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표 한국개발연구원 원장 신년 인터뷰 “한국 경제는 50~60년 된 집, 서비스업 중심 ‘리모델링’해야”

2020.01.01 20:51 입력 2020.01.01 21:01 수정

최정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이 지난달 30일 세종시 KDI 원장집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 원장은 한국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고 제조업 중심의 성장전략이 한계에 이르렀다며 서비스산업으로의 구조개혁을 통해 성장잠재력을 높여가야 한다고 말했다.  권호욱 선임기자

최정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이 지난달 30일 세종시 KDI 원장집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 원장은 한국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고 제조업 중심의 성장전략이 한계에 이르렀다며 서비스산업으로의 구조개혁을 통해 성장잠재력을 높여가야 한다고 말했다. 권호욱 선임기자

인구 감소로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은 불가능…70년대 중화학공업 전환 때처럼 획기적 구조개혁 필요

내수 진작으로 경제 자생력 확대 시급…보건·의료 등 분야, 복지 아닌 산업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투자 어렵다며 규제 개혁·노동 유연성 문제 말하는 3~4세대 총수들, 위험 감수하는 기업가 정신 부족

“한국 경제는 급격한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경제성장률 2% 안팎의 저성장 기조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경공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1970년대 중화학공업으로 탈바꿈시켜 성장 발판을 만들었듯 앞으로는 서비스산업을 집중 육성하는 대대적인 구조개혁으로 성장잠재력을 끌어올려야 합니다.”

최정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67)은 지난달 30일 세종시 KDI 집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신년 인터뷰를 하면서 “한국 경제가 선진국형 구조로 변하는 상황에서 과거의 고도성장은 불가능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최 원장은 한국 경제를 “50~60년간 살아온 집”으로 비유하며 제조업 중심의 성장구조를 서비스산업으로 전환하는 ‘리모델링’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보건·의료 등의 서비스업을 복지로 인식해왔지만 산업정책의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서 내수를 진작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최 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두고는 “소득주도성장이 곧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공격받았다”면서 “소비를 늘리기 위해 일정 수준 이상까지 가처분소득을 늘려주는 정책 방향은 옳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 원장은 “투자 여력을 지닌 재벌 대기업은 규제와 노동유연성 문제를 들며 투자하기 어렵다고 하지만 문제는 현재의 3~4세대 총수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하겠다는 기업가 정신이 없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최 원장은 2018년 3월 취임하기 전까지 30년간 건국대에서 미시경제학과 산업조직론 등을 강의한 경제학자다. 재벌체제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와 공정거래위원회 비상임위원 등을 역임했다. 그간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제조업 중심 성장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분석이 나오는 상황에서 최 원장에게 2020년 한국 경제가 나아갈 방향을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 지난해 한국 경제의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나.

“경제성장률이 2017년 3.1%, 2018년 2.7%를 기록하고 지난해는 2.0%로 떨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경기가 하향 국면에서 저점에 이르렀다고 본다. 그나마 정부의 공공부문 지출이나 일자리 창출 등 재정 확장과 통화당국의 금융완화 정책이 경기하향 속도를 늦췄다. 수출과 같은 경기지표가 부진했는데, 이는 하향 국면에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올해는 경제성장률을 2.3%로 전망하는데, 경기가 상향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다. 경제는 본래 순환하기 마련이다.”

- 한국 경제의 성장세를 전망한다면.

“앞으로 급상승은 어렵다. 저성장 기조에서 3~4%대 경제성장률 달성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거다. 인구 감소가 치명적이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선진국형 경제로 변하는 상황에서 성장 초기 단계의 10% 가까운 성장률은 불가능하다. 앞으로 성장률은 2% 정도로 수렴할 것이다. 자본축적과 기술혁신, 어느 정도의 구조조정을 거치면 조금 더 높은 성장률에 다가갈 수는 있다. 단기적으로는 경기대응을 위해 당분간 확장적 재정정책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 저성장 시대에 경제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

“삶의 질을 높이고 경제구조를 획기적으로 개혁해 성장잠재력을 키워가야 한다. 현재 한국 경제는 50~60년간 살아온 집이라고 보면 된다. 지금까지는 도배만 다시 하고 일부분만 고치며 살아왔다면 앞으로는 리모델링을 해서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산업구조를 기존처럼 제조업 중심의 전통적인 주력산업 위주로 갈 것이냐 아니면 서비스산업 비중을 끌어올릴 것이냐, 재벌 대기업 중심 체제를 이어갈 것이냐 중소기업 위주로 재편할 것이냐가 구조적 과제다. 2~3%대의 꾸준한 경제성장률을 달성하는 중장기적인 구조개혁을 고민할 시점이다.”

- 구조개혁의 핵심은 무엇인가.

“서비스산업 육성이다. 중국의 기술 추격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전통 제조업 중심의 성장은 한계에 이르렀다. 수출의존도가 높고 수출이 특정 상품에 집중돼 대외 변수에 취약하다. 서비스산업 육성은 내수를 진작해 우리 경제의 자생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제조업 수출도 하되 내수 영역을 키워가자는 것이다. 선진국들은 서비스산업이 중심이지만 우리는 아직까지 그 비중과 생산성이 낮다. 한국 경제가 지금까지 성장하며 누려온 ‘해외 특수’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도 감안해야 한다. 1960년대는 베트남전쟁 참가로 인한 ‘월남 특수’라는 성장 돌파구가 있었고, 1970년대에는 ‘중동 특수’가 있었다. 중동 특수가 끝나자 198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에 따른 ‘중국 특수’의 혜택을 받았다. 북한의 자원과 한국의 자본을 결합하는 ‘북한 특수’를 기대해볼 수 있겠으나 지금은 대북 제재 등으로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블루오션’인 서비스산업으로의 내부 구조개혁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KDI는 7대 서비스산업인 문화·예술, 관광·레저, 보육·육아, 간병·요양, 평생교육, 환경산업, 보건·의료를 육성하는 방안을 2018년부터 집중 연구해왔다.”

- 정부도 각종 서비스산업 발전 방안을 마련해오지 않았나.

“지금까지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대책을 만드는 데 소극적이었다. 정부는 앞으로 우리가 서비스산업 위주로 먹고살 수 있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고민을 해야 한다. 1970년대 중화학공업을 집중 육성하고부터 산업구조가 기존 경공업 중심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과거 중화학공업을 육성한 정도로 서비스산업을 발전시키겠다는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서비스산업을 복지로 인식하는 경향이 컸는데 산업정책의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 고령화 시대에 노인이 되면 요양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어 보건·의료와 간병·요양 서비스 등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다. 정부는 직접 혹은 민간자본을 유치하는 등의 방법으로 서비스산업에 투자해야 한다. 서비스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려면 보건복지부나 교육부 등에 나누어진 관련 업무를 아우를 수 있도록 정부 조직이 정비될 필요도 있다.”

최정표 한국개발연구원 원장 신년 인터뷰 “한국 경제는 50~60년 된 집, 서비스업 중심 ‘리모델링’해야”

- 정부는 올해 ‘방한 관광객 2000만명 유치’를 내걸고 있다.

“관광·레저 산업은 내국인보다는 외국인을 유치하는 방향으로 육성해야 한다. 외국의 저소득층 관광객보다는 고소득층 관광객을 끌어들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관광자원에 비해 실적이 빈약한 것이 현실이다. 서해안과 남해안에 다도해 등 천혜의 자연환경이 있는데 국책 관광지조차 없어 외국인 관광객들이 서울이나 제주도로 몰린다. 무언가를 보는 것도 관광이지만 쉬는 것도 관광이다. 휴식하려면 지방으로 가야 한다. 한국인들이 베트남 다낭이나 인도네시아 발리에 가는 것도 마찬가지 개념이다. 지방 중심의 관광·레저 산업 발전은 지역균형발전과 지방 인구 감소 문제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 정부 차원에서 관광 인프라를 마련해가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에 가보면 동네 뒷산에도 케이블카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주요 관광지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것도 합의가 안되고 있다. 유럽의 대표 휴양지인 스위스는 해발고도 2000~3000m 산악지역에 철도시설을 깔며 인프라를 잘 갖췄다.”

- 서비스산업 전환 과정에서 지나친 시장화와 대기업 선점 우려가 있다.

“보건·의료 등 서비스산업 육성이 시장과 수익성 위주로 이뤄져야 한다는 뜻으로 오해돼서는 안된다. 수익성과 공익성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자본력이 강한 재벌 대기업이 수익성을 찾아 서비스 시장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를 받아들이면서도 중소·중견기업 그리고 서비스를 누리는 지역민 등과의 상생 방안을 정부가 사전에 설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19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 때처럼 대기업에 대규모 정책금융 등 일방적인 특혜를 주는 방식은 곤란하다는 얘기다. 특혜를 받은 대기업이 독점적 지위를 바탕으로 각종 부수사업을 계열사에 하청 주고 수직계열화 구조를 만들어 시장을 지배하는 모습을 우리는 지금까지 목격해왔다. 상생 방안은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설계돼야 한다. 연구가 많이 이뤄져야 하는 영역이다.”

- 내수 진작을 내건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을 어떻게 평가하나.

“소득주도성장의 방향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소비 수준은 다른 나라에 비해 낮다. 소비를 끌어올리려면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소득을 늘려줘야 한다. 소비와 투자를 진작해 유효수요를 창출하면 경기가 살아나고 선순환한다는 내용은 경제학 원론에 나오는 얘기다. 그러나 소득주도성장이 제대로 진척되지 못했다. 소득주도성장이 곧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공격받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필요하다. 그러면서 상황이 어려워진 영세 자영업자들을 다른 방향으로 지원해주는 것 또한 필요하다.”

- 소득주도성장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지난 12월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보면 2018년에 저소득층 소득이 늘어 소득분배가 개선됐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성과가 나오는 것으로 본다. 현 정부 임기가 끝날 때쯤이면 성과가 더 커질 것이다. 주 52시간 근무제도 지금은 저항이 심하지만 가야 할 방향이고 2~3년 뒤 효과가 나타나리라고 생각한다. 모든 경제정책에는 부작용이 있다. 경제정책을 과감히 쓰면서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긍정적 결과를 최대한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 투자 부진 극복을 위해 정부는 규제개혁을 강조하고 있다.

“규제는 필요악이다. 선진국일수록 안전을 지키고 환경과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규제를 많이 둔다. 규제를 풀려면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이명박 정부의 ‘전봇대 뽑기’와 박근혜 정부의 ‘손톱 밑 가시 빼기’식 규제개혁은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지 못한다. 규제를 무조건 없애기보다는 규제의 품질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규제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규제 도입 시와 달라진 상황을 반영해 규제를 재조정하되, 규제 조정으로 피해를 보는 이들의 의견도 반영해 규제의 성질을 바꿔가는 식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규제개혁을 하면 기업들의 투자가 살아날까.

“한국의 재벌 대기업들은 투자 여력이 있는데 투자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규제와 노동유연성 문제를 얘기한다. 그러나 현재 재벌 대기업은 투자에 대한 의욕이 많지 않아 보인다. 총수 1세들은 끊임없이 경쟁하며 빚을 내면서까지 투자했다. 산업 구조조정이 필요할 때까지 중복 과잉투자했다. 그러나 지금의 총수 3~4세들은 선대가 이룬 사업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위험 감수가 필요한 투자에 적극 나서지 않는다. 그러면서 규제를 투자의 위험요소로 지목하며 없애달라고 한다. 정부가 투자 여건을 만들어줘도 기업의 투자가 늘어나는 데 구조적인 한계가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재벌총수가 투자에 나서려는 기업가 정신이 부족한데 규제를 개혁한다고만 될 일은 아니다.”

- 재벌개혁의 중요한 과제를 꼽는다면.

“재벌개혁은 필요하다. 다만 한국에서 풀어가기 쉽지 않은 과제다. 경제가 좋을 때는 ‘대기업이 경제를 살리고 있는데 왜 개혁하냐’고 하고, 요즘처럼 어려울 때는 ‘재벌개혁 해서 경제 더 어렵게 할 거냐’는 얘기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재벌개혁은 ‘경제력 집중’과 ‘황제경영’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특히 황제경영은 재벌총수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사업에만 투자한다는 점에서 문제다. 재벌그룹 내에서 전문경영인의 영역과 권한을 확장시켜가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의 전문경영인은 총수를 보좌하는 역할에 그치고 있다. 재벌총수 체제가 공고한 상황에서 전문경영인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볼 수도 있지만, 주주 집중투표제와 전자투표제 도입을 담은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어느 정도 개선될 여지가 있다.”

- 내년이면 KDI 개원 50주년이 된다.

“KDI는 국책연구기관으로 국가경제의 고도성장을 견인하는 싱크탱크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왔다. 지금까지 제조업과 수출 등을 중심으로 연구해왔다면, 앞으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과 소득 3만달러 이상 시대로의 이행을 위해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 한다. 서비스산업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도 이러한 취지에서다. 삶의 질과 행복을 높이는 선진 대한민국을 만들어내기 위한 향후 50년의 비전보고서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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