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역별 비례대표제의 함정

2015.04.19 20:43 입력 2015.04.19 20:44 수정
선학태 | 전남대 명예교수

중앙선관위가 제안한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반향이 호의적이다.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눠 인구 수를 기준으로 권역별 의석 수(지역구+비례)를 배정한 뒤, 각 정당은 권역별 득표율에 비례해 의석 수를 배분받고 그 의석 수에서 소선거구 의원 당선자 수를 공제해서 비례대표 의원 수를 확보하는 ‘권역별 소선거구다수대표-비례대표 연동제’이다. 파격적인 선거제도로 평가하는 야권·학계·시민단체의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시론]권역별 비례대표제의 함정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사표 최소화, 지역민의 정치 효능감 증진, 지역인물 발굴, 지역당 출현(정당법 개정 시), 지방정치 활성화, 특정 정당의 특정 지역 의석 싹쓸이 차단 등 다목적 개혁카드다. 무엇보다 현행 거대 양당 독과점 기득권 정당체제를 허물고, 구조적으로 협치할 수밖에 없는 상생공득의 ‘합의제’로 바꾸는 변곡점이 마련될지 모른다.

중앙선관위의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독일식 비례대표제의 변종이다. 차별성이 있다. 즉 독일식 비례대표제에서는 정당투표를 전국적으로 합산한 후 각 정당별 득표율에 비례해 각 중앙당에 의석 수를 할당하고 각 중앙당은 권역(주)별로 지방당의 득표율에 따라 의석 수를 배분한다.

유사점은 권역별로 정당명부가 작성되는 데 있다. 독일의 권역별 정당명부비례제는 연방제-양원제의 반영이다. 연방상원은 연방하원을 통과한 법안에 대해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 이는 주의 이해관계를 보호해 주는 강력한 정치적 안전판이다.

따라서 정당명부가 권역별로 작성되어도 연방하원 비례의원들이 협소한 권역별 아젠다에 매몰되지 않고 전 국민적 공공재 확대를 놓고 정책 경쟁을 한다. 독일 사례는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비록 제도적 인과관계까지는 아니어도, 무릇 연방제-양원제와의 기능적 친화성이 존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중앙선관위의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한국의 중앙집권제-단방제와 순기능적으로 조합될 수 있는가에 의문이 제기된다. 권한·재정이 중앙정부에 집중된 점을 고려할 때 숱한 역기능이 우려된다. ①권역별 유권자들이 지역구 투표나 정당 투표 모두 동일한 정당에 투표하여 과다 초과의석 발생과 지역분할 양당체제 온존이다. ②지역구의원이나 비례의원 모두 경제민주화-복지-생태 등 전 국민적 공공재보다 재선에 유리한 권역별·지역구 현안사업을 챙기며 국가재정을 빼오는 정치 브로커가 된다. ③호남·충청권 의석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인구밀집 수도권 의원들이 사실상 국회를 장악하여 권역별 대표성의 심각한 불평등이 발생한다.

이러한 제도적 결손은 브라질·스위스의 권역(주)별 비례대표제에서 현실화되었다. 브라질 하원 의원들은 소속 주 유권자들의 다양한 요구와 압력에 시달리고 소속 정당의 정체성을 따르기보다는 주의 지역적 이해관계에 충성하는 의정활동을 펼친다.

이로 인해 대통령은 입법 지지 의원을 동원하기 위해 특정 주에 무리한 지역적 특혜를 쏟아부어야 한다. 스위스에서도 주 유권자들이 특정 정당의 후보(선호투표)에게 집단적으로 투표함으로써 하원의원들이 국가적 정책의제보다 주별 특정 이익집단들에 포획되고 지엽적 이해관계에 집착하곤 한다.

요컨대 중앙선관위의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교각살우의 정치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 재벌 경제력 집중, 노동시장 이중구조, 청년실업, 비정규직 차별, 소득·부 양극화, 수도권과 지방 간 불균형 등 산적한 공공 악재에 태클하기보다는 권역별 지역이기주의에 함몰되는 의원들을 양산돼 결국 ‘6개 권역별 지역주의의 춘추전국시대’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꼴이다. 두 해법이 있다. 소선거구-비례대표 연동제의 틀 속에서 전국 단위의 정당명부-정당득표율-의석배분 방식을 선택하든가, 아니면 이참에 인구·면적에 관계없이 동등한 지역 대표성을 갖는 상원-거부권(개헌)을 설치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비례대표 의원만이라도 지역이기심에서 해방되고 국민 대표성으로 무장해 보편적 공공재 분배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정치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특권 없는 의원 정수 확대와 맞물려 고민해야 할 정치개혁 아이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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