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혁명을 말하는 시대…‘혁명은 무엇인가’를 묻다

2018.01.22 21:31 입력 2018.01.22 23:28 수정

서울 아르코미술관 기획전

러시아혁명·한국 촛불…내면·침묵의 혁명까지 다뤄

하릴 알틴데르의 ‘원더랜드’는 도심 재개발 지역인 이스탄불 술루쿨레 주민들의 저항을 랩으로 풀어낸 영상 작품이다. 아르코 제공

하릴 알틴데르의 ‘원더랜드’는 도심 재개발 지역인 이스탄불 술루쿨레 주민들의 저항을 랩으로 풀어낸 영상 작품이다. 아르코 제공

‘(혁명의) 하이라이트는 11시 뉴스에 나오지 않지. 겨드랑이 털을 드러낸 여성 해방운동가의 사진도 나올 일이 없어…(혁명의 주제곡을) 글렌 캠벨, 톰 존스, 조니 캐시, 잉글버트 험퍼딩크, 레어 어스가 부를 일도 없지.’ ‘혁명은 TV에 방송되지 않는다’의 가사 일부다. 길 스콧-헤론이 1971년 발표한 노래다. 1960년대 이후 변혁 운동을 외면하고 은폐한 보수적 미국 주류 미디어와 문화예술계를 비판한다. 시인이자 운동가, 뮤지션인 스콧-헤론은 힙합에 큰 영향을 끼친 랩의 선구자 중 한 명이다. 이 노래에서 제목을 딴 동명의 전시가 서울 아르코미술관 제1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2017년은 러시아 혁명 100주년, 국제 사운드 아트 축제인 ‘사운드 이펙트 서울’ 10주년이었다. ‘혁명은 TV에 방송되지 않는다’전은 ‘혁명’을 소리·영상으로 재현한 작품을 여럿 내놓았다. 헤바 Y 아민의 ‘스피크투트윗(Speak2Tweet)’은 2011년 이집트 혁명 때 개발된 통신 서비스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이집트 당국이 인터넷을 폐쇄하자 여러 프로그래머들이 지정된 번호로 국제전화를 걸거나 음성메시지를 남겨 트윗을 올리고 나눌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했다. 아민의 ‘스피크투트윗’은 이집트인들이 남긴 음성 아카이브를 기록한 실험 영화다.

국지적으로 또 국제적으로 전개되는 개발에 대한 저항을 다룬 작품은 하릴 알틴데르의 ‘원더랜드’다. 이스탄불 술루쿨레는 도심 개발 프로젝트 대상 지역이었다. 주민들은 자신들을 내쫓고 기득권자와 개발권자에게만 이득을 안겨주는 ‘도시 개조’에 3년간 저항해 주거권을 지켜냈다. 많은 예술가들이 투쟁하거나 쫓겨나는 주민들을 기록했다. ‘원더랜드’는 지역 청년들이 랩으로 표출한 분노와 저항을 담는다.

이우성의 ‘내일이 아닌, 오늘을 위한 노래’는 2016년 가을부터 2017년 초까지 촛불광장으로 나온 시민들을 재현했다. 아르코 제공

이우성의 ‘내일이 아닌, 오늘을 위한 노래’는 2016년 가을부터 2017년 초까지 촛불광장으로 나온 시민들을 재현했다. 아르코 제공

‘혁명은 TV에 방송되지 않는다’전은 혁명과 저항의 메시지를 드러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전시가 다루는 혁명은 여러 층의 의미를 보여준다. 언뜻 시끌벅적한 혁명과는 거리를 둔 메시지도 담았다. 삐삐롱스타킹 출신인 권병준의 ‘오묘한 진리의 숲’은 ‘내 안의 혁명’ ‘침묵의 혁명’을 주제로 GPS를 활용해 만든 설치 작품이다. 헤드폰을 쓰고 전시장을 이동하면 위치에 따라 불경 외는 소리나 도시 또는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외부 소음과는 단절’하려는 이 작품은 1980~1990년대 ‘강압적 현실 참여’ 분위기의 대학가에서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뮤지션의 꿈을 키우던 작가의 꿈을 담았다. 1990년대 초반 대학을 다닌 권병준의 작품은 이른바 ‘86’이라 불리는 세대의 남성성을 두고 비판적 성찰을 시도한다.

전시는 ‘혁명이 남발하는’ 시대를 고민한다. 전시를 기획한 양지윤 대안공간 루프 디렉터는 취지를 두고 “기존 체제 안에서 단순히 ‘체제 지킴이’를 바꾸는 행위에 ‘혁명’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마케팅 차원이나 국가주의에서 대중을 현혹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혁명’이라는 말을 흔하게 쓴다. ‘혁명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필요한 시대”라고 말한다. 전시는 미학자 양효실, 칼럼니스트 김규항,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장석준이 참여한 세미나도 세 차례 진행했다.

제2전시실 ‘옥토버’전은 러시아 혁명이 성공한 1917년 10월을 가리키며 붙인 제목이다. 100년 전 혁명에서 한국 현대사의 투쟁 장면을 끌어낸다. 전시 주제를 직접 드러낸 작품은 동일방직 투쟁을 담은 양유연의 ‘얼룩’(2017)이다. 작가는 기록 사진을 재현한 회화에서 노동자들의 민주노조 사수 의지를 부각시킨다. 이우성의 ‘내일이 아닌, 오늘을 위한 노래’(2017)는 바람에 맞선 사람들이 서로 어깨동무를 한 채 함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그려냈다. 2016년 가을부터 2017년 초까지 광장으로 나온 여러 직업과 세대의 시민들을 한데 모아 재현했다.

이른바 ‘촛불혁명’의 의미는 다층적이다. 서평주의 비디오 작품 ‘연극이 끝나고 난 뒤’는 ‘혁명은 TV에 방송되지 않는다’의 문제의식과도 이어진다. 작가는 ‘촛불혁명’의 한계에 관해 말한다. 작가는 “(촛불광장에서) 체제를 넘어서고 싶은 여러 사회적 의제들이 현실 정치 장으로 흡수된 것에서 ‘모종의 실패감’을 느꼈다”고 한다. 탄핵정국을 맞아 광장에 불었던 바람이 투표라는 대의 민주주의의 실현으로 일단락된 현실을 비판한다.

‘옥토버’전은 러시아 혁명 이후 공산주의·사회주의 공과를 다루지 않는다. 현재의 계급 적대·투쟁 이유가 사라졌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두 전시는 혁명에 관한 해답을 내놓지 않았다. 더 나은 사회와 체제가 무엇인지, 예술운동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전시는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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