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장애인 선생님들

2022.04.21 03:00 입력 2022.04.21 03:03 수정

자살 문제에 관한 책을 두 권 쓰며 ‘열사’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에도 치사한 세상의 불평등이 예외 없이 관철된다는 사실을 알게 돼서 씁쓸했다. 좋은 대학을 다니다 목숨을 잃은 ‘열사’들은 그의 대학 동문들이 출세한 ‘민주화’된 세상에서 크게 추앙받고 ‘영원한 청년’으로 잘 기억되곤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완전히 다르다. 아마도 그 ‘열사’가 노동자이거나 ‘학벌’이 없으면 더 그렇다. 그가 아무리 위대한 삶과 죽음을 살았어도 말이다. 그렇게 잊혀진 이름은 너무 많다. 그런데 사실 부끄럽게도, 나도 얼마 전에 나온 <유언을 만난 세계>라는 책을 보기 전까지 ‘장애인 해방 열사’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김순석, 최정환, 이덕인, 박흥수, 정태수, 최옥란, 박기연, 우동민은 어떤 ‘열사’보다 마음이 절절했고 아팠고 또 가난했다. 이 나라에서 소외와 차별의 벽과 겹은 얼마나 두껍고 소위 ‘정상인’과 주류가 아닌 삶은 얼마나 자기를 보여주기 어려운가? 얼마나 그 외침은 들리지 않는가? 그 목소리는 구조적으로 지워져 있고 우리는 귀가 닫혀 있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숭배 애도 적대> 저자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숭배 애도 적대> 저자

만약 뇌병변 1급 장애를 가진 홍성훈을 대학에서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장애인의 삶에 대해 여전히 완전 무지 상태에 있었을 것이다. 성훈은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집 밖으로 나오기 힘들다. 다리를 움직이고 말소리를 내기도 어렵다. 하지만 표정과 몸짓으로 잘 소통한다. 휠체어와 노트북이 다리와 입이 되어준다. 사실 그의 감성과 지성은 뛰어나고, 유머감각도 언어능력도 말 그대로 남다르다. 성훈은 몇년 전 대학원 진학을 결정했을 때 나에게 <기침>이라는 자전을 보냈다. 거기에는 놀라운 표현력과 통찰로, 비장애인들은 상상조차 어려운 청년의 고민과 가족들의 삶이 써 있었다. 학부생 숙제부터 박사논문까지 학생들의 글을 읽고 고쳐주는 선생일을 20년쯤 했지만 그런 글은 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한때 인문사회과학 책을 읽는 스터디를 같이했는데, 성훈이 멤버들에게 가르쳐준 것은 실로 많았다. 그야말로 우리가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세계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 생각하는 노동의 권리나 의무도, 돌봄과 장애인 관련 제도도, 그 덕분에 조금이나마 달리 생각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그는 나와 다른 멤버들의 큰 스승이었다.

한번은 모임에서 1박2일로 서울 시내 역사 공간 답사를 했다. 우리가 애초에 생각했던 대로 일정을 진행할 수 없었다. 휠체어와 같이 다니니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시간이 두 배는 걸렸고, 문턱이 없는 1층 식당을 찾는 것도 어려웠다. 전 세계에서 가장 깔끔하고 편하다는 이 나라의 지하철에는 왠지 엘리베이터가 정말 적고, K건물주나 식당주들 중에서 휠체어 탄 손님을 맞는 상상을 해본 사람은 드문 것이다.

이번 봄에 선한 사람들은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고 여러 번 애타게 말했다. 이 말은 옳지만 사실 조금은 약한 듯하다. 애초에 인간이라는 존재는 장애나 ‘무능력’ 상태에서부터 좀 벗어나 살다가 곧 다시 그렇게 돼버린다. 쉰만 되면 저절로 눈앞이 흐릿해지고 거의 모든 관절에 이상이 생긴다. 다초점 안경을 끼고 지하철 계단 오르내리기는 쉬운가? 우리의 건강한(?) 노부모들은 왜 전철 엘리베이터 앞에 줄을 서 있나?

기사 달린 자가용을 탈 수 있는 인생이 아니라면, 지하철은 보통사람들의 생필품이자 숙명 비슷한 것이다. 특히 대도시 지하철의 출퇴근 시간은 이 세상을 떠받치는 노동자들의 시간이다. 거기 간혹 끼어 타면 밥벌이의 고통과 모욕을 단 15초 안에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이준석 대표는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이 사회의 을 또는 병들의 노고와, 존재하지도 않는 듯 가정이나 시설에 유폐된 장애인들의 소외를 대치시켰다. 그것을 졸렬한 선동정치의 수단으로 삼았다. 그러나 마치 가난이 그런 것처럼 우리는 장애나 노화 같은 ‘한계’를 통해서만 삶과 인간에 대한 제대로 된 진리를 안다. 그런 견지에서 장애는 스승이며 생성하는 역능이다.

근래 성훈은 연구자가 아닌 다른 길을 선택했다. 뛰어난 학생이 떠나 선생으로선 사실 섭섭했지만, 다른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는 소식을 들으니 좋다. 장애인의 성에 대한 글도 쓰고 연극무대에도 섰는데 올 3월부터는 더 바빠졌다 한다. 장애인자립센터에서 근무하며 지하철역 시위에도, ‘리프트 추락사고 사과 요구 및 장애인탈시설지원조례 이행 촉구’ 농성에도 나간 모양이다. 그가 휠체어를 몰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더 자유롭게 이동하며 활약하는 날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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