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38)써도 그만이 없

2022.05.05 07:00 입력 2022.05.05 14:30 수정
김종길 다석철학 연구자

늙은이(老子) 35월은 큰그림(大象)을 잡고 하늘 아래로 가는 길이다. 큰그림은 집집 우주가 저 스스로 돌아가는 저절로의 제절로다. 스스로 그러함이다. 스스로 저절로 짓고 일으키며 낳고 되고 이루는 그 모든 그러함의 그물이요, 그물코다.

21월을 풀면서 이렇게 말했다. 흐릿하고 어릿어릿 빛나는 가운데에 그림(象)이 있다. 그림은 꼴 생김이다. 어릿어릿 빛나고 흐릿한 꼴 가운데에 몬(物)이 있다. 몬은 ‘있있(存在)’의 꼴몬이다. 컴하고 환한데에 있는 그림 꼴, 환하고 컴한데에 있는 꼴의 몬. 노자 늙은이 14월에서 없꼴의 꼴이요, 없몬의 그림이 환캄/얼떨(恍惚)이라 했으니 사실 그것은 보고 듣고 쥐어 잡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보고 또 보아도 그윽하고 아득할 뿐이다. 앗, 그러나 그 꼴몬 가운데에 알짬이 있다!

예부터 이제까지 그 꼴몬은 떠나가지 않아서 하늘땅 우주의 온갖 잘몬(萬物)과 꼴그림(形象)의 뭇비롯(衆甫)을 거기서 본다. 삼라만상(參羅萬像)이 거기 여기 있다! 뭇비롯의 꼴몬에 박힌 알짬은 참 아름답구나. 늘 그 아름다움을 보면서 깨닫는다. 그런데 나는 무얼 가지고 뭇비롯의 그러함을 알까? 길 때문이리라. 오직 길 바싹 따름으로 속알 밝아 어른거리니 그림이 몬으로 다시 알짬으로 깊고 깊어서 참이 옹글고 믿음이 다부지다.

14월에서는 또 이렇게 말했다. 길을 터 연 길벼리(道紀)의 그물코가 천 코니 말로 너스레를 떨어도 참소리 얼줄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얼나 솟은 참은 없꼴의 꼴이요, 없몬의 그림이다! 오롯이 솟은 참이 얼떨하니 길벼리의 얼줄이 뚜렷하다. 단숨에 스스로 저절로 있는 그대로의 집집 우주가 알아지고 어길 수 없는 올 수레 큰 수레의 바퀴 굴림이 무작스럽다. 온통 하나로 뻥 뚫렸다.

줄줄 꼬여 닿, 이름 못해(繩繩不可名·승승불가명)

다시 없몬 돌아감(復歸於無物·복귀어무물)

일러 없꼴의 꼴(是謂無狀之狀·시위무상지상)

없몬의 그림(無物之象·무물지상)

일러 얼떨(是謂惚恍·시위홀황)

- 노자 늙은이 14월에서

큰그림은 집집 우주가 저 스스로 돌아가는 저절로의 제절로다. 스스로 그러함이다. 스스로 저절로 짓고 일으키며 낳고 되고 이루는 그 모든 그러함의 그물이요, 그물코다. 닝겔, 천천히 걸어가는 삶, 2021

큰그림은 집집 우주가 저 스스로 돌아가는 저절로의 제절로다. 스스로 그러함이다. 스스로 저절로 짓고 일으키며 낳고 되고 이루는 그 모든 그러함의 그물이요, 그물코다. 닝겔, 천천히 걸어가는 삶, 2021


사슴뿔이 풀어 말한다 : 얼줄이 줄줄 꼬여 닿아 얼빛이 터지면 참나 얼나로 벌떡 솟구치지 않겠는가! 온통 하나로 꼬였으니 하늘 하실로 늘이 돌아갈 뿐이라네. 길 옳다는 참, 늘참(常道)이 아니요. 이름 온 꼴이 늘꼴(常名)이 아니라 하지 않았나. 얼빛 터진 얼나는 이름 못한다네. 이름 온 꼴이 아니니 없몬(無物)이라네. 참의 얼나는 없꼴의 꼴이요, 없몬의 그림이라네. 얼빛 얼나로 환하니 얼얼덜덜의 얼떨이라네. 허허 참, 이것 참!

줄줄 닿았으나 이름 못하겠으니, 다시 없몬으로 돌아감이여. 이 일러, 없꼴의 꼴이요, 없몬의 그림이라. 그것을 일러 환캄, 얼떨이라 했다. 큰그림은 그 돌고 돌아가는 환캄 얼떨의 스스로 그러함이다.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38)써도 그만이 없

숲 언저리에 둘러앉은 여섯. 이번엔 사슴뿔과 사랑이가 말을 나눈다. 높 마당을 에둘러 큰물이 흐른다. 해가 높이 솟아서 세상을 비춘다. 여기저기 어디 보이지 않는 곳이 없다. 세상은 두루두루 짓 되어서 푸르다.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38)써도 그만이 없

사슴뿔 : 다석은 35월의 첫 글을 오래 불렸다네. ‘아주 큰그림을 잡고 하늘 아래로 가도다’라고 풀었으나, 그 밑에 다른 새김을 붙였지. ‘큰그림을 잡았으니 세상이 가도다’라고 말이야. 큰그림의 ‘그’를 ‘그어’로 본 것은 짓고 일으키는 숨몬의 큰 움직임을 담고 싶었기 때문이지. 낳고 되고 이루는 스스로 그러함의 돌아감이 그 안에 있는 것이라네.

사랑이 : 하늘 아래로 가도다. 세상이 가도다. 이 두 개의 글은 어떻게 이어지지?

사슴뿔 : 길올(道理) 다스림의 뿌리는 늘 하늘이 아래로 내려오면서 비롯되는 것이라네. 그래야 세상이 돌아가고 말이지. 집집 우주의 아주 큰그림이 저절로 돌아가는 길올을 떠올려 보게나.

사랑이 : 옳거니! 가는 것은 여기서 저기를 오가는 것이 아니라, 가고 또 가는 길의 돌아감이구나! 길올 다스림의 돌아감!

사슴뿔 : 그렇다네. 큰그림은 바로 길 올바름의 돌아감이라네.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38)써도 그만이 없

사랑이 : 그러니 가되 언짢지 않고, 편안하고 평안하며 태평한 것이로구나.

사슴뿔 : 길이 올바르니 뒤범벅이 없지.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38)써도 그만이 없

사랑이 : 편안, 평안, 태평이니 두루두루 짓 되어 흐르는 물처럼 골고루 번지겠어.

사슴뿔 : 소리 울리고 먹을 것 있는 자리는 지나가는 손이 머물 따름이라네. 그렇지만 큰그림 잡고 하늘 아래로 돌아가는 자리는 그저 비어 빈 빈탕의 숨몬일 뿐이라네.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38)써도 그만이 없

사슴뿔 : 길, 가, 나가는 입은, 심심하니 그 맛이 없다네. 보아서 보잘 게 없고, 들어서 듣잘 게 없다네.

사랑이 : 길, 가, 나가는 입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사슴뿔 : 길은 그저 가는 것이지. 흐르는 것이지. 하늘 하나로 머리 시원하게 비우고 돌아가는 것이지. 꼿꼿하게 세우고 늘 흐르는 것이지. 그러니 길은 가고 흐르는 늘의 그러함과 다르지 않다네. 그러니 길, 가, 나가는 입은 늘의 숨 쉼과 같지 않겠는가. 그저 산숨(生氣)이 싱싱하게 돌아가는 바람처럼 말일세. 바람은 그 맛이 심심하고 보아도 텅 비었으니 보잘 게 없고, 들어도 스스로는 말이 없으니 듣잘 게 없다네.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38)써도 그만이 없

사랑이 : 길, 가, 나가는 늘의 숨 쉼이라. 산숨이 싱싱하게 돌아가는 바람이라. 가고 가고 또 흐르고 흐르는 늘의 그러함이라. 그러니 암만 쓰더라도 그만 이랄 게 없겠구나.

사슴뿔 : 허허 참, 이것 참. 그렇다네. 길은 늘이요, 가고 돎이요, 숨이 흘러 돌아가는 스스로 있는 그대로의 저절로라네. 자, 그럼, 35월도 새로 새겨봄세나.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38)써도 그만이 없

■김종길은

다석철학 연구자다. 1995년 봄, 박영호 선생의 신문 연재 글에서 다석 류영모를 처음 만났는데, 그 날 그 자리에서 ‘몸맘얼’의 참 스승으로 모셨다. 다석을 만나기 전까지는 민중신학과 우리 옛 사상, 근대 민족 종교사상, 인도철학, 서구철학을 좇았다. 지금은 그것들이 모두 뜨거운 한 솥 잡곡밥이다. 함석헌, 김흥호, 박영호, 정양모, 김흡영, 박재순, 이정배, 심중식, 이기상, 김원호 님의 글과 말로 ‘정신줄’ 잡았고, 지금은 다석 스승이 쓰신 <다석일지>의 ‘늙은이’로 사상의 얼개를 그리는 중이다.

■닝겔은

그림책 작가다. 본명은 김종민이다. 대학에서 철학을, 대학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다. <큰 기와집의 오래된 소원>, <소 찾는 아이>, <섬집 아기>, <워낭소리>, <출동 119! 우리가 간다>, <사탕이 녹을 때까지> 등을 작업했다. 시의 문장처럼 사유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으로 독자들과 만나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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