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카이로스’ - 중대재해법이 필요한 순간은 바로 ‘지금’

2020.12.25 16:20 입력 2020.12.25 16:22 수정
위근우 칼럼니스트

일터서 사라진 수많은 생명에게, 시간은 얼마나 되돌리고 싶은 것이었을까

완성도 높은 드라마라는 호평 속에 지난 22일 종영한 MBC <카이로스>. 엄마를 찾아야 하는 과거의 여자 애리(이세영)와 딸을 구해야 하는 미래의 남자 서진(신성록)이 하루 1분 전화 통화로 공조하는 분투기를 그렸다.  오에이치스토리·블러썸스토리 제공

완성도 높은 드라마라는 호평 속에 지난 22일 종영한 MBC <카이로스>. 엄마를 찾아야 하는 과거의 여자 애리(이세영)와 딸을 구해야 하는 미래의 남자 서진(신성록)이 하루 1분 전화 통화로 공조하는 분투기를 그렸다. 오에이치스토리·블러썸스토리 제공

“만약 정말로 힘든 상황이 온다면, 시계를 되돌리고 싶을 순간이 바로 오늘일 것입니다.” 지난 8월27일,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제2부본부장은 코로나19 대응 브리핑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그의 말대로 “예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였지만, 마치 과거를 바꾸기 위해 미래에서 보낸 경고 같기도 하다. 조금만 엉뚱한 상상을 더해보자.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 1000명 내외를 기록 중인 요즘 그 혹은 다른 누군가가 4개월 전의 그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부터 벌어질 앞으로의 확산을 꼭 막아야 한다고, 그러지 않으면 연말에는 무시무시한 3차 확산이 벌어질 거라고 경고했던 거라면 어떨까. 미래를 알지만 단 4개월만 주어진 그로선 ‘시계를 되돌리고 싶을 순간이 바로 오늘’이란 말이 정해진 미래를 바꾸기 위한 최선의 표현이지 않았을까. 한 줄짜리 브리핑에서 너무 나아간 헛된 상상이지만, 이 긴박한 가정으로 이번 주 종영한 MBC 드라마 <카이로스>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2020년 9월 사내 중요 행사 도중 딸이 유괴되는 일을 겪은 유중건설 이사 김서진(신성록)은 우연히 한 달 전인 8월의 시간을 사는 취업준비생 한애리(이세영)와 통화하게 된다. 그는 한 달 앞선 미래의 정보를 바탕으로 행방불명된 애리의 어머니를 찾는 걸 돕는 대신, 애리에게 앞으로 일어날 딸의 유괴를 막아주길 부탁한다.

물론 서로 다른 시간을 사는 두 인물이 서로 연락을 하며 과거를 바꾸고 결과적으로 미래를 바꾼다는 이야기는 멀리는 영화 <동감>과 <프리퀀시>가 있고, 2016년 방영한 tvN 드라마 <시그널>을 거쳐 최근 넷플릭스에 공개되며 화제를 모은 영화 <콜>도 비슷한 설정에서 출발한다. 다만 과거와 현재 혹은 현재와 미래 간 시간적 간극이 큰 앞서의 작품들과 달리 서진과 애리는 단 한 달의 시간 안에 미래를 바꿔내야 한다. 그들에게 시간은 얼마 없다. 한 달 전 과거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은 마법 같은 일이지만, 또한 중대한 사건을 막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심지어 그들에게 허용된 통화 시간은 저녁 10시33분에서 34분까지 하루 중 단 1분이다. 하여 서진과 애리는 비슷한 그 어떤 작품의 주인공들보다 촉박하고 부지런한 하루를 보내며 정보를 모으고 교환한다. 애리는 서진 주변의 진실에 접근할 때마다 목숨의 위협을 받고, 서진은 미래를 바꿔줄 애리를 구하기 위해 그의 사망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제공한다. 둘 모두 서로의 정보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만큼 더더욱 그들의 하루는 촌각을 다툴 수밖에 없으며, 동시에 각자의 정보로 퍼즐을 맞춰나가는 추리의 쾌감도 배가된다. 시청률은 낮았지만 <카이로스>의 서사적 만듦새는 올 한 해 방영한 MBC 드라마를 통틀어 가장 돋보이는 수준이다. 서진 딸 다빈(심혜연)의 유괴에 대한 진실에 접근하고 사건을 막는 8회까지만 따져도 그러하다. 그리고 <카이로스>는 최종적으로 그 이상을 보여준다.

제목인 <카이로스> 그대로 드라마는 인과적이고 선형적인 시간으로서의 크로노스가 아닌, 인물들의 선택과 결단을 통해 계속해서 새롭게 써나가는 시간으로서의 카이로스를 보여준다. 이것은 단순히 미래를 알기에 그에 맞춰 현재를 사는 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시간의 방향만 바뀐 또 다른 인과적 크로노스일 뿐이다. 주식 파동을 미리 알고 사고파는 것, 사고가 날 열차에 타지 않는 것은 다가올 미래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지 미래를 바꾸는 것이 아니다. 주식 파동에 피해를 입을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 열차의 사고를 막는 것, 그것이 미래를 바꾸는 것이며 카이로스의 시간을 사는 것이다. 여기엔 용기와 윤리적 결단이 필요하다. 자신과 같은 시간대의 서진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 애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다빈이 유괴되는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사건을 막는 데 성공한다. 미래를 아는 마법보다 중요한 건 미래를 바꾸려는 의지다. 여기서 <카이로스>는 그 의지들이 모여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탐구한다. 서진이 과거 태정타운 건설 붕괴현장의 마지막 생존자라는 것, 애리가 피해 사망자 유족이라는 것에서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지만, 중반을 넘어간 드라마는 두 사람이 태정타운 붕괴에 대한 유중건설 유서일(신구) 회장의 비위를 쫓는 방향으로 선회한다. 애리의 어머니 곽송자(황정민)가 행방불명됐던 건, 과거 그가 서진의 아버지이자 태정타운 현장에 있던 김유석(최덕문)에게 받은 유서일의 비위 증거를 숨기고 조용히 사라지는 대가로 애리를 위한 돈을 받기 위해서였고, 이를 모르던 애리는 어머니를 찾는 과정에서 유서일의 심복 이택규(조동인)에게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다. 그때마다 미래의 서진의 도움으로 살아남지만 앞으로 한 번 더 죽을 운명인 그는 진실을 숨기는 송자에게 말한다. “내가 한 달 후의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해서 앞으로 올 불행을 다 막을 수 있는 건 아니야. 왜냐면 진짜 근본적인 원인은 그대로니까.” 미래를 바꾸는 건 지금 이곳에서 용기를 내는 것이다. 미래의 서진은 과거의 애리와 자신이 바꿔줄 미래를 기대하며, 자신의 목숨을 바쳐 유서일로부터 태정타운 붕괴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녹음해 애리에게 전달한다. 이제 앞날을 아는 건 불가능하다. 그저 바꿔야 할 뿐이다.

미래를 바꾸는 것이 유서일 개인의 과거를 단죄하는 것이 아닌 앞으로 유서일 같은 사람이 더는 나오지 않는 것이라면, 시민의 조직적 문제제기와 사법 시스템을 통한 단죄가 필수적이다. 장르적 쾌감만을 따진다면 미래의 서진이 확보한 녹음파일이 스모킹건이 되어야겠지만 <카이로스>는 이를 포기하면서까지 송자를 비롯한 여러 평범한 사람들의 의지와 연대를 통한 해결을 선택한다. 유중건설의 부실 자재 때문에 첫째 딸을 잃었다고 믿고 다빈의 납치에 협력하기도 했던 김진호(고규필)는 자신의 아이가 살 미래를 바꾸고 싶은 한 명의 아버지로서 송자가 자신에게 맡겼던 증거 영상을 들고 법정에 출두한다. 역시 미래를 바꾸고 싶어 했던 유석이 목숨을 바쳐 얻어낸 증거이며 피해 유족인 송자가 그동안 고이 보관해온 증거만이 진정 최후의 스모킹건이 되어 미래를 바꿀 수 있다. 이처럼 진정한 의미의 카이로스를 보여주기 위해 애쓴 드라마의 엔딩에서 정작 아쉬운 건 다른 부분이다. 예상치 못한 싱크홀 때문에 태정타운 현장이 붕괴한 걸로 알고 있던 서진은 아버지의 과거 부사수였던 피해자 협의회 대표를 통해 명백한 지반 위험요소에도 불구하고 부실시공이 있었고 여기에 유서일과 유중건설의 책임이 막중했음을 알게 된다. 삼풍백화점의 기억을 안고 있는 한국에서 건설 비리는 현대사적 맥락을 갖는다. 하지만 진실을 파고들던 서진은 더 나아가 유서일이 폭발물로 의도적으로 현장을 붕괴시키고 건설 주체였던 반영건설을 흡수했음을 알게 된다. 여기서 갑자기 이야기는 원가를 줄이기 위한 부실시공과 이를 눈감아주는 공권력의 구조적 문제가 아닌 악마적 사업가 유서일 개인의 악업으로 축소된다.

위근우 칼럼니스트

위근우 칼럼니스트

하지만 이것을 작가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작가는 피해자 협의회 대표의 입을 통해 노골적으로 구조의 문제를 고발하고 진짜 책임자를 처벌할 필요를 이야기한다. “우리나라에 왜 참사가 거듭해서 일어나는지 알아요? 늘 말단 책임자만 처벌받고 끝나니까. (중략) 유가족이 뭐 하나라도 더 알고 준비할까봐 정보를 차단하고 덮기에 급급했던 게 지금까지 유 회장의 일관된 모습이었다고.” 잘 알려진 것처럼 건설 및 산업 현장 다수는 위험의 외주의 외주의 외주화를 통해 이뤄지며, 수많은 노동자가 안전하지 못한 환경에서 목숨을 잃어왔고 또 잃어가고 있다. 하지만 인용한 대사대로 처벌은 사업의 실질적 주체인 기업주에게까지 이뤄지지 않는다. 작가는 그러한 현실을 고발했지만, 바로 그 이유로 적어도 사법 시스템 안에서는 부실시공과 안전을 소홀히 한 증거만으로 유서일에게 수많은 노동자의 생명에 대한 책임을 묻기 어렵다. 그러니 고의적 폭파라는 과도한 악마적 설정을 도입해야만 유서일을 처벌할 수 있다. 이것은 서사적 무리수를 가장한 현실 고발 및 비판이다. 하여 현재 논의 중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입법 이유를 역설적으로 더 잘 증명해준다. 그 많은 사람이 죽었어도 직접 폭파를 지시한 게 아닌 이상 경영자를 처벌할 수 없다면, 이것은 법의 공백이 맞다. 현장에서 사라진 수많은 생명에게 시간은 얼마나 되돌리고 싶은 것이었을까. 첫 문단에서 인용한 브리핑 문구를 변용해 말해보겠다. 산업 현장에서 누군가 목숨을 잃을 때마다 시계를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입법해야 하는 지금이라고. 다시 한 번 엉뚱하게, 어쩌면 드라마의 메시지는 가까운 미래의 작가가 보내준 시급한 경고가 아닐까 상상해보지만, 사실 여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결국 미래를 바꿀 카이로스의 시간은 정해진 앞날이 아닌 지금 우리의 결단으로부터만 출발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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