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대통령 회고록

2015.01.27 21:00 입력 2015.01.27 22:17 수정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는 노벨평화상이 아닌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소설가·시인이 아닌 사람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경우는 처칠이 유일하다. 처칠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긴 작품은 회고록 <제2차 세계대전(The Second War)>이다. “끔찍한 전쟁을 진두지휘한 사람으로서 보고 듣고 겪었던 현장과 경험, 그리고 여러 고뇌를 마치 우리가 직접 느끼듯이 잘 그려내었다”는 것이 수상 사유다. 실제 <제2차 세계대전>은 종군기자 시절 이미 명성을 얻은 처칠의 필력에 힘입어 읽는 이로 하여금 문학적 감동마저 안겨준다.

동서고금을 통해 최고의 고전으로 꼽히는 회고록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쓴 <갈리아 전쟁기>이다. 사실적이고 생생한 필치로 전투뿐 아니라 인간과 문화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그려보인다. 남편인 사도세자의 죽음을 중심으로 파란만장한 생을 절절히 고백하는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은 국보급 회고록이다. 현대에선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가 회고록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처럼 역사의 기록으로 후대에 남은 회고록은 공히 왜곡이 없는 객관성과 진솔한 술회가 바탕을 이루고 있다.

일찍이 소설가 이청준은 <자서전을 씁시다>에서 “과거가 아무리 추하고 부끄러워도 솔직히 시인할 정직성과 참회할 용기, 자신의 것으로 사랑할 애정이 없으면 단념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러한 용기가 없으면 회고록은 자기 변명이나 자랑으로 덧칠돼 기록으로서 의미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공’은 부풀리고 ‘과’는 숨기면서 자기변호로 도배하기 일쑤인 유명 정치인들의 회고록이 반면교사다. 지금껏 윤보선,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다섯 ‘대통령 회고록’이 나왔지만 “역사를 만든 사람이 직접 쓴 역사의 기록”이란 평가를 받을 만한 회고록은 드물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퇴임 2년도 안돼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을 펴낸다고 한다. 예고에 따르면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은 배제하고”, 주로 재임 시절 치적을 내세우고 ‘4자방’ 사업을 변호하는 내용으로 채워질 모양이다. 그렇다면 ‘가짜’ 회고록이다. 하기야 ‘과거의 잘못을 솔직히 시인할 정직성과 참회할 용기’(이청준)를 이 전 대통령에 기대한다는 게 애초 무망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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