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부당해고’ 보도 경향신문 기자···경총, 노동청 통해 징계 압박

2015.01.26 14:33 입력 2015.01.26 14:38 수정

JTBC의 프리랜서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을 보도한 경향신문 강진구 기자(공인노무사)에 대해 노동청이 공인노무사법상 비밀준수 위반혐의로 출석을 요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부당해고 피해를 당한 노동자를 위해 대리인 선임계를 제출하고 심문회의에서 참석한 후 공개리에 진행된 심문회의 내용을 보도한 것을 ‘범죄행위’로 몰고 가는 것을 과연 온당한 처사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1985년 공인노무사법 제정 이래 노무사가 노동위원회 심문회의 내용을 언론을 통해 외부에 공개한 것을 비밀준수 위반으로 문제 삼은 적은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없다. 게다가 해당 민원을 제기한 당사자가 재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경영자총연합회(경총)라는 점에서 노동청의 사건처리 결과에 따라 사용자로부터 부당한 피해를 입은 노동자들을 위한 자유로운 취재 및 보도활동에도 심각한 위축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고용노동청 남부지청은 지난 20일 경향신문 강진구 기자에 대해 “경총으로부터 공인노무사법에 의한 비밀준수의무 사항을 위반하였다는 민원이 제기됐다”며 28일까지 출석을 요구하는 통지서를 보내왔다. 강 기자는 언론노조 경향신문 지부장으로 활동하던 2012년 공인노무사 자격을 취득해 2013년부터 국내 최초로 기자 겸 노무사로 노동문제를 전담 취재하고 있다.

‘JTBC 부당해고’ 보도 경향신문 기자···경총, 노동청 통해 징계 압박

경총이 노무사로서 강 기자가 비밀준수의무를 위반했다며 문제를 삼은 것은 경향신문 11월13일자 <JTBC 부당해고 구제해야>(10면 보도)기사로 JTBC를 상대로 프리랜서 허모씨가 제기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서울지방노동위원회가 받아들였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해당 기사는 방송사들이 방송지원 인력 중 상당수를 프리랜서로 운영하는 가운데 방송사 컴퓨터그래픽(CG) 프리랜서 디자이너에 대해 노동위원회가 노동자성을 첫 번째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파급효과가 큰 기사였다.

특히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방송사에서 정규 근로자와 동일하게 근무를 하면서도 단지 프리랜서 계약을 맺었다는 이유로 시간외수당·퇴직금등 노동자로서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대다수 방송사의 프리랜서들의 사정을 감안하면 보도가 이뤄져야 할 상당성이 충분한 상황이었다.

강 기자는 서울지노위가 부당해고 결정을 내릴 당시 대리인으로 심문회의에 참석했으며 기사에는 노동자성과 근로계약기간을 놓고 사용자와 노동자 측이 심문회의에서 주장한 내용을 소개하며 JTBC의 반론까지 실어서 보도했다.

당시 JTBC 측은 강 기자가 전화로 반론보도를 요청하자 “취재기자가 대리인으로 활동하는 게 법적으로 문제가 없느냐”며 “너무 과도한 취재열의를 보이는 것 같다”며 불만을 표시한바 있다.

이에 대해 강 기자는 “노무사로서 사회적 의미가 있는 사건에 공익변론 차원에서 대리인으로 참석하고 의미 있는 결과가 나와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 문제가 되느냐”며“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서울지노위가 대리인 선임신청을 불허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실제로 강 기자가 노무사로서 허씨의 사건을 수임하게 된 배경도 정식으로 사건을 수임한 노무사가 심문회의를 1주일 정도 앞두고 신혼여행 중인 상황에서 누군가 대리인으로서 법률적 공백을 메워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당연히 수임료는 받지 않고 공익활동 차원에서 대리인 선임계를 제출했지만 JTBC 입장에서는 취재기자가 노무사로 사건을 맡은 것 자체가 불편하게 느껴졌을 수는 있다.

이처럼 경총이 민원을 제기하기 이전부터 강 기자와 JTBC는 프리랜서에 대한 계약해지의 정당성을 놓고 오래전부터 대립해왔다.

강 기자가 JTBC프리랜서 부당해고사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서울지노위 심문회의가 열리기 6개월 전의 일이다.

강 기자는 지난해 4월 JTBC가 계약 해지된 CG프리랜서가 노동청에 퇴직금지급을 요구하는 진정을 내자 같이 일하던 나머지 프리랜서 3명을 모두 해고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경위를 파악하던 중 프리랜서 허모씨가 용기 있게 사측을 상대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는 제보를 받았다.

강 기자는 즉각 JTBC를 상대로 확인 취재에 들어갔고 JTBC는 지난해 6월30일 허씨에 대해 복직발령을 냈다. 강 기자는 취재가 완성단계에 접어들었지만 힘들게 복직한 노동자의 회사생활에 지장을 줄 것 같다는 판단 아래 기사출고를 포기했다.

하지만 JTBC는 복직명령 후 허씨를 원직 복직 대신 인사팀 통로 한 구석에 책상을 배치하고 수시로 6개월 계약직으로 전환을 요구하다 다시 계약해지 통보를 했다. 복직되자마자 인사팀에서 온갖 수모를 겪다가 또다시 2개월 만에 계약해지된 것이다. 강 기자는 그동안 취재하면서 모아놓았던 자료를 토대로 4개월 동안 2차례 부당해고 당한 허씨의 사연을 사회면(2014년 9월1일자 8면)에 주요기사로 출고했다.

하지만 강 기자와 JTBC의 ‘악연’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허씨가 JTBC를 상대로 두 번째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JTBC가 경향신문을 상대로 언론중재위에 정정보도와 함께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당시 강 기자는 언론중재위에서 “노동자가 부당해고 정당성을 놓고 노동위원회에서 다투고 있는 마당에 ‘부당해고가 아니다’는 정정보도를 하라는 것은 언론윤리상 수용할 수 없다”며 “대신 반론보도는 수용하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JTBC는 ‘정정보도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며 조정을 거부하고 소송강행 의지를 밝혔다.

결국 서울지방노동위원회가 부당해고 판정을 내리면서 JTBC의 정정보도 요구가 얼마나 무리한 주장이었는지가 입증이 됐다.

당시 서울지노위가 허씨에 대해 부당해고 판정을 내리던 날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던 JTBC 9시 뉴스는 영화 <카트>의 제작진을 초대해 우리나라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좌담을 진행하고 있었다. 심문회의가 끝나고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허씨는 “JTBC가 회사 바깥의 비정규직뿐 아니라 회사 안의 비정규직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며 나지막이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이후 JTBC는 초심 결정에 불복해 법무법인 세종의 변호사들로 대리인을 선임하고 재심을 신청했지만 지난 19일 중앙노동위는 초심결정을 그대로 유지했다.

이제 JTBC프리랜서 부당해고를 둘러싼 노동위원회 단계에서 모든 분쟁은 마무리됐고 경총이 강 기자를 비밀준수의무 위반으로 민원을 제기한 것에 대한 노동청의 판단만 남은 셈이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강 기자가 보도한 노동위원회 심문회의 내용이 공인노무사법 비밀준수의무 조항에서 규제하려는 ‘직무상 알게 된 사실’에 포함될 수 있느냐에 모아져 있다.

현재 공인노무사법 14조는 ‘공인노무사는 정당한 사유 없이 직무상 알게 된 사실을 타인에게 누설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노동청이 심문회의에서 오고간 내용까지 직무상 알게 된 사실로 보아 이를 비밀준수 의무대상에 포함시킬 경우 향후 노동위원회에 대리인으로 참석한 노무사들은 취득한 사실을 외부에 공개할 수 없음은 물론 기자들이 노무사를 상대로 취재를 하는 것도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공인노무사법상 비밀준수의무 조항은 변호사법에도 동일하게 규정돼 있어 법조기자들이 변호사를 상대로 법원에서 일어난 일을 취재하는 것도 위축을 받을 수밖에 없다. 노동청의 판단이 이미 강 기자 개인의 문제를 넘어 언론의 자유의 문제와도 직결돼 있는 민감한 사안인 것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공인노무사법이나 변호사법상 대리인의 비밀준수의무 규정은 신중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노동위원회 위원장 강문대 변호사는 “대리인에게 보호의무가 요구되는 직무상 비밀이란 공개 시 의뢰인에게 피해가 돌아가는 의뢰인의 비밀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며 “공개된 심문회의에서 오고간 내용은 비밀로 볼 수 없으며 프리랜서 노동자성에 대한 법률적 다툼은 그 내용이 설령 비밀이라도 공익적 목적에서 보도할 이유가 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한국노동법학회장인 박수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비밀준수의무 조항은 형사처벌까지 할 수 있는 조항임을 감안한다면 그 해석은 대단히 엄격하게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