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과 메타버스

자고 나면 달라지는 기술의 신세계를 살다 보니, 기술과 관련된 용어들도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모든 정치인들의 공약에 ‘4차 산업혁명’이 빠지지 않던 시절을 지나, 2021년의 중심이 된 트렌드 키워드로는 ‘메타버스’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평론가

팬데믹으로 비대면이 익숙하게 받아들여질 즈음에 등장한 메타버스라는 용어는 어느새 사물인터넷과 4차 산업혁명을 제치고 가장 인기있는 키워드가 되었다. 메타버스를 말하지 않으면 시대의 흐름을 못 읽는 사람이 되기 일쑤인 분위기다.

메타버스와 게임이 갖는 관계가 꽤나 두터워, 게임 분야에서도 이야기가 뜨겁다. 가상공간 속에 상호작용을 만들어내는 일은 메타버스가 유행하기 한참 전부터 온라인게임들이 이미 만들어내고 있던 무엇이었다. 20세기 말부터 수많은 온라인게임들이 독자적 세계관으로 가상세계를 만들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모험하고 거래하고 대화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을 메타버스라고 부르지 않았다는 것은 요즘의 메타버스에 다른 의미가 더 있다는 점을 내비친다.

가장 대표적인 차이가 이른바 ‘매직 서클’이라고 부르는 개념의 붕괴다. 오랫동안 게임은 현실의 시공간과 분리된 독립된 가상 시공간으로 만들어졌고, ‘매직 서클’은 현실과 가상을 가르는 그 경계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 경계는 오늘날 더 이상 이야기하기 어려울 만큼 희미해졌다. 납금이 게임플레이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 이른바 ‘현질’이라는 개념이 보편화하면서부터다. 독립적 시공간에 존재하는 게임 속의 캐릭터와 아이템들은 이제 현실의 화폐로부터 영향받는 존재가 되었다.

오랜 플레이로 얻을 수 있었던 경험치와 아이템들은 이제 결제 한 번으로 얻을 수 있다. 현실의 영향력이 가상 시공간과 연계되는, 매직 서클 붕괴의 서막을 연 현질의 보편화는 게임 속 공간을 더 이상 가상공간이 아닌 현실의 연장으로 만들어냈다. ‘현질’로 게임 속에 개입하는 게 가능해진 많은 온라인게임들은, 이런 의미에서 이미 메타버스다.

메타버스의 미래를 다룬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그냥 보기에는 화려한 첨단기술에 의한 아름다운 미래지만, 이 영화 속 세계에 감춰진 본질은 특정 기업이 모든 제도와 시스템을 독점하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독점자본주의 체제가 전 세계, 아니 가상세계를 기준으로 하면 우주 전체를 지배해 버리는 모습이다. 가상현실 속에서 얻어낸 재화가 현실에서 피자를 주문할 수 있는 화폐로 기능하지만, 그 모든 상황에서 발생하는 사회적인 타협과 제어를 위한 행동들은 영화에서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가상공간에 생성된 아이템이 현실의 화폐가치로 거래되는 세계는 비즈니스에선 기회이겠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아직 준비되지 않은 세계에 불과하다. 게임처럼 놀이의 공간으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공간이 된다면, 새로운 버즈워드에 흥분할 것이 아니라 차분히 그 세계에서 일어날 새로운 사회적 위협들을 고찰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확률형 아이템과 부분 유료 결제에는 분노하면서 메타버스에는 ‘메타버스 관련주’를 찾는, 같은 현상을 놓고 서로 다른 결을 보이는 반응이 그래서 나는 의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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