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자본’ 저자 피케티·이정우 교수 대담

“더 많은 세금·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야”

2014.09.21 21:52 입력 2014.09.21 22:09 수정

부와 소득의 불평등은 전 세계적 화두다. 국내에서도 지난 대선에서 경제민주화가 중요한 정치 이슈로 떠올랐으나 양극화는 오히려 심화하고 있다. 자본주의에 불평등을 강화하는 원리가 내장돼 있음을 3세기에 걸친 자료 분석을 통해 보여준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의 책 <21세기 자본>이 한국에서도 뜨거운 관심을 모으는 이유다. 방한한 피케티 교수와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국제통상학부 교수가 지난 20일 대담했다. 사회는 김홍중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맡았다.

20일 오후 서울의 한 호텔에서 김홍중 서울대 교수(왼쪽)의 사회로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가운데)와 이정우 경북대 교수가 대담을 나누고 있다. | 출판사 글항아리 제공

20일 오후 서울의 한 호텔에서 김홍중 서울대 교수(왼쪽)의 사회로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가운데)와 이정우 경북대 교수가 대담을 나누고 있다. | 출판사 글항아리 제공

▲ “경제 이슈들의 민주적 사유에 기여하려 쓴 책
경제학은 ‘나홀로 학문’ 아닌 사회·정치와 연관
자본주의 불평등 낳는 기본 구조는 변하지 않아
누진 소득세 ‘부자 버는 돈’ 보여줘 투명성 높여”
- 토마 피케티

김홍중(이하 ‘김’)=아주 절묘한 시기에 책이 나왔다. 모든 사람들이 사회정의와 삶의 질 차원에서 뭔가가 심각하게 잘못됐다고 느끼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지난 30년 동안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를 강타해 양극화의 악몽을 안겨주는 동안 아래로부터의 정치적 저항은 거의 없었다.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디서부터 누구를 상대로 싸워야 하는지 몰라 사람들이 당황하고 있을 때 구체적인 자료를 들이대는 <21세기 자본>이 출간된 것이다.

피케티=<21세기 자본>은 경제적 이슈들을 민주적으로 사유하는 데 기여하기 위해 쓴 책이다.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된 이후 우리는 자유시장의 무제한 질주를 목격했다. 자본주의의 최종 승리를 뜻하는 역사의 종언이라는 말까지도 나왔다. 경제학자들은 이 과정에서 기술적이고 운명론적인 사고를 보여줌으로써 아주 부정적인 역할을 했다. 내 책은 경제학을 역사와 사회과학의 영역으로 되돌려놓기 위한 것이다. 나는 스스로 경제학자라기보다 사회과학자라고 생각한다. 경제학은 그 자체로 완결된 학문이 아니다. 경제학은 사회적·정치적 프레임 없이는 제대로 연구할 수 없다.

이정우(이하 ‘이’)=한국의 경우에는 보수정권과 보수언론이 성장의 중요성만을 강조하고 분배나 불평등 문제는 무시해왔기 때문에 출간 시점이 더욱 적절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21세기 자본>은 한국에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먼저 묻고 싶은 게 있다. 책이 성공할 것이라고 예측했나.

피케티=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웃음) 사람들이 읽기 쉽게 쓰려고 했던 것은 사실이다. 책 도입부에 문학작품을 인용한 것도 그래서다. 문학작품은 돈이 우리 삶에 미치는 실질적인 영향력을 느낌의 차원에서 전달할 수 있는 최상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고 세계화가 급격한 변화를 만들어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항상 대안이 없다는 말만 들어왔다. 그래서 대안을 찾으려는 강한 수요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책이 성공하면서 이상한 논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특히 보수적인 학자들은 내 책을 펼쳐보지도 않고 비판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논쟁 자체는 환영한다.

이=정책 대안과 관련해 당신은 책에서 누진적 소득세와 글로벌 자본세에 집중하고 있다. 다른 정책 수단들에 더 많은 내용을 할애하는 대신 두 종류의 세금에 집중한 이유는 뭔가.

피케티=책에서 공평한 교육기회, 노동자들의 경영 참여, 최저임금 등에 대해 논의하긴 했지만 범위를 더 넓히지는 못했다. 내가 세금 문제에 집중한 건 세금은 단순히 세금을 올리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소득과 부에 대한 누진 과세는 경제성장을 통해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이익을 얻지 못하는지 보여줌으로써 사회의 작동 원리에 대한 민주적 투명성을 높여준다. 누진 과세는 납세자에 대한 법적·통계적 정보를 생산함으로써 합리적인 정책을 수립하는 데 필요한 민주적 토론의 자료를 제공한다. 100여년 전 유럽에서 보수파들이 누진세 도입에 반대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일단 과세 투명성이 확보되면 부자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는지 드러난다. 이는 자연스럽게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킬 것이고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김=당신의 관심사는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변혁하거나 대안적 삶을 상상하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를 규제하는 데 있는 것 같다.

피케티=혁명의 필요성도 믿지만 현존하는 자본주의를 규제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의 속성은 변하고 있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 극단적인 불평등을 낳는 기본적인 힘은 자유시장 옹호자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불평등은 앙시앵 레짐(프랑스 혁명 이전 구체제) 때만큼 커질 수도 있다. 20세기 초 프랑스가 실수한 것 중 하나는 이미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평등주의가 확립됐기 때문에 누진세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1900~1910년 사이 프랑스의 불평등 수준은 앙시앵 레짐 때 수준이었다.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속성, 즉 총자본이득률이 장기적으로 성장률보다 커질 수 있다는 점은 과거에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고 미래에도 그렇다. 누진과세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다. 아주 높은 세율은 재산권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예컨대 억만장자의 부에 해마다 10%의 세금을 매긴다고 할 경우 그것은 그 억만장자가 가진 부의 10%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고, 그만큼 그 억만장자는 엄청난 부를 지속하기 힘들다. 자본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 입장은 우리가 새로운 소유 구조에 대해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가 싫다고 말하는 걸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대안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해야 한다. 중요한 건 모든 문제를 한번에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21세기 자본’ 저자 피케티·이정우 교수 대담]“더 많은 세금·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야”

▲ “한국 보수 정권·언론 ‘분배보다 성장 중요’ 강조
부의 집중도 커지며 ‘21세기 자본’ 출간 큰 파장
부동산 투기로 토지가치 지나치게 높은 게 한국
글로벌 자본세 등 대안, 미래에 반드시 실현되길”
- 이정우 교수

이=책에서 누진적 소득세 이외에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또 하나의 방안으로 거론되는 것은 글로벌 자본세다. 자본세는 19세기 말 미국 사상가 헨리 조지의 토지가치세(토지 보유에 대한 과세)와 비슷해 보인다. 다만 헨리 조지라면 토지에 대한 세금과 자본재 또는 금융자산에 대한 세금을 구분해 토지에 대해 더 높은 세금을 매기고 자본재나 금융자산에 대해서는 그보다 낮은 세율을 매기는 방안을 제시했을 것 같다.

피케티=누적 자본과 비누적 자본(토지 또는 천연자원) 사이의 구분은 그다지 명확하지 않다. 토지 가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이 토지에 이루어진 투자와 개발 등 누적 자본이다. 토지 가치에서 토지 자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작다. 내 책의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는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조차 개발되기 전 순수토지의 가치는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았다는 점이다. 토지나 토지 보유에 대해 금융 자본보다 더 많은 과세를 해야 할 강력한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이=최근 한국 경제학자들이 한국의 국민소득 대비 자본총량을 계산해보니 7(한국의 자본 총량이 국민소득의 7배라는 뜻)이 넘는다. 책에서 당신이 언급하고 있는 이탈리아와 일본보다 높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의 오랜 부동산 투기 역사로 인해 한국의 토지 가치가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피케티=다시 한번 말하지만 순수한 토지 가치와 그 위의 건물이나 사회기반시설의 가치를 구분하는 건 힘들다고 본다. 토지 가치는 아주 추상적인 개념이다. 토지를 금융자산과 서로 구분해 과세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 한국은 아주 흥미로운 사례여서 좀 더 많은 자료를 보고 싶다. 높은 토지 가치에 대한 한국의 해법은 무엇이었나.

이=몇 년 전 일종의 토지 가치세에 해당하는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했다. 한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전국의 모든 토지와 건물에 대해 재산세와 별도로 과세하는 것이었는데 헌법재판소에서 일부 내용에 대해 위헌판결이 나왔다. 그런데 누진적 소득세율 인상과 글로벌 자본세 도입은 충분히 설득력 있는 생각이지만 지금으로서는 이상적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피케티=내 생각이 이상적이라고 보지 않는다. 누진적 소득세나 글로벌 자본세 도입과 관련해 큰 국가들 사이의 국제적 협조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런 믿음에는 내가 유럽 학자라는 점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나는 유럽연합(EU)이 공평한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 민주적인 유럽을 건설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저절로 되는 일은 아니다. 누진적 소득세나 글로벌 자본세를 실현하려면 아주 큰 싸움을 해야 한다.

이=토빈세(단기 외환거래에 대해 모든 국가가 0.1%에서 0.5% 정도의 거래세를 부과하는 제도로 198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토빈이 1972년에 주장했다)는 글로벌 자본세에 비해 훨씬 덜 급진적인 방안인데도 아직까지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당신이 책에서 주장한 대안들은 미래에 반드시 실현되기를 바란다.

김=책을 보면 역사와 문학에 대한 관심이 아주 높은 것 같다. 언제부터 관심이 있었나.

피케티=수학도 좋아하긴 했지만 10대 시절부터 문학과 역사에 더 관심이 많았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발자크 같은 소설가들을 너무 많이 인용한다고 비판하는데, 소설 속 인물들은 자본주의적 삶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예컨대 세자르 비로토(발자크 소설 <세자르 비로토>의 주인공으로 향수제조업자) 같은 인물은 프랑스 로레알 그룹의 상속녀인 릴리안 베탕쿠르와 흡사하다.

이 대담은 창간 20주년을 맞는 계간 ‘문학동네’ 겨울호에도 실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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