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선 이해찬 공천배제 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76)가 단행한 현역 물갈이의 마지막 한 점은 결국 ‘친노 계파’ 정리였다. 친노 핵심을 에두르는 듯하던 ‘김종인표 물갈이’는 친노 좌장인 6선 이해찬 의원(64)을 쳐내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앞서 더민주는 문희상·유인태·신계륜·김현 의원 등 범주류, 친노 성향이지만 ‘정세균계’로 분류되는 강기정·전병헌·오영식 의원 등을 솎아냈지만 칼날이 문재인 전 대표와 가까운 핵심 그룹으로 향하진 않았다. 친노 물갈이 폭을 최소화해 부족한 인력풀에 숨통을 트고 조직적 반발 여지를 차단하는 한편 구심점을 도려냄으로써 친노 패권 청산의 상징적·실질적 효과를 극대화하려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의원은 그간 더민주 ‘총선 물갈이’의 최대 화두였다. 김 대표는 당내 패권 청산을 물갈이 기준 중 하나로 제시했고, 이 의원은 노무현재단 이사장이자 참여정부 때 실세 국무총리를 지낸 당내 친노의 상징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1988년 13대 총선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끌던 평민당 소속으로 서울 관악을에 출마해 민정당 소속이던 김 대표를 꺾고 처음 배지를 단 악연도 있다.
당초 이 의원은 3선 이상 의원 중 성적 하위 50%에 속하지 않아 정밀심사 대상이 아니었다. 지역구인 세종시에서 본선 경쟁력도 상대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더민주는 이 의원 대신 참여정부 고위 공직자 출신 인사를 이 지역에 넣고 여론조사를 실시했으나 지지율이 매우 낮게 나타났다고 한다.
그런데도 비대위가 이 의원 공천배제를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가 처음부터 흘러나왔다. 더민주는 이 의원 지역구 공천 심사 결과 발표를 계속 연기하며 ‘자진사퇴’를 압박했지만, 이 의원이 지난 12일 선거사무소 개소식을 열며 ‘용퇴 불가’ 의사를 분명히 하자 전격적으로 공천배제를 발표했다.
이 의원 공천배제에는 김 대표의 뜻이 작용했다. 김 대표는 비대위 회의에서 “선거구도 전체를 위해 결단이 필요하다. 내가 악역을 맡겠다”고 했다. 특히 ‘반노 정서’가 강한 호남에서 국민의당과 겨루기 위해 친노의 상징적 인물을 쳐내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당내 비노 세력이 총선 후 권력 다툼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야권 통합 명분을 만들기 위해 이 의원을 찍어냈다는 시각도 있다. ‘킹메이커’를 자임하는 김 대표 역시 문재인 전 대표에게 힘이 집중되는 것보다 여러 대권 후보들이 세력을 형성하며 관리 가능한 범위 안에서 각축하는 구도를 선호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문 전 대표는 이날 한 언론과 만나 “(이 의원 공천배제에 대해) 할 말이 없다”며 복잡한 속내를 감추지 못했다. 문 전 대표는 전날 밤 김 대표로부터 이 의원 공천배제 방침을 전달받았다고 한다.
이 의원 측은 강력 반발했다. 이 의원은 세종시에서 측근들과 함께 대책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이 의원은 “김 대표가 정무적 판단을 명분으로 공당을 마음대로 운영하고 있다. 불의와 사감에 의한 정치를 하고 있다. 그런 정치를 내가 용납한 적이 없다”며 격앙된 감정을 쏟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은 15일 공식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이 의원이 김 대표를 강력하게 비판하며 탈당한 뒤 무소속 출마를 결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