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놔라, 공공임대

2022.10.24 03:00 입력 2022.10.24 03:02 수정

지난 9월, 서울 용산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수도권특별본부 앞에서 쪽방, 고시원, 반지하 세입자와 텐트촌 강제철거 피해자가 LH 사장 출사표를 던졌다. 이들은 LH 사장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들이 부동산 친화적인 시장주의적 인물들뿐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공공임대주택 확대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본인들이 직접 시장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이날 출사표를 던진 용산 홈리스 텐트촌 철거 피해자는 얼마 전 임대주택을 신청했는데 630번대의 예비 번호를 받았다. 그의 입주 순서는 언제쯤 돌아올까? 비싼 임대료나 관리비를 감당할 수 없는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 유형은 영구임대주택과 매입임대주택일 텐데, 그가 사는 용산구의 영구임대주택은 0호, 매입임대주택은 44호(2016년 자료)뿐이다. 이렇듯 공공임대주택의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는 내년도 공공임대주택 관련 예산을 올해 대비 27%, 5조7000억원이나 삭감했다. 정부의 예산 설명자료에 따르면 ‘주거복지의 빈틈도 촘촘하게 보완’하는 예산이라는데 ‘촘촘’의 내용은 반지하나 고시원 주민의 이사비를 지원한다거나 대출을 지원한다는 아기자기한 내용으로만 채워졌을 뿐 공공임대주택을 새롭게 짓고 확대할 기본계획은 빠져 있다.

그래서 지난주부터 빈곤사회연대를 비롯한 노동·사회단체들은 국회 앞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대규모 예산 삭감을 막고 공공임대주택을 늘리는 것은 비싸고 불안정한 전·월세살이 대신 선택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을 시민들에게 보장하는 가장 유력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반지하 수해 참사로 전 국민이 눈물을 흘렸고, 정치권 모두가 민생을 외치고 있지만 공공임대주택 예산이 이토록 큰 폭으로 삭감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여야 두 정당은 아직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반목과 파행으로 흐르는 정치 국면 때문에 예산에 대한 제대로 된 심의조차 이뤄지지 않는 것이 아닐까 초조한 마음이 든다.

공공임대주택의 기능은 단지 입주자들의 주거권을 보장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공공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양의 집을 시장이 공급하는 현실 자체가 주거 불평등의 토대이기 때문에 공공이 직접 공급하는 적절한 가격의 주택은 우리 사회 주거복지의 근간 자원이 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예산 삭감은 당장 내년의 사업 축소를 넘어 더 장기적인 영향을 끼치고 주거 불평등 완화를 위한 공공의 책무를 교란한다. 공공임대주택 예산 삭감을 국회가 반드시 막아야만 하는 이유다.

630번의 예비 번호를 받은 홈리스 텐트촌 강제철거 피해자뿐만 아니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전·월세 가격을 감당하기 어려운 시민 모두에게 공공임대주택이 필요하다. 집을 구입하지 않아도 안정적으로 살 수 있다면 집 때문에 겪어야 하는 비참함도 줄어들 것이다. 예산 삭감은 막고 공공임대주택은 늘리자. 내놔라, 공공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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