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과 금강산

2010.04.13 18:18 입력 2010.04.13 22:55 수정
류길재 |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시론]천안함과 금강산

남북관계가 헤어나기 힘든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천안함으로 어수선한 터에 북한의 금강산 내 남측 부동산 동결조치가 이뤄졌고, 남측이 건설한 면회소 관리인력도 철수시켰다. 게다가 개성공단사업 재고까지 들먹이고 있다. 지난해 봄 개성공단 폐쇄를 협박한 북한이 1년 만에 또다시 전방위 압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압박은 ‘남북관계 전면 중단이냐, 계속이냐’를 묻는 최후통첩일 수도 있고, 한국의 대북정책 수정을 종용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뉘앙스는 비슷하지만 강조점이 어디냐에 따라 다른 정책처방이 가능하다. 전자라면 대북정책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고, 후자라면 대북 지원이 아쉬운 북한이 호소와 공갈을 번갈아 구사하는 것이니 우리 원칙을 강하게 밀어붙일 수도 있다.

수렁으로 빠져드는 남북관계

그러나 천안함과 맞물리면서 정부의 운신 폭은 더욱 좁아지고 있다. 이 사건이 없었어도 북한의 강수를 두고 이런저런 고려를 할 수밖에 없는데 지금은 이 사건의 원인 규명이 이뤄져야 한다는 전제가 성립하게 됐다. 북한의 연루 여부가 분명해지기 전에 북한의 압박에 굴복하는 모양새를 보이게 되면 마치 재작년 박왕자씨 피살 사건이 발생한 날 이명박 대통령이 국회에서 남북관계 발전을 언급한 모양을 재현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정부는 천안함 사건의 원인 규명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어떤 행동도 취하기 어렵다. 만에 하나 북한이 이 사건의 원인 제공자라는 의혹이 증거에 의해 뒷받침된다면 북한이 발뺌해도 한국 정부와 사회는 대북 보복 여론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그런 상황이 오면 금강산관광은 재개가 아니라 폐기 여부에 직면하게 될 것이고 남북관계는 오히려 한국 정부가 ‘중단이냐, 계속이냐’를 물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렇다고 북한이 천안함 침몰과 무관하다는 사실이 밝혀진다고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도 않다. 비유해서 말하면 지금 정부는 ‘이리 갈까, 저리 갈까’가 아니라 ‘더 갈까, 아주 갈까’의 상황에 처한 형국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대통령과 정부의 리더십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리더십을 지탱하는 원동력은 정당성이다. 어떤 방향으로 가든 그 방향이 설혹 결과적으로 실패해도 적절한 명분과 그 명분을 현실에 접목시키려는 노력이 수반되면 정당성을 갖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정부의 대북정책은 부족한 부분이 없지 않다. 남북관계를 정상적 상태로 만들겠다는 원칙을 견지하려 했다는 점에서 명분을 확보했지만, 그 원칙을 실천에 옮기려는 노력은 미흡했다는 말이다. 아무리 좋은 원칙도 실제 현실에 적용되지 않으면 구두선에 지나지 않는다. 남북대화와 관계 개선의 실천적 노력을 기울여 북한과 국제사회, 그리고 국내사회로부터 한국 정부는 ‘할 만큼 했다’는 인식과 공감대를 마련해야 한다.

정당성 토대 정부의 리더십 필요

천안함 사건으로 정부의 처지가 군색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나중에 북한에 할 말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놓아야 한다. 금강산 사업에 대해 ‘할 테면 해봐라’는 대응보다 북한이 제안한 대화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북한을 향해 성의를 다해 설득하고, 필요하다면 다시 한 번 금강산관광 재개의 요구 조건을 분명히 해서 북한으로 하여금 정부가 정당한 요구를 하고 있음을 확인케 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이 정부의 요구를 수용한다면 지체 없이 관광을 재개하면 된다. 만일 천안함 사건이 북한에 의한 것임이 드러난다면 관광을 중단하고 남북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고하면 된다. 그 어느 때보다 정부의 리더십이 정당성에 토대를 둬야만 정부와 사회가 합심해서 남북관계와 안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집단적 예지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그래야 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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