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왜 3과 100을 좋아할까

2009.01.15 09:31
김종대 | 중앙대학교 민속학과 교수

알수록 재미있는 수(數)에 얽힌 상징성

숫자가 지닌 상징성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아무 생각없이 숫자를 사용한다. 그러나 숫자에 민감한 곳이 있는데, 병원이나 호텔 등 숙박시설이다. 병원에서는 사(四)자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사(四)의 발음이 죽을 사(死)와 같은 동음이의어인 까닭에서이다. 살기 위해 들어간 병원이기에 죽음을 암시하는 숫자를 금기시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처럼 숫자는 단순하게 숫자로 기능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바로 숫자에 의미를 부여한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왜 3과 100을 좋아할까

숫자에 대한 의미나 상징성은 주로 홀수에 집중돼 나타난다. 홀수는 양수(陽數)이기 때문에 중시된 것이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세시풍속을 보면 1월1일인 설날, 3월3일인 삼짇날, 5월5일 단오, 7월7일 칠석, 9월9일 중구일 등 모두 홀수가 중첩된 날이다. 이들 숫자는 양수로서 잡귀를 능히 물리칠 수 있다고 한다. 즉 사람들의 삶이 잘되기를 방해하는 잡귀들을 물리칠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런 숫자 가운데서도 우리 민족은 유난히 셋과 백을 좋아한다.

단군신화에 나타난 숫자, 셋의 의미

유행하는 화투놀이 가운데 고스톱의 기본점수도 3점이다. 이런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이들 숫자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어서 좋아하는 것일까. 숫자에 대한 상징이나 의미부여는 요즘 와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런 모습은 바로 우리 민족의 시원을 보여주는 ‘단군신화’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단군신화에는 흥미롭게도 숫자 삼(三)이 많이 등장하는데, 삼 혹은 셋에 대한 우리 민족의 애정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먼저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올 때 풍백, 우사, 운사가 거느리는 삼천의 무리와 천부인(天符印) 3개를 들고 왔다고 한다. 풍백 등은 바람과 비 등 자연의 움직임을 관장하는 인물이다. 이런 자연현상을 관장하는 주술사를 대동한 것은 이 시기의 중요한 생업이 농경이라는 점을 알려주는 대목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왜 3명의 인물을 데리고 왔는가. 바로 세상을 다스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 바로 세 분야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웅녀가 사람이 되기를 위해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라고 했는데, 삼칠일(三七日) 만에 사람이 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여기에서 7일이 세 번 중첩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시공간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인간으로 둔갑하기 위해서는 바로 세 번의 주기가 필요하다. 이것은 바로 삼(三)이라는 숫자의 의미가 바로 완성된다는 뜻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셋의 상징성, 무엇을 의미하나

왜 우리 민족이 셋(三)을 주목하는가 하는 것에 대해 의문이 들 만하다. 삼은 실상 일(一)과 이(二)의 합이다. 즉 양과 음의 합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일과 이는 스스로 아무런 역할도 못하고, 생산적인 능력도 갖추지 못한다. 이 둘이 합해져야만 생산이 가능하게 되는데, 이때 생산된 것이 바로 삼이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음양의 조화를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 삼이라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삼은 남녀간의 결합으로 생산된 자식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셋에 대한 활용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예컨대 승패를 결정짓기 위해서 우리는 삼세판을 한다. 세 판을 통해 승패가 결정되며, 그것은 완전한 승리를 뜻한다. 또한 심마니들이 산삼을 발견했을 때 “심봤다”를 외치는 것도 세 번이다. 이 세 번의 외침은 산삼이 완전하게 자신의 소유가 되었음을 알리는 행위다.

민간신앙으로 연결된 셋의 상징

한국인들은 왜 3과 100을 좋아할까

이러한 습속은 최근까지도 삼신신앙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아기가 태어나면 삼신상을 차려놓는데, 7일마다 세 번을 해놓는 풍속이 전승돼왔다. 이것은 아기가 잔병에 걸리지 않고 잘 자랄 수 있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갓 태어난 아기가 하나의 생명을 갖게 될 수 있는 기간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기간 동안 금줄을 치는 것인데, 이것은 삼칠일 동안 아기의 면역력이 떨어져 쉽게 병을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의 경험을 통해서 얻어낸 삶의 지혜이면서 동시에 셋의 상징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삼신상에 메를 세 그릇 올려놓는 것도 이런 사정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강원도 지방에서는 흥미롭게도 3월3일, 삼짇날을 삼신날이라고 하여 삼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이 역시 셋이라는 숫자를 근거로 삼은 민간신앙임을 알 수 있다.

전통적인 어선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삼, 셋의 의미가 중시되고 있다. 남해안 지방에서는 배를 만들 때가 대개 3월이라고 한다. 배가 완성되어 진수식을 행할 날이 결정되면, 그 전에 선주가 3일 동안 배에서 잠을 잔다. 그 이유는 이 기간에 배를 관장하는 서낭이 현몽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배서낭이 정해지면 배내림날에 무당을 불러 3일 동안 풍어를 기원하는 굿을 하게 된다. 이처럼 배를 만들어 진수하는 과정까지 셋은 신성한 숫자로 중시되고 있다. 특히 셋은 풍요를 가져다주는 상징적이자 주술적인 숫자임을 암시한다.

이외에도 삼재가 끼었을 때 쓰는 부적에 머리가 세 개인 매를 그려서 액을 물리치는 습속도 있다. 그리고 사람이 죽었을 때도 염라대왕의 사자가 잘 데리고 가기를 기원하면서 사자상(使者床)에 짚신, 밥, 북어를 각각 3개씩 올려놓는다. 이것은 저승사자가 3명이기 때문이다. 저승사자가 3명이라는 것은 바로 죽음을 완전하게 마무리한다는 의도도 숨겨 있다고 하겠다.

설화에 나타난 셋의 의미

우리나라에서 전승되는 설화에서도 셋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 내용이 많다. 제주도의 시조신화에서도 고을나, 부을나, 양을나 세 시조가 땅에서 태어나 세 처녀를 맞이해 결혼한다. 그리고 첫째 날 제일도, 둘째 날 제이도에, 셋째 날 제삼도에 거처를 삼아 오곡의 씨를 뿌리고 마소를 기르기 시작한 후에야 세상은 완전한 형태를 갖추게 된다고 했다. 즉 3일이 지난 후에 세상을 온전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굿에서 전승되는 무가(巫歌)에서도 셋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일반적으로 좋은 일이 있기를 기원하는 재수굿에서 구연되는 ‘제석본풀이’에서 아들 삼형제가 등장한다. 이들 삼형제는 중과의 상징적인 행위, 예컨대 손목을 잡는 방식 등으로 당금애기가 낳은 자식들이다. 당금애기는 대가집의 무남독녀였는데, 집에 아무도 없을 때 찾아온 중에 의해서 임신하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가족들이 그녀를 쫓아내자, 당금애기는 중을 찾아가 해산을 한다. 다른 이야기에서는 홀로 삼형제를 낳았다고 한다. 이 아이들이 아비 없는 자식이라고 놀림을 당하자, 당금애기에게 아버지가 누구인가 알려달라고 한다.

그 후 아들은 아버지를 만나게 되어 삼형제는 제석이 되고, 당금애기는 삼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제석을 칭할 때 일반적으로 ‘삼불제석’이라고 하는 이유도 삼형제인 까닭에서다. 이들 삼형제는 당금애기가 삼신으로 자리잡은 것처럼 인간의 수명과 재복, 자손 번창을 담당하는 신으로 좌정했다. 이들 삼형제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갖춰야 할 가장 필요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삼재부

삼재부

민담의 경우에도 주인공이 행복을 차지하기 위해서 거쳐야 할 고난을 세 가지로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셋째 딸이 가장 똑똑한 인물로 표현되는 경우도 많다.

예컨대 ‘구렁덩덩 신선비’ 이야기에서 뱀신랑과 결혼해 무수한 고초를 겪으면서 행복을 쟁취하는 여성이 바로 셋째 딸이다. 유행가에도 보면 ‘최진사댁 셋째 따님이 가장 예쁘다던데’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이 역시 우리 민족의 셋에 대한 관념을 명쾌히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하겠다. 그런 뜻으로 본다면 셋은 완전함, 혹은 완결됨을 뜻하는 숫자로 이해해도 틀림이 없다.

백(百), 완성되고 완전함을 뜻하는 숫자

백도 셋이라는 숫자에 비해 만만치 않은 의미와 상징을 지니고 있다. 백은 단지 수로서 100의 의미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개념보다는 불완전한 것이 완전하게 이루어짐을 뜻한다. 예컨대 아기가 태어난 가장 먼저 하는 통과의례로 백일이 있다. 이것은 영아에서 하나의 인간적인 존재로 들어섰다는 것, 또는 죽지 않고 100일을 견디고 새로운 존재로 자리잡게 되었음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는 잔치인 것이다. 이때 백일떡을 100집에 나누어주면서 얻어온 천으로 옷을 만들어 입히게 되면 아기는 건강하게 100살까지 살 수 있다고 하는 속신도 있다.

백에 대한 표현도 단군신화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고 싶어할 때 환웅이 제시한 금기, 즉 햇빛을 보지 말라고 한 기간이 원래는 100일이었다. 여기서의 백은 숫자의 개념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동물의 탈을 벗고 인간으로 환생할 수 있기 위한 기간으로의 제시이다.

동물이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민담으로 전해져왔다. 그 대표적인 동물이 바로 여우라고 하겠다. 여우가 예쁜 여자로 둔갑해 남성들을 유혹한다. 그 이유는 바로 사람들의 간을 먹고 완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다. 이때 먹어야 할 간의 수가 바로 100개다. 100개를 먹어야만 사람이 될 수 있는데, 여우는 항상 1개를 놓치는 바람에 사람이 되지 못한다.

여기서 백이라는 수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셀 수 있는 개념이기보다는 꿈이나 희망의 숫자로 표현된다. 우리나라에서 전승되는 대개의 설화에서는 백을 이루지 못한 숫자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충청남도 지방에서 전승되는 ‘황팔도 전설’의 경우도 좋은 예이다.

황팔도라는 가난하지만 지극한 효자가 살았는데, 어머니가 중병에 걸린다. 용한 의사가 개 100마리를 먹여야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처방을 내린다. 황팔도는 산신으로부터 호랑이 가죽과 둔갑책을 얻게 된다. 이를 이용해서 호랑이로 변신해 매일 밤 개 한 마리씩을 구해오다가 부인의 방해로 마지막 한 마리를 구하지 못하게 된다. 황팔도는 호랑이로 남게 되고, 어머니도 죽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여기서의 백은 완성시킬 수 없는 불가능한 숫자임을 알 수 있다. 백을 얻으면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얻을 수 있으나, 백까지 오르지 못하기 때문에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 백은 완성과 완전함을 얻기 위해서 꼭 필요한 숫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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