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고고학자 김병모 교수 퇴임 “한민족 원형찾기 나에겐 숙명”

2006.05.26 18:10

지난 25일 해질 무렵, 한양대 동문회관에서는 조촐하지만 의미 깊은 모임이 열렸다.

제주 돌하르방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석상을 발리섬에서 찾아 손질하는 김병모 고려문화재연구원장.

제주 돌하르방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석상을 발리섬에서 찾아 손질하는 김병모 고려문화재연구원장.

‘고고학 대중화의 선구자’로 우리 문화의 뿌리를 찾아 평생을 바친 고고학자 김병모 한양대 명예교수(65)의 정년퇴임식이 열렸다. 조유전 토지박물관장, 정징원 부산대 교수, 이건무 국립중앙박물관장, 배기동 한양대 교수 등 고고학자들과 김교수의 가족이 자리를 함께 했다. 제자들이 마련한 퇴임식에서는 26편의 논문 등을 담은 퇴임논총 ‘고고학, 시간과 공간의 흔적’(학연문화사)도 선보였다.

“속박에서 해방된 기분입니다. 날아갈 것 같죠”. 김교수는 “점잖지 못하게 이런 말을 해도 되려나”면서 “나는 자유인이잖아” 하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낸 김교수가 자신의 소감을 어찌 한마디 말로 다 할 수 있겠는가.

학계에서 ‘팔방미인’ ‘마당발’로 불리는 김교수는 해방 이후 1세대 고고학자다. 고고학 전문인력 양성을 내걸고 국내 처음으로 개설된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1회 졸업생인 그가 고고학계로 진출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숱한 발굴을 해온 그에게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현장을 꼽아달라”고 했다. 김교수가 첫 손에 꼽은 것은 경기 하남의 이성산성. 올해로 20년째 발굴이 계속 중인 곳이다. “이성산성은 석성이잖아요. 그래서 뱀이 엄청 많은 ‘뱀밭’이야. 뱀들 때문에 기겁을 많이 했지.”

1990년대초 국내 최초로 패각분석까지 시도한 안면도 고남리 패총도 잊을 수 없다. 기존 발굴관행과 달리 과학적 동물유체분석의 시발점으로 패각 분석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먹거리, 날씨 등 환경까지 조사했다. 지금은 복원돼 관람객들이 찾는 화성 행궁자리도 있다.

“글자로 기록된 과거를 재구성하면 역사학이고, 토기 한 조각이나 불탄 집자리에 남은 흔적으로 옛날 일을 추리하면 고고학이죠. 물론 유물을 객관적·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래서 고고학자는 수천년전 사람들의 생활을 복원하는 풍부한 상상력과 유물을 해석하는 과학적이고도 명석한 사고가 필요하죠.”

김교수는 한양대를 중심으로 제자들을 기르는 한편 각종 저술작업을 통해 고고학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4년 후배인 이건무 중앙박물관장은 “한마디로 스케일이 큰 학자입니다. 한국인은 누구인가 하는 한민족 원형부터, 고인돌의 기원 등에 연구를 집중했죠. 발굴조사면 조사,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등 전형적 팔방미인”이라고 밝혔다.

그는 저서를 통해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데도 애를 썼다. 금관의 상징성을 파헤친 ‘금관의 비밀’, 한국인의 원형을 고고학·인류학·역사학적 근거로 탐색한 ‘한국인의 발자취’, 가락국 김수로왕비인 허황옥 등을 다룬 ‘김수로왕비의 혼인길’ 등의 저서가 있다. 이날 퇴임식에서도 그는 고고학 대중서 ‘김병모의 고고학 여행’(전2권·고래실)을 선보였다. 남아시아, 유라시아 대륙 등을 답사까지 하며 한민족의 원형을 찾아나선 여정이 쉽게 그려진 에세이집이다.

한양대 명예교수이자 발굴·연구기관인 고려문화재연구원장인 김교수는 “앞으로는 좀더 자유롭게 한민족의 원형을 찾아 세계를 다닐 것”이라며 “연구결과들은 속속 책을 통해 밝히겠다”고 강조했다. 김교수는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문학박사를 취득하고 한국고고학회장, 한국전통문화학교 총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해는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도재기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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