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주마저 봉쇄된 나라의 이후

2016.10.20 20:32 입력 2016.10.20 20:35 수정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세상읽기]탈주마저 봉쇄된 나라의 이후

충성심이 바닥난 지 오래다. 이 나라를 헬조선이라고, 망한민국이라고 부를 때의 의미가 바로 그것이다.

충성심의 고갈! 이는 나랏일을 주도하는 사람과 집단과 세력, 특히 정치가 보통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할 의지도, 역량도 없다고 느낄 때 시작된다. 배후인지 실세인지 기생인지 분명치 않지만, 주변의 농단이 계속 드러나면서 고갈의 정도는 심해진다.

[세상읽기]탈주마저 봉쇄된 나라의 이후

“뭐 하나 잘한 게 없는 것들이 ‘지들끼리’ 해 처먹고 있었네…”라는 마음 확정의 계기를 포착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병우-진경준 게이트나 최순실-미르-K재단 의혹 같은 사태를 보며 그리되는 것이다.

정치의 핵인 대통령이 나서서 ‘헬조선’과 ‘망한민국’과 같은 말은 자기 비하에 불과하니 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해도 소용이 없다. 자기 비하를 즐기는 자는 내부의 적이라고 낙인을 찍어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권위도, 정당성도 다 허물어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이 먹히지 않는 상황이 조성된 것이다.

보통사람은 특정한 국가 정책의 오류나 실패, 몇몇 특정 정치인의 전횡이나 비리만을 보고 충성심을 버리지 않는다. 충성심은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이유이며, 이 땅에서 살아가며 갖는 자긍심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무익하고 해로우며, 무의미하고 부끄럽다 판단되는 곳에서는 결코 즐겁게 살 수 없는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에서 즐겁게 살아갈 이유와 긍지, 그리고 그러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어떤 것이 있어야만 하고, 또 무의식적으로 그러한 것을 스스로 찾으려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살아왔고, 살고 있으며, 살아갈 공동체에 대한 충성심은 결코 쉽게 버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항의! 그렇다. 충성심을 복원하기 위해 그릇된 것을 시정해 달라는 요청의 이름인 항의.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묵살될 때 사람은 충성심을 놓아 버린다. 자신이 권력을 위임한 자로부터 존중받고 있지 못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불합리하고 부당한 것에 대해 그저 실망하고 화가 나서 항의하는 것이 아니다. 바람직하지 못한 것과 소용이 없다 여겨지는 것이 고쳐질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항의하는 것이다. 존중감은 바로 그 기대감을 조금이라도 충족했을 때 생겨난다. 이런 의미를 갖는 항의를 외면하고 억압했다면, 존중감은 물론 존재 자체를 부정당했다고 여길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충성심을 유지할 도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항의의 무시. 박근혜 정권 들어 유독 심해진 현상이다. 특히 정권 후반기에 들어 더욱 그러하다. 왜 그런지 분석할 필요조차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지속적이고 일관되다. 세월호 참사, 메르스 및 지진 사태,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등 문제가 생겨났을 때마다 그러했다. 민주정부라고 불러도 되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항의의 무시는 민주정부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 사회적 목소리에 대한 반응성이 전혀 없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신이 내걸었던 정책을 추진할 때조차 그렇게 했다. 노동과 공공부문 개혁 등을 두고 경쟁자들의 수정, 보완 요구를 수용해 추진했으면 성과를 낼 수도 있었다. 당장은 자신의 의도를 온전히 관철시키지는 못한다 해도 종국에 가서 취지를 달성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민주정부의 역할이고 민주정치의 기본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정책 실현이 목적이 아니라, 정책 실패의 책임 떠넘기기가 목적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이다. 늘 새누리당 내부의 비박과 야당과 시민사회의 비판자 탓만 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탈주! 항의가 차단되었을 때 등장하는 것이 바로 탈주이다. 항의를 관철시켜 바로 잡아줄 세력이 없다 여겨질 때 사람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탈주를 모색한다. 그러니까 야당과 사회운동 세력에게도 기대할 게 없다 여겨질 때이다. 여론조사기관인 엠브레인이 지난 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19~59세 성인남녀 1000명 중 76.4%가 ‘이민을 생각해본 적 있다’고 답했다. 인구 1만명당 국적포기자도 2000년대 초반 급증 후 감소 추세를 보이다 2010년 전후로 다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가운데 2013년 기준 국적포기자가 하루 55명, 한 해 2만명에 달해 해외 이민율이 아시아 최고를 차지했다.

최근 외교부의 ‘해외이주신고’ 자료에 따르면 다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바로 여기서 진짜 문제가 제기된다. 항의가 수용되고 충성심을 회복해 그리 된 것이 아니라, 탈주의 비용이 없어 그리된 것일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나날이 심해지는 불평등의 정도를 감안할 때 그렇다. 특히 상위 10%가 금융자산과 부동산을 포함한 전체 부의 66.4%를 차지하고 있고, 하위 50%가 달랑 2%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그러하다.

보통사람 다수가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탈주마저 봉쇄된 상태에 놓여 있는 나라의 앞날은 무엇일까? 지진 없는 나라도, 총격사건 없는 나라도 더 이상 아니어서 탈주의 유인은 높아졌으나 철저히 봉쇄되어 있는 지금 이후, 보통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창조적일지 아닐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파괴’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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