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퇴장’이냐 ‘일보후퇴’ 미래 기약이냐… 손학규로 본 거물들의 ‘정계은퇴’ 정치학

2014.08.01 22:30

선거 직후·출마 문턱서 선택

정치권 호출 때 ‘복귀’ 적잖아

이원종 등 ‘아름다운 용퇴’도

새정치민주연합 손학규 상임고문이 7·30 재·보궐선거에서 낙선한 후 정계(政界)를 떠났다. 그는 “정치인은 들고날 때가 분명해야 한다”며 자신의 정계은퇴는 순리라고 밝혔다.

손 고문 이전에도 유력 정치인들이 선거 직후 또는 출마 문턱에서 은퇴를 선언한 일이 적지 않다. 유권자의 선택을 받지 못했으니 그 뜻을 존중해 정계를 떠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선거 승패와 무관하게 사법심판을 앞두고 백기를 드는 경우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은퇴가 곧바로 영원한 퇴장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정치권에선 은퇴선언이 미래를 기약하기 위한 일보후퇴 방편이 된 사례도 적지 않다.

거물들은 대부분 중요한 선거에서 패했을 때 정계은퇴를 선언한다. 1992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2002년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잇단 대선 패배 책임을 지고 은퇴 의사를 밝혔다.

새정치연합 김한길 전 대표는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가 대선에서 지자 “참패 이후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19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30년 공직생활을 마감한다”고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출마 문턱에서 은퇴를 결심하는 일도 왕왕 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17대 총선을 앞에 두고 한나라당 내 5·6공 출신들의 정계 은퇴를 압박하다 여의치 않자 “살신성인의 선례를 남긴다”며 먼저 출마를 포기했다.

19대 총선에서 서울 중구 국회의원 후보로 나선 7선의 자유선진당 조순형 전 의원은 선거가 자신을 뺀 양자구도로 흘러가자 “초야로 돌아가겠다”며 30년 정치인생을 한 방에 마감했다.

선거 직후나 출마 문턱에서 은퇴한 이들은 ‘정치권 호출’을 근거로 다시 정계로 복귀한 사례가 많다. 1992년 대선 패배 후 2년여간 칩거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5년 지방선거 때부터 정치행보를 개시했다. 이후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해 1997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이회창 전 총재도 다음 대선에서 정치권으로 돌아왔다. 김한길 전 대표나 오세훈 전 시장도 ‘정치적 휴지기’를 가진 뒤 다시 정계에 복귀한 경우다. 이들에게 은퇴는 물론 복귀 명분도 유권자와 국민의 뜻이었다.

손 고문 역시 “시민으로 돌아가겠다”고 밝혔지만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야권의 부름이 있으면 결정을 번복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은 이런 사례들 탓이다.

검찰·법원 조사를 받다가 정치인생을 마감한 사례도 있다. 신한국당 강삼재 전 사무총장은 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예산을 선거자금으로 전용했다는 이른바 ‘안풍사건’으로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되자 의원직을 사퇴했다.

민주당 이광재 전 의원은 ‘박연차 사건’에 연루돼 불려간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서 “불구속 수사를 바라며 향후 재판에 성실히 임하겠다”면서 의원직 사퇴서를 들고 나왔다. 이명박 전 대통령 친형인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은 검찰 수사망이 서서히 좁혀오자 총선 불출마와 함께 은퇴를 선언했다.

외생변수 없이 정치인이 아닌 다른 삶을 선택하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퇴장’을 선택한 이들도 있다. 2006년 3선이 유력시됐던 이원종 전 충북지사는 “꿈꾸고 계획했던 일들을 거의 다 이뤘다”며 스스로 물러났다.

‘원조보수’로 불리는 김용갑 전 한나라당 의원 역시 “3선 의원이면 국회의원으로선 환갑”이란 말을 남기고 정계를 떠났다. 이들의 경우에는 정치권으로 다시 돌아올 확률이 ‘0’에 가까웠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