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친박계 좌장 홍사덕 의원

2011.07.10 21:55 입력 2011.07.10 23:33 수정

홍사덕 “보수·진보가 목표는 공유하되 민주적 논쟁을”

이상돈·김호기 교수의 대화 후기는경향닷컴(www.khan.co.kr)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한나라당 7·4 전당대회로 친박계의 힘이 커졌다. 복지·민생 정책의 ‘좌 전향’ 선언으로 2위 돌풍을 일으킨 것도 친박계 유승민 의원이다. 보수의 아이콘이던 박근혜 전 대표와 친박이 당내 권력·정책 변화의 중심에 선 것이다.

보수 성향의 이상돈 중앙대 교수와 진보 성향의 김호기 연세대 교수의 ‘21번째 대화’는 친박계 좌장으로 꼽히는 홍사덕 의원을 만났다.

6선의 중진인 홍 의원은 “세금을 더 걷자는 이야기만 하면 보수 진영에서 바로 파문을 당하는 현실”이라며 “언젠가 무상급식 문제를 놓고 당의 주요 직위에 있는 분이 그 자체를 전면 부정하는 것을 보고 큰일났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보수와 진보가 목표는 공유하되 그 목표까지 걸리는 기간, 절차를 놓고 논쟁을 해야 한다”며 “국민이 원하는 전장이 있으면 그 필드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총선·대선을 앞둔 보수 진영도 복지 담론에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와 한나라당 홍사덕 의원, 김호기 연세대 교수(왼쪽부터)가 지난 7일 국회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란히 한 조형물을 가리키고 있다. | 박민규 기자 parkyu@kyunghyang.com

이상돈 중앙대 교수와 한나라당 홍사덕 의원, 김호기 연세대 교수(왼쪽부터)가 지난 7일 국회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란히 한 조형물을 가리키고 있다. | 박민규 기자 parkyu@kyunghyang.com

지난 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1시간30여분간 진행된 대화의 후반부는 박 전 대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이상돈 교수는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정권교체로 보는 여론조사가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고, 김호기 교수는 “보수의 위기 국면에서 박 전 대표가 좀 더 적극적 태도를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홍 의원은 “박 전 대표는 사(邪)된 부분이 없고, 이것이 국민이 요구하는 시대정신”이라고 말했다.

▲ “박근혜 당선되면 정권교체로 보는 여론조사가 있다” - 이상돈

▲ “보수 위기 국면에 박 전 대표의 태도 좀 더 적극적이어야” - 김호기
김호기 = 이번 한나라당 전당대회 결과를 어떻게 보나. ‘친이계’의 몰락과 ‘친박계’의 승리로 보는 시각이 우세한 것 같다.

홍사덕 = 그동안 한나라당 달력과 우리 경제·사회 발전 단계의 달력이 계절이 다를 정도로 맞지 않았다. 이번에 젊은 지도부가 들어서서 불일치를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상돈 = 기자 생활을 했고, 1981년에 국회의원에 당선돼 6선이다. 5공 초기에 제도권 정치에 들어서게 된 당시는 어떤 꿈을 갖고 있었는가.

홍사덕 = 니체가 말한 숙명의 길을 거의 몸에 익히고 있다. 적어도 회한 같은 것은 없다. 정치에 입문할 때나 지금이나 설정한 목표는 두 가지다. 하나는 통일을 준비하는 데 벽돌 몇 장이라도 더 나르자는 것과 또 하나는 재능이 있고, 열심히 하는데도 가난해서 교육 기회를 잃는 사람이 없어지는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상돈 = 이민우 신민당 총재 시절 대변인을 맡으면서 유명해졌다. “선 민주화면 내각제도 받을 수 있다”는 ‘이민우 구상’도 홍 의원의 발상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민우 구상’과 그로 인한 파동을 되돌아보면 무슨 생각이 드나.

홍사덕 = ‘이민우 파동’ 때 끝까지 이 총재를 지킨 데는 인간적 이유가 컸다. 파동이 가라앉고 나서 내린 결론은 ‘김대중 총재의 말이 참으로 옳구나’ 하는 것이었다. “사회운동을 할 때는 국민보다 일백보 앞을 가도 상관없지만 정치를 할 때는 국민보다 다섯 발자국만 앞서 가야 한다”는 충고였다. 당시 내 속마음은 야당의 역량으로 당장 집권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었다. 내각제를 한다면 연립정부 방식으로 국정 경험을 쌓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김호기 = 민주화 시대는 군부정치 종식과 정치적 민주화 달성 등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사회양극화 심화 등 부정적 측면도 적지 않다. 민주화 초창기에는 진보개혁 세력에 서 있다가 민주화 후반기에는 보수 쪽에서 정치활동을 하는데 민주화 시대의 명암을 어떻게 보나.

홍사덕 = 정치는 경제·사회의 발전 단계라는 토대 위에서 함께 진화해 간다. 민주화 과정도 그런 진화 과정이었다. 경제 발전과 그에 따른 중산층 형성이 없었으면 민주화는 좌절됐을 것이다. ‘역사에는 단축은 있을지 몰라도 생략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민주화는 정치 진화 차원에서 볼 때 필연적인 코스이고, 경제·사회 발전 동력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이상돈 = 여러 당과 무소속 후보로 복잡하게 당선됐다. 소회는.

홍사덕 = 81년 정치 입문 이래 거쳤던 당의 이름을 순서대로 대라고 하면 깊이 생각해야 되지만, 간단히 정리된다. 경상도와 전라도가 갈라져서 싸울 때는 반드시 무소속을 택했다. 그렇지 않을 때는 제1야당 깃발 아래 있었다. 여당은 18대 국회 들어와서 한나라당에 복당했을 때가 처음이다. 통일에 필요한 벽돌 몇 장이라도 옮기고자 하는 나로서는 남쪽에서 동서로 갈라져 싸우는 데 가담할 수는 없었다.

이상돈 = 박정희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나. 1960~70년대에 서울대 문리대를 다닌 학생치고 박 대통령에게 좋은 감정을 가진 경우는 드물었다.

홍사덕 = 박 대통령에 대한 생각은 당시 우리 세대의 일반적인 생각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달라진 계기는 ‘박 대통령은 성공했기 때문에 죽음을 맞았다’는 로버트 스칼라피노 교수의 말이었다. 거의 감전된 것 같은 느낌이 왔다. 박 대통령은 끼니를 거르던 나라를 산업화시켰다. 두꺼운 중산층이 생겼고, 그 중산층의 민주화 욕구가 부마사태 등을 불러온 것이다. 80년대 이후에는 일관되게 박 대통령을 높이 평가했다.

이상돈 =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하게 된 계기는.

홍사덕 = 박 전 대표는 사(邪)된 부분이 없다. 최근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한국에서만 밀리언셀러가 된 것도 사된 행동이 우리 사회에 가득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무엇이 달라지느냐는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한다.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된 후, (지금) 주변 사람들 중에 혹여 비리나 불법을 저질러도 박 전 대표가 한 번쯤은 자신을 용서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단언컨대 한 명도 없다. 이것이 국민이 요구하는 시대정신의 표현이다.

김호기 = 최근 정치 흐름은 ‘보수의 위기’로 특정지어진다.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한나라당에 우호적이었던 중산층이 이제는 완전히 등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

홍사덕 = 보수와 진보가 함께 위기를 맞고 있다. 소득 1만달러 시대와 2만달러 시대에 부딪히는 문제가 다른데 대응 수단에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민심이 떠나는 게 당연하다. 돌봐줄 사람을 2만달러 시대에 걸맞게 돌봐주기 위해서는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 그런데 세금을 더 걷자는 이야기만 하면 보수 진영에서 바로 파문을 당하고 만다. 정치의 본령을 잊어버린 태도다. 세율을 말할 때도 도시국가인 홍콩이나 싱가포르, 아니면 인구 1000만명도 안되는 유럽의 작은 나라를 들이대는데 이런 태도는 곤란하다. 새 지도부가 나이로나 정신적으로나 젊어서 다행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김호기 = 내년 대선의 주요 전장은 복지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일반적으로 경제 성장은 보수가 유리하다. 그러나 복지·사회 정책이 이슈가 되면 보수는 남의 싸움터에 가서 싸우니까 불리하지 않겠나.

홍사덕 = 지내놓고 보면 국민이 귀신이다. 속이려야 속일 수 없는 게 국민이다. 국민이 원하는 전장이 있으면 그 필드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 공정한 세제 개혁을 통해서 지속가능한 성장, 지속가능한 복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본다.

김호기 = 박근혜 전 대표는 국민과의 신뢰를 중시하고 전달할 것만 분명히 말하는 어법을 구사한다. 보수 위기 국면에서 박 전 대표가 좀 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

홍사덕 = 박 전 대표가 능동적으로 아젠다 세팅을 했던 게 세종시와 복지, 두 번뿐이다. 점차 능동적인 아젠다 세팅에 나서리라고 본다. 다만 대통령이 가늠해야 할 이슈의 경우엔 조심스러워하리라고 예상한다. 박 전 대표는 논어에 나오는 ‘부재기위 불모기정’(不在其位 不謨其政, 그 지위에 있지 않으면 그 지위의 정사를 논하지 마라)을 ‘거의’ 본능적으로 실천하는 분이다.

이상돈 =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정권교체로 보는 여론조사가 있다.

홍사덕 = 국민이 그렇게 본다면 그렇게 봐야 하지 않겠나.

김호기 = 향후 총선과 대선 국면에서 보수와 진보의 생산적인 경쟁을 위해 충고를 한다면.

홍사덕 = 한 가지만 반드시 시급히 고치고 싶다.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를 공유하는 습관이다. 무상급식이든, 남북 협력이든, 목표는 공유하되 그 목표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기간, 거쳐야 할 절차를 놓고 보수·진보가 논쟁을 해야 민주적 경쟁이 가능해진다. 민주당이 지금 즉각 실시하자고 하면 우리는 이러이러한 이유로 5년쯤 걸리지 않겠느냐, 또는 10년쯤 걸리지 않겠느냐고 해야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경쟁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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