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냄새 킁킁

2022.08.11 03:00 입력 2022.08.11 03:02 수정

[임의진의 시골편지] 풀냄새 킁킁

누가 카페를 하겠다며 이름을 지어달라길래 우리말로 몇 개 보내줬더니 암만 생각해도 촌스럽대. 그럼 애당초 외국인에게 부탁하지 왜 한국인을 귀찮게 하누. 외국어로 해야 ‘부티 귀티’가 난대나 어쩐대나. 똥개가 애기똥을 집어먹는데 옆을 지나던 애완견 왈 “여보슈! 드럽게 사람 똥을 다 먹엇?” 그러자 똥개 왈 “어르신 밥 먹는데 똥 얘기 말엇!” 누군가의 눈엔 한없이 ‘누추하고 낮은 곳’. 그러나 개똥이 민들레를 키우는 맨땅 풀밭은 촌스럽기에 외려 기름지고 푸르러라. 대통령이 사는 집 이름도 신문에 보니깐 영어 이름을 가진 높다란 아파트. 세종 임금이나 이순신 장군이 알까 봐 쉬쉬하자고.

윗지방엔 폭우가 내린다는데, 여긴 구름 낀 하늘 아래 연일 푹푹 찐다 쪄. 둘러보면 얼죽아아,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는 얼죽아미, 얼어 죽어도 방탄 아미, 아니 아이스 미숫가루 아미. 보리쌀을 갈아 만든 미숫가루는 푸른 청보릿대 냄새가 살짝~. 약간 비릿하다가 고소한 풍미. 얼죽아미를 마시며 풀밭 그네에 앉아 떠가는 구름 구경을 한다. 요새 구름이 하도 많아. 양떼 염소 송아지 강아지 오리 토끼, 모양들이 기기묘묘. 재밌는 건 사진도 찍어 놨어.

어려서 풀잎을 뽑아설랑 입에 물고 다녔다. 갖가지 풀맛을 그때 맛봤지. 논밭을 갈던 황소를 키우던 친구네가 있었는데, 친구가 쇠꼴을 벨 때 따라가 돕기도 했었다. 비닐 포대에 꼴을 다 담고, 냅다 농수로 찬물에 다이빙. 낄낄대며 물장구 멱을 감았지. 비가 그치고 저수지가 넘치면 농수로에 쪽대를 대고서 붕어를 잡기도 했다. 어린 붕어는 멀리 도망가라 놓아주었어. 절에 안 다니고 교회를 다녔어도 방생은 기본으로 했다. 풀줄기로 굵은 붕어를 묶고 만선의 어부 흉내를 내며 돌아올 땐 풀벌레 행진곡. 풀내음 가득한 미루나무 들길. 빵냄새와 꽃내음, 선남선녀들이 쓰는 향수 냄새, 여기에 견줄까마는, 나는 풀냄새가 구수해라. 이날까지 풀밭을 건사하며 사는 이유렷다. 코를 킁킁대며 이 풀밭의 여름을 만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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