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경비원 야간 근무 실태

2011.11.07 21:24

텔레비전 막아놔 CCTV 만 응시

주민들 눈치보느라 의자서 ‘쪽잠’

밤 10시가 되자 아파트 경비노동자 ㄱ씨(62)의 눈이 껌벅거리기 시작했다. TV를 설치하지 못하게 막은 탓에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경비초소 안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 뿐이다. 그는 CCTV화면 방향으로 몸을 돌리고 앉더니 졸다 깨다를 반복했다. 아파트 주민이 초소 앞을 지나가는 기척이 느껴지자 갑자기 몸을 똑바로 일으켜 자세를 바로잡았다. 메모장에 의미 없는 ‘正(바를 정)’자를 계속 써나갔다.

지난 3일 밤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 쏟아지는 졸음을 쫓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ㄱ씨는 천천히 초소 밖으로 나갔다. 분리수거함에 담긴 재활용품을 ‘병류, 플라스틱, 고철·깡통, 스티로폼’이라고 적힌 자루에 분리해 담고 자루 입구를 묶었다. “재활용품을 분리수거하는 날인 화요일과 수요일, 목요일에는 10시부터 한 시간가량 정리작업을 한다”고 말했다.

오후 11시15분이 넘었다. 그는 “이제 순찰을 돌아야겠다”고 했다. 이 시간쯤이면 주차장에 미등이나 실내등이 켜진 차는 없는지, 학원에서 마치고 돌아오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돌아가고 있는지 등을 점검해야 한다.

60세 이상이 대부분인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은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저임금과 고용 불안정 등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지난 7월 경기 고양시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노동자가 청소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60세 이상이 대부분인 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은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저임금과 고용 불안정 등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지난 7월 경기 고양시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노동자가 청소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또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14층까지 올라갔다 계단으로 내려가 지하 1층까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 술에 취해 아파트 단지를 잘못 찾아온 주민들을 제집으로 돌려보내는 것도 경비노동자의 몫이다.

자정이 지나 12시20분쯤 되자 학원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덩달아 다시 한번 순찰을 돈다. 경비초소 뒤편 아파트 베란다에 도둑이 들지는 않나 살펴보고, 계단으로 1~3층을 오르내린다.

그는 “순찰이야 매일 돌지만 이 시간쯤에 한 번 더 둘러봐야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아이들과 취한 주민들이 대부분 집으로 들어가고 나면 이제 조금 쉴 수 있다.

대부분의 경비노동자들은 새벽 1시부터 4시 사이에 잠을 청한다. 몸을 펴고 누울 데가 없기 때문에 의자에 앉아서 잔다. 그런데 눈앞에 환하게 비치는 가로등이 문제다. 눈을 감아도 아파트 현관 입구와 가로등의 불빛 때문에 쉽게 잠들 수가 없다. CCTV 화면에서 나오는 불빛도 방해꾼이다. 몸이 불편하고 눈도 시리다. 임시방편으로 초소 앞 유리에 신문지를 붙여 형광등 불빛을 막는다.

ㄱ씨는 24시간 근무하고 24시간 쉬는 방식으로 일한다. 이렇게 일해 받는 월급은 100만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최저임금 적용시기가 또다시 3년 미뤄졌지만 그는 “지금 이대로가 낫다”고 했다.

“주민들은 우리가 지금 받는 돈도 비싸다고 생각할지 몰라요. 우리 월급을 올리려고 관리비 1000~2000원을 인상한다고 하면 좋아할 리가 없지요.”

그의 관심은 2015년에 최저임금을 100% 다 받을 수 있느냐가 아니라, 그때까지 해고되지 않고 다닐 수 있느냐다. 4년 뒤면 그는 66세가 된다.

ㄱ씨는 몸이 불편한 듯 몸을 좌우로 뒤척이며 편한 자세를 찾으려 애썼다. 6년째 이곳에서 일하다 보니 허리병이 생겼다.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있고, 잠도 의자에 앉아서 자다 보니 허리디스크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는 “간혹 아파트 주민 중에 ‘야간 경비원이 잠만 잔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며 “우리가 2일 3교대가 아니라 2일 2교대이기 때문에 새벽에 약간이라도 잠을 자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냥 참는다”고 했다. 교대 시간은 오전 6시. 새벽녘 선잠에 든 ㄱ씨의 고개가 비스듬히 기울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