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여성주의자가 반남성주의자다

2022.01.26 03:00 입력 2022.01.26 03:01 수정

이상한 일이었다. 민주화 시기를 겪은 세대의 사회의식 외엔 난 그다지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직장인으로서의 삶만으로 충분히 고달팠고, 친분 있는 이들 다수도 그러했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과 촛불 정국으로 사회가 분열될 때, 서로의 생각은 비슷했다. 함께 분노했고, 울었고,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소녀 시절 친구들도, 존경하고 친했던 직장 선배·동료들도 오랜만에 만나 같은 생각을 나눴다. 평생 서로의 정치관에 대해 물었던 적도, 알았던 적도 없는 이들이었다.

박선화 한신대 교수

박선화 한신대 교수

이상한 일은 SNS에서도 계속된다. 10년 가까이 온라인에서 교류하며 인간적 매력에 끌려 꾸준히 소통해 온 이들이 많다. 그들 대부분이 미투가 터졌을 때, 평소 지지정당을 떠나 분별력 있는 판단과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다소 보수적일 수 있는 나이, 아들 가진 엄마나 남성의 이기심을 보여줄 법한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또 무슨 일일까. 재기와 지성이 넘치거나 따스하고 지혜로운 모습에 반해 끌렸지, 정치의식으로 친해진 이들이 아니었다.

왜 오랜 시간 호감과 존경심을 유지하던 분들은 비슷한 사고와 행동을 할까. 이유는 어렵지 않은 것 같다. 자신의 삶에도 충실하지만 공동체에 대한 이해와 약자에 대한 배려를 알아서다. 무엇보다 인간과 권력 속성에 대한 통찰이 깊어, 자신을 무리의식에 가두지 않는 성숙함이 있어서다.

인간이 어떻게 이성을 잃고 짐승에 가까워지는가에 대한 유명한 심리학 실험은 많다. 아무런 연고 없이 모인 이들에게 두 가지 색의 셔츠를 무작위로 나누어 입히는 단순한 실험도 그중 하나다. 얼마 안 가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색 옷을 입은 이들에게서 좋은 점과 동질감을, 다른 색을 입은 이들에게서 단점과 다른 점을 찾기 시작한다. 작은 분열은 비방과 적대감을 낳고 점차 극단으로 나아간다. 같은 무리의 잔혹함과 비열한 행동을 옹호하는 내로남불도 습관이 된다. 의미 없는 상징과 연고의식만으로 수치도 염치도 모르는 존재가 되는 것이 인간이다.

몇 가지의 기준으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분하기는 힘들다. 모든 인간은 때로 어리석고 때로 훌륭하며, 살아온 환경과 경험, 현실에 따라 사회적 정의에 대한 이해와 해법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다양성이나 개인 취향과 상관없이 건강한 시민사회의 구성원이 갖는 공통된 특징은 있다. 약자에 대한 관심과 보호의 노력이다.

공존의 세계관을 가진 사람은 동물을 좋아하지 않아도 동물 보호에 찬성한다. 노인과 장애인, 소수자들을 다 좋아하진 않아도 함부로 대하지 않으며, 때로 주장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귀기울이고 소통한다. 동물·환경 보호가 반인간주의가 아니고, 노인공경이 안티 청년주의가 아니라서다.

페미니즘 역시 ‘반남성, 안티 이대남’이 아니다. 여전히 세상 곳곳에서 남성들의 폭력으로 죽거나 학대받는 무수한 여성들, 사회적·신체적 약자를 보호하고 상생하자는 당연한 요구일 뿐이다.

이 당연한 사람의 도리를 왜곡하는 이들이 정치권에 만연하다. 사회적 박탈감으로 분열된 청년들을 화합시키기는커녕 이간질로 표를 얻고, 미투의 피해자들을 돈에 좌우되는 천박한 영혼으로 비웃는 자들이 약속하는 새로운 사회는 거짓이다. 이런 행태를 규탄하기는커녕 별일 아니라 치부하거나 열광하고, 늘 힘없고 만만한 여성 단체들에 비난과 조롱의 화살을 돌리는 이들이 꿈꾸는 사회는 지옥이다.

톨스토이는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서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고 이야기한다. 민주사회의 건강한 시민정신도 비슷하다. 모든 페미니스트가 괜찮은 사람일 수는 없겠지만, 살아오며 만나본 괜찮은 사람은 대개 페미니스트였다. 어떻게 그렇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여성과 약자를 아끼지 않는 자들이 남성인들 어떻게 진실로 사랑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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