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경제 보상보다 체제안전 보장 먼저’…미국에 강력한 경고장

2018.05.16 22:53 입력 2018.05.16 22:55 수정

북·미 정상회담 ‘의제 싸움’ 물밑서 수면 위로 끌어올려

‘선 비핵화’ 강조하며 요구 수준 높이려는 움직임 차단용

‘개인 논평’ 형식·절제된 표현으로 수위 조절…판 안 깰듯

안개 속 통일대교 판문점으로 가는 관문인 경기 파주 통일대교 남단 길목이 16일 안개비에 가려 뿌옇게 보인다. 북한은 한·미 연합공중훈련인 맥스선더 실시에 반발해 이날 예정된 남북 고위급회담의 무기한 연기를 통보했다.  연합뉴스

안개 속 통일대교 판문점으로 가는 관문인 경기 파주 통일대교 남단 길목이 16일 안개비에 가려 뿌옇게 보인다. 북한은 한·미 연합공중훈련인 맥스선더 실시에 반발해 이날 예정된 남북 고위급회담의 무기한 연기를 통보했다. 연합뉴스

북한이 16일 ‘북·미 정상회담 재고 가능성’을 거론하고 이날 열기로 했던 남북 고위급회담을 무기한 연기했다. 다음달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물밑에서 벌이지고 있는 ‘의제 싸움’을 수면 위로 올린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선 비핵화, 후 보상’이라는 리비아 방식으로 비핵화 로드맵을 굳히려는 미국 측의 시도에 대해 체제안전 보장이 먼저라는 자신들의 요구를 명확히 했다는 것이다.

■ 미국의 ‘대화 의지’ 묻는 북한

북한은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개인 명의로 발표한 담화를 통해 북·미 정상회담 시기와 장소 확정 이후 요구 수준을 높이려는 미국 측의 시도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김 제1부상은 미국이 ‘선 핵포기, 후 보상’ 방식으로 요약되는 리비아 모델,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 ‘핵·미사일·생화학무기 완전 폐기’ 등의 주장을 거리낌 없이 쏟아내고 있다고 비난했다.

특히 북한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목하고, 그가 제시한 리비아 방식을 콕 집어 반대했다. “대국들에 나라를 통째로 내맡기고 붕괴된 리비아나 이라크의 운명을 존엄 높은 우리 국가에 강요하려는 심히 불순한 기도의 발현”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은 과거 리비아 카다피 정권이 미국의 압박에 의해 핵개발을 포기한 이후 내부 인민 봉기에 의해 정권이 붕괴된 사례를 비핵화 과정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

‘체제안전 보장’ 대신 미국이 ‘경제적 보상’을 먼저 거론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을 드러냈다. 북측이 비핵화의 선결 조건으로 내건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 해소’에 대해 답을 하라는 것이다. 김 제1부상은 “미국이 우리가 핵을 포기하면 경제적 보상과 혜택을 주겠다고 떠들고 있다”며 “그런 거래는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들이 결코 ‘제재와 압박의 결과’로 비핵화 용의를 나타내고 대화에 나온 것이 아니라는 주장 역시 경제적 보상 이전에 체제안전 보장이 먼저라는 취지로 읽힌다.

■ 한·미 군사훈련에 발끈

북한은 이날 남북 고위급회담을 ‘중지’함으로써 남측에 대한 ‘경고’ 카드도 꺼냈다. 하지만 북한이 문제 삼은 한·미 연합군사훈련인 ‘맥스선더’는 지난 11일 시작됐다.

북한이 처음부터 맥스선더를 문제 삼았다면 지난 15일 고위급회담 개최에 응한다는 통보를 하지 말았어야 한다. 북측이 한·미 연합훈련이 ‘판문점선언’에 대한 도전이라는 자신들의 주장의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일단 회담 개최 요구에 응했다가 취소하는 모양새를 연출했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지난 14일 국회 토론회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비난한 것도 기름을 부었을 수 있다. 북한은 태 전 공사를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인간 쓰레기’들이 국회에서 ‘최고 존엄’과 체제를 헐뜯었다고 비난했다. 태 전 공사가 국회에서까지 김 위원장 비난 발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그를 방치했기 때문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이전까지 태 전 공사의 김 위원장 비판 발언들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하면 북측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과 기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남측을 걸고 들어갔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북측이 판을 깨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은 미국과 남측을 비난하면서도 ‘조선중앙통신사 보도’와 ‘김 제1부상 개인 논평’이라는 형식으로 수위를 조절하고, 상대적으로 절제된 표현을 썼다. 그런 만큼 이날 발언 등은 호락호락 끌려가지 않겠다는 경고를 보낸 수준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조선중앙통신 보도가 “우리는 미국과 남조선 당국의 차후 태도를 예리하게 지켜볼 것”이라는 경고로 끝난 점도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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