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 1998년의 추억

2012.04.30 22:07 입력 2012.05.01 10:41 수정
김성훈 | 전 농림부 장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로 1998년 우리나라 경제는 온통 미증유의 마비현상을 일으키고 있었다. 농업에서는 축산업과 원예 화훼산업이 침몰 직전이었다.

당시 유럽 대륙에서는 광우병과 구제역 파동이 휩쓸어 200여명이 인간광우병으로 죽어가는 사태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 무렵 미국에서는 반추동물(소, 양) 부산물로 만든 동물성 사료가 계속 급여되고 있어 광우병이 발생할 위험을 보이고 있었다.

지금도 교차감염 우려가 있는 여타 동물성 사료 급여가 완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변형단백질 프리온에 의해 뇌가 스펀지화되는 광우병은 최소 5년의 잠복기간이 소요된다. 그 고기를 먹은 사람은 다시 10년 이상의 잠복기간이 지난 다음에야 이른바 인간광우병에 걸려 발병한다. 그래서 한창 육류소비가 왕성한 청소년과 어린이가 청년으로 성장했을 때가 걱정이다. 다른 한편,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구제역으로 큰 난리를 치르고 있었다.

[미국 광우병 릴레이 기고](2)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 1998년의 추억

그러던 차 어느 날 국무회의가 끝날 무렵 김대중 대통령이 갑자기 “농림부 장관, 우리나라에 수입하는 축산물들은 안전한가요? 국민들이 궁금해 하지 않소?”라고 물으셨다.

시간이 좀 걸렸지만, 가축방역협의회의 자문을 받아 1998년 12월7일 ‘미국산 우제류 동물 및 그 생산물의 수입위생조건 고시(1999· 3· 8 시행)’를 제정 공포했다. 내친김에 그 상위법률인 가축전염병 예방법률과 시행령도 전문 개정했다. 주된 내용은 “가축과 그 생산물(소, 돼지, 양고기)에 광우병, 구제역 등 전염성 질병이 수출국 내에서 발생했을 때, 수출국 정부는 우리나라로의 수출을 중지하는 동시에 관련사항을 통보하여야 하며, 수출재개를 원하는 경우 그 위생조건 등에 관하여 한국 정부와 협의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국 정부 수의당국은 우리나라에 수출하는 미국 내의 육류작업장 등에 대한 현지 위생점검을 할 수 있으며, 위생점검 결과 부적합할 시 해당 사업장의 대한국 수출을 금지할 수 있도록 했다. 국내외에서 적잖은 이의가 제기됐지만,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규정과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의 위생 및 검역조항, 상위 국내법인 가축전염병 예방법을 인용해 밀어붙였다.

정부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정부이며 국가인가. 아무튼 이 고시에 근거해 2003년 젖소 1마리를 필두로, 2005년, 2006년, 각각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했을 때 우리 정부는 즉각 수입중단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그에 앞서 캐나다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시켰다.

그러나 올해의 미국 광우병 발생 때는 그냥 속수무책 ‘쇼’뿐이다. 어렵사리 지켜낸 독립국가로서의 고유한 검역주권을 2008년 4월과 6월,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초 방미선물로 고스란히 미국 축산농민에게 헌정하는 내용으로 180도 바뀌었기 때문이다.

애꿎게도 불쌍한 건, 농림수산식품부 관료들이다. 지금 국민들로부터 ‘배알도 쓸개도 없는 사람들’로 눈총을 받으며 피땀을 흘리고 있다. 필자 역시 2008년 5월8일 농림, 보건 두 부처의 도하 각 신문 1면의 광고성명과 국무총리의 대국민담화, 5월13일 국무회의에서의 대통령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이렇게까지 편파적으로 불가사의한 검역주권 포기 행위와 수입위생조건 고시가 개정되었으리라고는 차마 의심하지 않았다. 어차피 ‘검은 머리 외국인’ 같은 관료들이야 믿지 않은 지 오래지만, 최소한 그 말들을 거꾸로 뒤집어 의심하고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어리석음을 통탄해 마지않는다.

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 국민께 봉공하는 총리와 장관, 교섭본부장이기를 스스로 포기하는 그들의 자해행위가 1998년대 구관료의 눈으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검역을 중단하고, 앞으로 수입을 재개하더라도 대한국 수출분에 대하여는 정육 1㎏당 250원밖에 들지 않는 광우병 ‘신속검사(ELISA)’를 의무화해야 한다. 더 말하다간 또 민간인 불법사찰 대상으로 찍힐까 겁이 덜컹 난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