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프레이밍 브리트니’, 구체적인 가해자들을 말해야 하는 이유

2021.07.02 21:40 입력 2021.07.03 09:11 수정
위근우 칼럼니스트

대충 알고들 있다 해도, 명시해야만 세상이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다

최근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아버지 제이미 스피어스를 상대로 후견인 자격 박탈 소송을 제기하고 그의 독립을 응원하는 #FreeBritney 운동이 이어지며 다큐멘터리 <프레이밍 브리트니>가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 6월 왓챠를 통해 공개됐다. 왓챠 <프레이밍 브리트니> 화면 캡처

최근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아버지 제이미 스피어스를 상대로 후견인 자격 박탈 소송을 제기하고 그의 독립을 응원하는 #FreeBritney 운동이 이어지며 다큐멘터리 <프레이밍 브리트니>가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 6월 왓챠를 통해 공개됐다. 왓챠 <프레이밍 브리트니> 화면 캡처

너무 늦게, 하지만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도착한 미국 사회의 반성문. 지난 6월 왓챠를 통해 한국에 공개된 다큐멘터리 <프레이밍 브리트니>를 보며 든 생각이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소위 세기말과 뉴밀레니엄의 시기를 온전히 지배했던 팝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롤러코스터 같은 삶을 담아낸 이 다큐에서 브리트니는 미국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아메리칸 스윗 하트’였지만, 역시 팝스타인 저스틴 팀버레이크와의 결별 이후 양다리를 의심 받는 헤픈 여자로, 케빈 페더라인과의 결혼 및 출산 이후엔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연예계의 악동 취급을 받았다. 그가 정신이 불안정해지는 과정에, 그리고 그의 불안정함을 훨씬 과장해서 대중에게 퍼뜨리는 데 파파라치로 대표되는 미국 연예 매체 산업이 있다는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최근 브리트니가 벌인 아버지 제이미 스피어스의 후견인 자격 박탈 소송과 그의 독립을 응원하는 #FreeBritney 운동까지 담아냈다는 걸 제외하면 <프레이밍 브리트니>에서 고발하는 이야기 상당수는 크게 새롭진 않다.

<프레이밍 브리트니>의 가치는 새로운 정보나 관점을 제공하는 것에 있지 않다. 브리트니가 황색 저널리즘과 여성 연예인에게 훨씬 엄정한 잣대가 적용되는 여성혐오 문화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는 꽤 공공연한 진실을 뉴욕타임스라는 공신력 있는 언론이 다큐멘터리의 형태로 선포했다는 것에 있다. 누군가는 부러 외면하거나, 부정하거나, 적당한 가책 안에서 침묵하거나, 혹은 안됐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자조했던 그런 불의에 대해 그건 불의가 맞노라고 선언하는 것. 다들 대충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 해도 꼭 명시해야만 의미 있는 진실이 있다.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적어도 브리트니와의 결별 이후 그에게 한 행동에서만큼은 개자식이라는 건 부정하기 어렵다. <프레이밍 브리트니>에도 나오듯, 그는 바람을 피운 전 애인을 탓하고 그에 대한 복수심을 드러낸 곡 ‘Cry me a river’ 뮤직비디오에서 마치 브리트니를 연상시키는 복장의 금발 여성을 등장시켰다. 또한 라디오 쇼에서 브리트니와 섹스를 했느냐는 질문에 “그래요, 했어요”라고 답했다. 14살에 혼전 순결 서약을 했던 브리트니에게 이 폭로는 치명적이었다. 뉴욕타임스 자유 평론가 웨슬리 모리스의 다큐 속 코멘트를 인용하면 “그녀는 학교의 ‘걸레’, 저스틴은 마치 학교의 쿼터백 같은 존재”가 되어 브리트니만 오롯이 비난을 감내해야 했다. 누구도 둘 사이의 프라이버시를 공개하고, 전 여자친구에 대한 흔한 복수 판타지를 곡과 뮤직비디오에 담아 본인의 프로모션에 활용한 저스틴 팀버레이크에 대해, 그리고 브리트니가 뮤직비디오와 무대에서 충분히 섹슈얼한 욕망을 드러내길 바라면서 또한 그에게 순결을 강요하는 게 얼마나 모순적인 요구인지 지적하지 않았다. 팀버레이크는 이후에도 <Saturday Night Live>에서 또 브리트니와의 섹스에 대한 조롱 섞인 개그를 했다. 그랬던 그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본인이 여성혐오(misogyny)의 수혜자임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제스처를 취한 건 역시 <프레이밍 브리트니> 공개 이후다.

브리트니에 대한 비난 여론 거의 대부분이 조악한 논리와 대중의 주관적 기분에 근거한 마녀사냥인 만큼, <프레이밍 브리트니> 역시 특별히 이를 논파할 아주 세련된 논증을 구사하지 않는다. 대신 간단명료하지만 단단한 사실을 제시해 브리트니에 대한 통념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간단히 증명한다. 삭발한 브리트니가 우산으로 파파라치의 차량을 두들기며 분노하던 유명한 사진을 통해 사람들은 환호든 걱정이든 브리트니가 드디어 미쳤다고 생각했다. <프레이밍 브리트니>는 그 사진을 찍었던 파파라치와 인터뷰를 한다. 그는 “그녀도 우리가 필요했고 우리도 그녀가 필요했다”며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의심스럽지만, 그의 말대로 브리트니라는 스타의 화제성을 증폭하는 데 파파라치와 타블로이드의 가십난이 어느 정도의 순기능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본인이 원하지 않는다면? 브리트니가 우산을 들고 파파라치 차량에 다가가기 전 그와 동행한 사촌은 몇 번이고 “제발(please)”이라며 파파라치에게 그만해달라고 요청했다. 제작진은 ‘브리트니가 가만두라고 요청한 적이 있지 않으냐’고 질문한다. 파파라치는 그게 평생을 따라다니지 말라는 뜻은 아니지 않으냐 반문하지만 그의 공생 논리는 이미 궁색해진다. 공생은커녕 싫다는데 따라다니며 기생한 건 그들이니까. 다큐에서 인용된 과거 인터뷰에서 브리트니는 파파라치가 괴롭히지 못하게 하려면 어떡해야 하겠느냐는 질문에 눈물을 흘리며 “모르겠다”고 답한다. 당연하다. 그가 할 일은 없었다. 더는 타블로이드가 파파라치 사진을 구매하지 않거나, 파파라치가 개심하거나, 공권력이 그런 행위를 제재하지 않는 한 브리트니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아무리 세계 최고의 스타라 해도. 그 빤한 진실을 <프레이밍 브리트니>는 시청자의 눈앞에 들이민다. 자, 이래도 타블로이드나 남의 말을 근거로 그에 대한 부정적 통념을 유지할 거냐고.

앞서 이 다큐를 늦었지만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고 말한 건 단순하고도 끔찍한 이유 때문이다. 아직 브리트니가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 토크쇼 진행자이자 브리트니가 케빈 페더라인과 이혼했을 때 환호할 정도로 그를 아끼던 로지 오도널은 쇼에서 “브리트니가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처럼 죽을지 모른다”고 진심으로 우려하기도 했다. 그와는 전혀 다른 저열한 의도로 브리트니가 죽을 것 같은 날짜와 시간을 적으면 추첨으로 플레이스테이션3를 선물로 주는 사이트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브리트니의 삶은 계속해서 아슬아슬 이어졌고, 그 와중에 후견인이 된 아버지에게 독립적 삶이 제한되기도 했지만, 최근엔 팬들의 응원 속에 후견인 자격 박탈 소송을 진행했다. 그리고 <프레이밍 브리트니>가 그동안 국가가 허락한 유흥으로서의 브리트니 조롱에 경종을 울렸다. 그건 폭력이고, 헛소리라고. 지난 6월23일, 브리트니가 법원에 출석해 13년 동안 이어진 후견인 제도로 자신이 잃어야 했던 것들에 대해 용기 있게 진술하는 것을 보며 그토록 길고 긴 브리트니 스피어스 잔혹사가 끝날지 모른다는 작은 기대를 품어본 건 그의 팬들만은 아닐 것이다.

만약 한국에도 <프레이밍 브리트니>처럼 영향력 있는 다큐가 있다면 어떨까, 라는 당연한 질문을 하다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브리트니가 겪었던 일들을 보며, 인터넷 조회수만을 노린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와 추측, 여성에게 들이대는 엄혹한 잣대, 그에 호응하는 대중의 배려 없는 말들에 그토록 힘들어 했던 고(故) 설리(최진리), 고 구하라를 떠올리기란 어렵지 않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 - 누가 진리를 죽였나’와 MBC <다큐플렉스> ‘설리가 왜 불편하셨나요’는 고인이 세상을 떠난 이후 만들어졌다. 그나마도 <다큐플렉스>는 인터넷 언론의 문제를 제대로 짚기는커녕 오히려 그런 보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연예기자들을 인터뷰이로 쓰며 변죽만 울렸다. 다큐에 나온 연예기자는 설리와 최자의 공개 연애 이후 그에 대한 성적인 뉘앙스의 악플이 도를 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다큐는 바로 그 설리와 최자의 연애 현장을 몰래 찍어 단독으로 공개한 게 디스패치라는 것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는다. 과거 구하라와 용준형의 연애 현장을 단독 공개하며 프라이버시를 침해했던 것 역시 디스패치였다. 최자와의 연애 훨씬 이전인 2010년에도 설리가 속했던 f(x)의 광고 촬영 현장에서 설리의 태도가 불량했다고 본인 미니홈피에 올리고 비난한 일반인의 글이 기사화되며 비난 여론이 만들어졌고, 헤럴드경제는 여기에 설리가 초등학교 때 쓴 소위 ‘허세글’까지 엮어 “네티즌들은 (중략) ‘원래부터 버릇이 없다’는 등의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기사 따위를 게재했다. 연애 얘기는 빼달라는 구하라 본인의 요청에도 “구하라 연애 얘기 빼면 원고 이거 다 안 써도 되겠다”(윤종신), “내가 입 열면 구하라 끝납니다”(규현)라고 깐족대다가 구하라가 눈물을 흘리고 화를 냈던 건 MBC <라디오스타>에서였다. 이런 사례들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밤을 샐 수 있다. <프레이밍 브리트니>가 가르쳐준 건 이거다. 구체적인 불의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다는 것.

위근우 칼럼니스트

위근우 칼럼니스트

그러니 도착할 수 없는 <프레이밍 설리>를 상상하며 가슴이 아픈 것과 별개로, 현재 역시 부당한 관점으로 프레이밍되던 이들을 위한 단호하고 구체적인 선언은 여전히 필요하다. <다큐플렉스>에서 설리에 대해 추모하기도 했던 가수 티파니 영의 경우 소녀시대 시절 도쿄돔 공연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위치 기반 필터로 욱일기 무늬가 있는 스냅챗을 올렸다가 문제를 인식하고 2~3분 뒤 바로 지웠다. 하지만 누리꾼들의 비난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거나 누리꾼의 입을 빌려 그의 역사의식을 준엄하게 꾸짖는 연예기사들이 쏟아져 나왔고, 심지어 KBS는 시청자 요구에 따라 그를 <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 2>에서 하차시켰다. 최근 소위 ‘페미니즘 논란’ ‘남혐 논란’에 조금이라도 엮이면 악플 세례를 받는 걸그룹의 사례들까지 포함해, 이런 일들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역시 밤을 샐 수 있다. 그리고 또한 이것이 우리가 밤을 새면서라도 계속해서 말해야 하는 이유, 조금이라도 책임 있는 언론이 한 번이라도 더 공적 책임감으로 단호하게 발언해야 하는 이유다. <프레이밍 브리트니>도 그렇지만 모든 반성문은 사실, 언제나 한발 늦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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