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회를 놓쳐선 안된다

2015.04.16 21:30 입력 2015.04.16 21:52 수정
허상수 | 지속가능한사회연구소 소장

못다 핀 꽃과 같은 아이들 추모제를 건너뛰고 대통령께서는 팽목항에서 유족들도 만나지 못한 채 황망히 외국 순방에 나서고 말았군요. 납득할 수 없는 처신입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천근처럼 무겁고, 그 행보 하나하나는 투명·공정·신중해야 하거늘 어찌 그리 동문서답만 남발하고 계십니까? 불법 자금 의혹을 받고 있는 국무총리야 그렇다 치더라도, 남은 2명의 부총리와 8명의 장관들조차 모두 추모식에 불참하였다고 하니 어찌 된 일입니까? 이제 한국은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자부심이 아니라 ‘동방불의지국’이라는 몰염치의 불명예와 치욕을 안게 되고 말았습니다. 마치 잊으라고, 잊으라고만 기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시론]좋은 기회를 놓쳐선 안된다

세월호 1주기 추모제는 범정부 차원에서 고인들을 애도하고, 유족들을 위무하고, 그동안 이들과 함께 거리에서, 진도와 광화문, 청운동과 여의도에서 심신을 앓아왔던 국민 치유의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리고 무기력하고 부실한 국가에서 새롭고 힘찬 인간국가, 생활국가로의 개조 의지를 다짐하는 자리여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대통령은 유족들을 직접 만나 “이 정부가 무능하여 사람들을 전혀 구조하지 못하여 죄송합니다”라는 사과를 다시 말해 줘야만 했습니다. 돈밖에 모르는 물질주의, 국가분열, 유족 모욕을 뉘우쳐야만 했습니다.

국민들은 이 추악하고 무책임한 공화국을 바꿔야 살 수 있습니다. 국민들은 덜 민주적이고, 더 비정한 자본주의 국가가 확 변화하고, 개혁할 때까지 운동의 정치를 중단할 수 없습니다. 온 국민의 요구는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바로 세워 법치주의를 확립하자는 것입니다. 현행 세월호 특별법 대통령령(안)은 진실과 정의를 가로막고, 부패와 불의를 방조, 은폐할 엄청난 위험과 오용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기에 즉각 폐기, 철회하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불량한 대통령령만으로는 세월호 참살의 진실을 인양할 수 없다고 보는 게 많은 시민과 모든 유족들의 뜻입니다. 대통령은 조사특별법 입법취지를 존중한다는 태도를 분명히 밝혀 줘야 합니다.

1년 전 대통령은 국가개조의 구상을 밝혔고, 국민안전을 위한 계획들을 만든다고 했으나 공염불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자본가와 기성 권력, 관료주의 철벽을 넘지 못하는 대통령의 통치력은 무용지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대통령은 완고한 공무원들을 설득하고, 이해시켜 새로운 국가개조의 미래상을 제시해야 합니다. 안전하고 행복한 국가로의 개조작업은 현재 추진하고 있다는 경제활성화보다 더 중요하고 긴박한 과제입니다.

‘살림’ 정치를 회복함으로써 평화와 생명, 공존과 연대의 가치를 구현하는 정의로운 공화국의 꿈과 이상을 다함께 도모해 나갑시다. 대통령 혼자만의 권한과 능력으로 성취할 수 없는 게 정치의 복원이요, 기능 회복입니다. 정치역량을 발휘하여 갈등조정의 기회를 마련한다면 수많은 백성들이 아래로부터 지지하고, 지속가능한 사회의 미래상을 공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의회정치를 위협하고 있는 월권정치는 지양해야 합니다. 정당정치를 부인하는 정부지도자는 민주주의자의 자격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시민들은 국가 치유의 꿈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제2의 정부 실패를 넘어설 때라고 생각합니다. 한 번의 실수나 실패는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고, 사고 재발을 반복하게 된다면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며 불행한 것이기도 합니다. 다시 한번 대통령의 결단과 양심 회복을 촉구합니다. 귀국하시는 즉시 유족들을 직접 관저로 초청하거나 분향소로 찾아가서 만나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 계류 중인 조사특별법 대통령령(안)을 폐기, 철회해 주십시오.

그런 다음 다른 주요 국정을 챙기셔도 아무런 차질이 없음을 다시 한번 헤아려 주십시오. 그게 국민 치유와 국가개조의 기회를 다시 맞이할 수 있는 모처럼의 황금시간임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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