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방송선 한국노래 나와도, 한국 방송선 일본 노래 못 듣는 까닭은?… ‘일본문화 개방 논의’ 미완으로 끝난 탓

2014.09.10 21:05 입력 2014.09.10 21:14 수정

2004년 세부사항 매듭 못 지어

법적 문제 없지만 국민 정서 고려

지상파 방송·라디오 ‘알아서 차단’

회사원 박상익씨(30)는 일본 록 음악과 재즈를 즐겨 듣는다. 평소 출근길 차 안에서 음악을 소개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던 그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라디오에서 미국이나 영국의 팝 음악은 자주 소개되지만 일본어 가사가 나오는 음악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텔레비전에서 배경음악으로 쓰이는 음악들도 마찬가지다. 간혹 케이블 채널에서 일본 가수의 뮤직비디오가 나오는 경우는 있으나 지상파에서는 그런 것을 본 적이 없다. 박씨처럼 일본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국내 지상파 방송과 라디오에서 일본 노래를 들을 수 없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일본어 가사가 나오는 일본 노래를 내보내지 않도록 내부 규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음에도 방송사들은 ‘정서상의 문제’라는 이유를 들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들의 이 같은 규정 때문에 일본 음악을 유통하는 업계는 애를 먹고 있다. 홍보수단이 일본 가수의 방한 콘서트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용 등으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소니뮤직코리아의 이세환 차장은 “일본 가수가 방한하면 표가 매진될 정도이고, 일본 내에서도 2004년 일본문화개방 이후 한국 시장을 관심 있게 보고 있지만 일본 음원을 알릴 방법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을 배경으로 뮤직비디오를 찍는 등 한국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일본 뮤지션들도 많고 양국 간 문화적·정서적 교류에 대한 욕구가 높은데 사실상 채널이 가로막혀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방송사는 왜 일본 음악 사용에 제약을 두고 있는 것일까. 이는 2004년 마무리 지어지지 않은 상태로 끝난 일본문화개방 논의가 재개되지 않은 탓이 크다. 정부는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대해 4차에 걸친 논의를 진행했다.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후에 일본 대중문화 수입과 유통에 대한 법적 금지조항이 없어졌음에도 한국에서는 정치적·정책적 차원에서 일본 대중문화 수입을 기피하고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일본 대중문화 수입과 유통을 기피하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두려움 없이 임하되 단계적”으로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하자고 제안했다. 2004년 4차 논의 당시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영화, 음반, 게임 등 6개 분야의 유통과 수입을 대부분 개방하자고 기준을 정했다. 하지만 일본 드라마의 지상파 방영과 극장 애니메이션 상영에 대해서는 세부적인 논의를 하지 않은 상태로 마무리됐다. 당시 정부와 학계에서는 사회적 분위기를 봐가면서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세부적인 개방 범위를 정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후 10년간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관계자는 “정부 차원의 구체적 가이드라인이 없기 때문에 방송사에서는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보수적인 기준을 두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상파 방송사들은 가사가 없는 뉴에이지 연주음악은 허용하되 일본어 가사가 나오는 노래는 금지한다는 암묵적 규정을 따르고 있다. 그렇지만 일본 가수의 라이브 공연 중계는 방송하고 있기 때문에 이마저도 일관성은 없다.

MBC, SBS, KBS 등 지상파 방송사 심의팀 관계자들은 최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2004년 일본문화 개방 이후로 방송에서 일본 노래를 트는 것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국민 정서상 내보내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KBS 심의팀 관계자는 “일본문화가 무분별하게 유입돼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틀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중문화평론가 임진모씨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은 반일 정서나 한·일 간 외교적 문제가 얽혀 있어서 쉽지만은 않은 문제지만 점진적으로 논의를 계속해야 하는 사항”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과 깊은 문화적 관계를 맺고 있는 데다 한류 성장에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나라가 일본인데, 양국 간 문화적 형평성은 어느 정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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