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한 은” 옛말… 당당한 세리머니

2010.03.01 19:01

‘국위 선양’ 대신 ‘솔직·발랄’ 소감도 변해

세월은 강산뿐만 아니라 가치를 바꾼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의 가치도 세월에 따라 변했다. 유신독재 시절에는 그 어느 가치보다 ‘국가’가 앞섰고, 군사독재 시절에는 ‘국위 선양’을 위한 ‘세계 1등’에 대한 집착이 무엇보다 심했다. 그리고 30여년이 지난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은 자신의 행복과 기쁨을 솔직하게 먼저 털어놓았다.

“죄송한 은” 옛말… 당당한 세리머니

경향신문 1976년 8월4일자에 따르면 몬트리올 올림픽(1976년)에서 한국의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된 양정모(57·동아대 교수)는 “경기 도중 관중석에서 어른거리는 태극기의 물결을 보고 이겨야 한다는 사명감을 되씹었다. 금메달을 따 국민들에게 기쁨을 가져다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싸웠다”며 “부모님 얼굴이 머리에 떠오른 건 시상식이 끝나고 한참 후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유신 시절, 국가는 성역이었다. 부모보다 국가의 가치가 위에 있었다. 당시 유도 미들급에서 동메달을 딴 박영철도 “일본에서 나고 자란 나이기 때문에 조국에 사명을 다했다는 기쁨은 누구보다 컸을 것이다”라며 “태극기가 오르는 순간 내 조국이 있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 것인가 하는 생각에 흐뭇했다”고 말했다.

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을 보이콧한 뒤 8년 만에 다시 참가한 84년 LA 올림픽은 한국선수단에 ‘국위 선양’을 위한 전쟁과 같은 대회였다.

‘반공(反共)’도 올림픽의 화두였다. 은메달을 딴 여자농구 대표팀의 조승연 감독은 중국(당시 중공)과의 결승진출전을 앞두고 “은메달 아니면 노메달이라는 각오로 싸우겠다”고 비장한 심정을 밝혔다.

은·동메달은 죄책감을 낳았다. 유도에서 은메달을 딴 김재엽의 부모는 “금메달을 염원하던 국민에게 죄송할 따름이다”면서 섭섭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동메달을 딴 양궁의 김진호는 8월16일자에서 “초라한 동메달이다. 경기가 끝난 뒤 혼자 있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뒤 2010년 밴쿠버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은 자신의 메달에 즐거워했고,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쇼트트랙 남자 1500m 금메달리스트 이정수는 “오노한테 기분이 나빠서 시상식 때 표정을 제대로 유지할 수 없었다”고 했다.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금메달을 딴 모태범은 “사실 오늘이 내 생일”이라며 “언론에서 무관심했던 게 오히려 큰 도움이 됐다”며 웃었다. 1000m에서 은메달을 따고는 손가락으로 V를 그렸고 “너무 안 우는 것 아니냐”라는 말에는 “1500m에서 동메달 따 금·은·동메달을 모두 받으면 그땐 진짜 무릎 꿇고 펑펑 울겠다”고 했다. 여자 500m의 이상화는 “오늘은 기쁨의 눈물”이라며 “그동안 피겨스케이팅, 쇼트트랙에 비해 묻혀서 서러운 점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쇼트트랙 남자 계주에서 은메달을 딴 선수들도 과거 선배들처럼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이호석은 “모두 좋은 레이스를 펼쳐서 은메달을 딸 수 있었다”며 “서로 경쟁을 통해 한국 쇼트트랙이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막내 곽윤기는 시상대 위에서 춤을 췄다. 30년이 흐른 뒤에야 올림픽은 ‘전쟁’을 벗어나 진정한 축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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