게는 차별할 ‘권리’도, 차별당할 부당한 이유도 없다.

인간이 인간을 동등하게 바라보지 않을 때 차별이 발생한다. ‘평등한 존중’이야말로 ‘평등한 자유’다. 평등한 존중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는다. 세상은 변화하기에, 하희은 학생이 살아갈 미래가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통해 ‘더 많은 미소’로 채워지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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