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前대통령 영결 이후 국정과제를 듣는다

2009.05.31 17:51 입력 2009.06.01 09:41 수정
이고은기자

“검찰수사에 문제” 공감, “정치적 타살”엔 이견

대담 : 조해진 한나라당 의원 - 최재성 민주당 의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우리 사회에 많은 고민과 숙제를 남겼다. 그의 충격적 죽음은 결국 우리 사회의 정치·사회·문화적 미성숙의 증표로 읽히기 때문이다. 그의 유지를 받아 풀어내야 할 우리 사회, 특히 정치권이 ‘백가쟁명’식 논쟁과 해법으로 꿈틀거리는 것도 그런 이유다. 경향신문은 31일 한나라당 친이직계 조해진 의원과 386 출신 민주당 최재성 의원 간의 대담을 통해 그 과제에 대한 여야의 입장을 들어봤다. 죽음의 원인, 의미는 물론 현상에 대한 진단 등에서 적잖은 간극이 엿보였다. 최 의원은 “노 전 대통령 죽음의 정치·사회적 분석과 규명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조 의원은 “이상은 승계해야 하지만 정치적 과잉해석은 국민의 보편적 동의를 얻기 어렵다”고 맞섰다.

한나라당 조해진 의원(왼쪽)과 민주당 최재성 의원이 3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향후 정국 등에 대해 대담을 하고 있다.  <우철훈기자>

한나라당 조해진 의원(왼쪽)과 민주당 최재성 의원이 3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향후 정국 등에 대해 대담을 하고 있다. <우철훈기자>

민주당 최재성 의원(이하 최재성) = 지난 29일 영결식 날의 민심을 보면, 국민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의 본질을 알고 있는 것 같다. ‘타살적 요소’가 있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정권에 대한 문제 제기, 분노를 표출하는 것 같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자연인 한 사람의 죽음만으로 해석할 수 없다. 사고사나 병사도 아니고 정치적 해석을 할 수밖에 없는 죽음이다. 정치·사회적 분석과 규명이 돼야 한다.

한나라당 조해진 의원(이하 조해진) = 전직 대통령께서 퇴임한 지 얼마 안돼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이 유례없는 일이기에 국민들의 충격도 컸고 그만큼 애통한 마음이 많았던 것 같다. 정치적 혹은 타살이라는 기준이라면 지난 정부 때 검찰 수사 중 자살로 생을 마감했던 다른 사건들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역대 대통령 중에도 사형선고나 무기징역을 받은 사람이 있고, 감옥에서 수용생활을 하거나 사법적으로 죽음 직전까지 몰렸는데도 극단적 선택을 하진 않았다. 타자의 책임이나 주변 사회환경 때문에 죽음에 이르렀다는 평가는 신중해야 한다. 그래도 개인적으론 검찰 수사가 납득이 안되는 부분이 있었다. 증거 확보가 불충분한 상황에서 피의자 자백에 의존하고, 가족과 지인들까지 소환·수사하면서 심리적 압박을 가했다. 최종 확인되지 않은 수사 상황을 그때그때 언론에 흘려보내 흥미위주로 보도되면서 당사자들은 견디기 힘든 모멸감이나 수치심을 느꼈다.

최재성 “정권과 국민, 여야 간극이 너무 커 민주주의 퇴행”

최재성 = 노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 여러 압박으로 도덕적으로 파렴치한 사람으로 내몰렸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철학이 역사적으로 중단되는 것에 대해 분명한 문제제기를 한 것이라 본다. 죽음이라는 방식으로 역사적 과제가 단절되는 것을 막아보자는 것이 아니었겠나 싶다. 왜 타살이냐의 문제는 간단히 이야기할 수 있다. 유례없는 수사방식 때문이다. 첫째, 노 전 대통령은 애당초 전 정권을 도덕적으로 함락시키기 위한 표적으로 설정됐다. 둘째,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수사의 최초 인물임에도 노 전 대통령보다 수사상의 우대를 받았다. 셋째, 소환조사 후에도 3주나 영장을 청구하지 못하고 중계방송하듯 피의사실을 공표했다. 단순히 수사기획상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보복적 성격이 아닌가 한다.

조해진 = 노 전 대통령은 죽음의 이유를 유서에서 가장 명확히 이야기했다. 만약 거창한 정치적 명분이나 철학적 사색의 결과, 투쟁·선동적 구호가 들어있었다면 초당파적이고 정치적 입장을 넘어선 추모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국민들은 인간으로서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기에 분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죽음을 지나치게 정치·이념·전략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보편적 국민 정서에 맞지 않다. 영결식 날 미어터질듯 광장으로 모였지만 노제 후 90% 이상의 시민들이 집으로 돌아갔다. 결국 큰 흐름은 전직 대통령 노무현의 비극적 삶에 대해 인간적으로 안타까워하는 마음이었다고 생각된다. 그 분의 이상을 승계하는 것은 좋지만 정치적으로 과잉해설하는 것은 국민의 보편적 동의를 얻기 어렵다. 노 전 대통령이 죽음을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선택했다는 것은 커다란 논란을 가져올 수 있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

최재성 = 이념공세, 정치공세는 보수진영에서 먼저 했다. 인간적인 일로만 봤다면 먼저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공세할 필요가 있었나. 안상수 원내대표의 ‘소요’ 발언은 정치적 발언 아니냐. 스스로 전대미문의 정치적 사건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을 부인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인간적인 죽음이면서도 정치적 측면이 병존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사후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조해진 “대통령을 모든 일의 최종책임자로 모는 건 곤란”

조해진 = 이번 일을 계기로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가 나오는데, 정권 교체 후 ‘민주주의 말살’ ‘독재정권 타도’ 등의 구호가 나온다. 화두를 잘못잡은 것 같다. 다른 투쟁의 고리가 없으니 민주 대 반민주, 독재 대 반독재의 구조를 끄집어내는 고육책의 느낌이다.

최재성 = 인식의 차이다. 정권과 국민, 여당과 야당 사이에 생각의 간극이 너무 크다. 언론정책만 봐도 국민은 민주주의의 퇴행으로 본다. 노 전 대통령 시절에는 권력분립, 분권의 원칙에 충실했다. 그러던 것이 이명박 정부 들어 청와대 한마디에 입장이 바뀐 것도 많고, 표현의 자유도 억압당하고 있다. 대통령과 의회권력의 견제관계 문제, 정당정치의 후퇴, 4대 권력기관의 인위적 운영 등은 분명히 민주적 퇴행이다.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조해진 = 저도 인식의 차이는 느낀다. 검찰의 경우 여권과 청와대도 당혹스럽고 걱정을 했었는데, 우리가 전혀 손써볼 수 없었다. 수사과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오히려 권력을 이런 식으로 운영해도 되는 것인가 자성하는 목소리도 있다. 정치 보복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데, 명백하게 실정법 상 위배된 사실이 드러난 상황에서 덮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전직 대통령이라서 덮어주는 것은 ‘유권무죄’다. 드러난 사실에 대해 정상적으로 법처리할 수밖에 없는 문제를 보복이라 하는 것은 문제다.

최재성 = 노 전 대통령의 혐의가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분명한 혐의로 특정지어선 안된다. 대통령이 인지했는지 여부는 아직 밝혀진 바 없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하다 생각한다. 대통령은 정치인이다. 검찰이 너무 지나치다 싶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브레이크를 걸 수 있었다. 네 가지가 필요하다. 우선 대통령이 어떤 식으로든 결과론적 사과라도 해야 한다. 국민들은 대통령 잘못이 있다고 본다. 둘째, 진상조사를 철저히 하고 책임질 사람이 있으면 책임을 지워야 한다. 셋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검찰 개혁, 정치보복 근절 방법 등이 있다. 넷째, 논쟁을 해야 한다. 국민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다수를 위한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뜨겁게 논쟁하는 것은 남겨진 사람들이 할 숙제의 출발점이다.

조해진 = 대통령을 모든 일의 최종책임자로 보는 인식이 남아있다면, 그런 인식의 괴리 속에서 국정 운영은 힘들어질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쪽이든, 반대하는 쪽이든 정치적 의도를 갖고 하나뿐인 목숨을 던졌다는 논리로 가게 되면 국민적 논란과 분열이 일어날 것이다. (노 전 대통령에게) 남은 소망이 있다면 자기를 던져 논란과 갈등, 미움 등이 용해되고 자기를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까지도 하나되는, 그 중심에서 영원히 남게 되는 것일 것이다. 논란의 한편에서 동력을 제공하는 에너지원이 되는, 반대편에선 끝까지 폄하의 대상으로 남기를 바라진 않았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통합의 중심에서 본인이 영원히 기억되길 바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최재성 = 여당의 ‘정치적’이라는 말은 ‘덮고 가자’는 말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국민 통합에 반대하는 사람이 누가 있나. 추상적 통합만 이야기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적이다. 고인의 유지가 화합이고 통합이니 아무 논쟁을 말자는 것은 이중적이다. 국가권력이 분향소를 못 차리게 하고 국민들은 천막들고 3시간씩 싸웠다. 인간적 죽음으로만 봤으면 통제하지 않고 분향하게 해야 했다. 정치적으로 보니 반정부 시위로 번지지 않을까 걱정한 것이다. 인간 노무현의 죽음이 있고 전직 대통령의 죽음이 있다. 분명히 정치·사회적 숙제가 있는데 피해가는 것은 온당치 않다. 정치적 타살이라는 말 자체를 정치적 행위로 보는 것은 노무현이란 사람을 죽음 이후에도 소수 비주류의 개인 노무현으로 가둬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에 무슨 진전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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