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위안부 합의’ 후폭풍

깜깜이 협상 해놓고 “이해하시라”는 정부…앞뒤가 틀렸다

2015.12.29 22:52 입력 2015.12.30 10:07 수정

당사자 무시한 채 졸속 합의…대통령·총리는 여론전

뒤늦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찾아 설득나선 외교부

“두 번 죽이러 왔나…어느 나라 외교부냐” 호통 들어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에 대한 반발 여론이 커지자 뒤늦게 바빠졌다. 대통령과 총리가 잇달아 나서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외교부 당국자들은 위안부 피해자들을 만나 설득에 나섰다.

하지만 졸속합의인 데다, 이미 합의를 끝낸 후 당사자들을 찾아 일의 선후가 뒤바뀌었다는 비판까지 겹치면서 반발 여론이 확대되고 있다. 현재로선 역풍을 잠재우기에 힘이 부치는 모습이다.

청와대가 여론전에 앞장섰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8일 협상 타결 직후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이번 합의를 대승적 차원에서 이해해 달라고 호소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29일 기자들과 만나 졸속협상이란 비판에 대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방향으로 이 사안이 해결돼야 한다는 확고한 원칙에 따라 이뤄졌다”고 밝혔다.

<b>‘등 돌린’ 소녀상</b> 한·일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협상에 합의한 다음날인 29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에 시민들이 모자와 목도리 등을 씌워놓았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등 돌린’ 소녀상 한·일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협상에 합의한 다음날인 29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에 시민들이 모자와 목도리 등을 씌워놓았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국무총리도 나섰다. 황교안 총리는 이날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는 확고한 원칙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가 양국 간 합의문에서 표명한 조치를 착실히 이행해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상처가 조금이나마 치유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외교부 1·2차관은 이날 오후 각각 위안부 피해자들을 찾아갔다. 전날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성명을 통해 “피해자들과 국민의 바람을 철저히 배신한 외교적 담합”이라고 비판하는 등 반발이 커지자 진화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임성남 제1차관이 오후 2시쯤 서울 마포구 정대협 쉼터에 들어서자 이용수 할머니는 “왜 우리를 두 번 죽이러 왔느냐”며 “회담하기 전에 먼저 피해자를 만나고 (회담을) 한다고 얘기해줘야 할 것 아니냐. 도대체 어느 나라 외교부냐”며 언성을 높였다. 김복동 할머니는 “우리가 돈 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국가가 잘못한 것을 법적으로 사죄하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임 차관은 할머니들에게 “연휴 기간에 급하게 진전이 돼 미리 말씀을 못 드렸다. 송구스럽다”고 사과했다. 또 “(피해자들) 돌아가시기 전에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결말짓는 게 좋겠다는 대통령 지침에 따라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할머니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조태열 2차관이 찾은 경기 광주 나눔의 집 김군자 할머니는 “피해자는 우리인데 정부가 함부로 합의를 해놨다. 우리는 인정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옥선 할머니는 “할머니들 몰래 합의해놓고 할머니들을 어르고, 우리 정부에서 할머니들 팔아먹은 거나 한가지”라고 힐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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