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보도 ‘세상 속으로’

접대비 8조원 시대, 룸살롱 가보니…

2013.02.01 21:04 입력 2013.02.02 11:23 수정

“술값 75%는 회사 동료들끼리 먹은 것”… 룸살롱 업주의 고백

접대에는 식사와 골프 등 다양한 형태가 있지만 접대가 이뤄지는 가장 대표적인 장소는 룸살롱이다. 지난달 10일 서울 서초동의 한 카페에서 강주원씨(가명)를 만났다. 강씨는 10여년 전 룸살롱 웨이터로 시작해 지금은 룸살롱을 운영하고 있다. 약간 쉰 듯한 강씨의 목소리에는 그의 오랜 경력이 묻어 있었다. 그의 휴대전화는 인터뷰 중에도 여러 단골 손님으로부터 걸려오는 예약 문의로 바쁘게 울려댔다. 강씨는 “원래 이런 얘기 잘 안 하는데…”라며 접대비 8조원의 ‘불편한 진실’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 200만원 써 수천만원 벌 수 있는 세무·시설공무원 등에 ‘진짜 접대’

▲ 변호사·의사가 가장 많이 찾고 금융업계 사람들은 대부분 짠돌이

■ 접대비 8조원 시대의 불편한 진실

8조원의 불편한 진실은 접대비 대부분이 실제 접대에 쓰인 돈이 아니라는 점이다. 강씨는 “8조원 중에서 6조원 이상은 접대가 아니라 회사 동료끼리 먹은 것이다. 하루 열 팀이 온다고 하면 일곱 팀은 회사 동료끼리 온다. 진짜 접대는 많이 없다. 접대용 법인카드 가져와서 자기들끼리 먹는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업소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기업 접대비가 2011년 기준 사상 처음 8조원을 넘어섰지만 실제 접대보다는 회식비로 쓰이는 비중이 훨씬 높다. 늦은 밤 유흥업소가 밀집해 있는 서울 중구 북창동 거리를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기업 접대비가 2011년 기준 사상 처음 8조원을 넘어섰지만 실제 접대보다는 회식비로 쓰이는 비중이 훨씬 높다. 늦은 밤 유흥업소가 밀집해 있는 서울 중구 북창동 거리를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강씨는 전날 온 손님을 떠올렸다. 그는 “어제도 회사 직원 6명이 왔다. 같은 회사 상무, 부장, 차장, 과장이었는데 술을 많이 먹어서 술값만 150만원 정도 나왔다. 계산은 두 명이 카드로 각각 90만원, 60만원씩 나눠서 했다”고 말했다. 접대비 1회 사용금액 한도와 관련된 별도의 규정은 없다. 다만 각 회사마다 자율로 내부규정을 두고 있기는 하다. 2009년 세법 개정으로 50만원 이상을 접대비로 지출하는 법인에 대해 업무 관련성을 입증하는 지출 증빙을 기록·보관할 의무도 폐지됐다. 강씨는 “룸살롱에 와서 자기 돈으로 먹는 이들이 가장 멍청이 같다”고 말했다.

룸살롱을 찾는 이들 대부분은 회사원이다. 강씨는 “부장, 차장, 과장 3명이 오는 경우가 가장 많고 거기에 과장, 대리 포함해서 5명씩 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주말에는 손님이 거의 없다. 강씨는 “회사원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회사가 쉬면 우리도 장사가 안된다. 주말에는 논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 불황에 해외로 룸살롱 접대 수출

[탐사보도 ‘세상 속으로’]접대비 8조원 시대, 룸살롱 가보니…

다른 장사도 마찬가지겠지만 유흥업은 특히 경기에 민감하다. 강씨는 “10여년 동안 장사하면서 느낀 건 술집도 결국 경기를 탄다는 것이다. 요즘은 경기가 안 좋다보니 회사들도 많이 짜졌다. 하루에 카드로 결제할 수 있는 제한이 있으면 ‘오늘 반 결제하고 내일 나머지 결제하면 안되느냐’고 묻기도 한다. 주식이 오르면 손님이 많아질 것이다. 주식(코스피)이 3000 찍으면 여의도 룸살롱에 사람이 바글바글할 것”이라고 말했다.

룸살롱을 자주 찾는 업계는 이른바 ‘요즘 잘나가는 업종’이다. 강씨는 “최근에 정보기술(IT) 업계 쪽 회사원들이 많이 온다. 접대받는 경우도 있고 자기들끼리 와서 먹는 경우도 있다. 건설 쪽 사람들도 여전히 많이 온다. 요즘 건설경기가 죽어 어렵다고 하는데 호황이 아니라도 건설은 뒷돈 받는 게 많은 것 같다. 본사에 있는 직원들보다 현장에 있는 직원들이 많이 먹는다”고 말했다.

강씨는 여성 접대부가 해외로 가는 경우가 있는데 최근에는 아랍에미리트연합 두바이로 가는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건설 등 한국의 여러 기업이 두바이로 진출하면서 룸살롱에 대한 수요도 늘어났다. 한국의 룸살롱 접대문화를 해외로 수출한 셈이다. 강씨는 “두바이는 원래 유흥업소를 차리기가 까다로운데 그쪽으로 간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업소 허가해주는 사람에게 돈을 주고 섭외하면 된다고 하더라. 두바이에서 한국 술값의 두 배를 받아도 손님들이 찾는다. 여성 접대부들도 두바이 가서 6개월만 고생하면 5000만~6000만원 벌 수 있으니까 많이 나간다”고 말했다.

■ 성형외과 의사들 접대부 고르는 데 까다로워

룸살롱을 찾는 이들 가운데는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도 많다. 강씨는 “변호사들이 가장 많이 먹는다. 변호사들은 주로 법조타운이 있는 서초동에서 먹는데 잘나가는 변호사들은 역삼동, 청담동에서도 먹는다. 개인적으로 먹기도 하지만 검사나 판사 접대하려고 먹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의사 가운데는 성형외과의가 많다. 강씨는 “특히 성형외과 의사가 돈을 잘 벌어서인지 몰라도 많이 온다”며 “성형외과 의사들은 예쁜 여자들을 많이 보다 보니까 그런지 ‘뺀찌(여성 종업원에게 퇴짜를 놔 까다롭게 고른다는 뜻)’가 심하다. 또 뺀찌가 심하기로 유명한 이들이 방송국 PD(프로듀서)다. 방송국에 예쁜 애들이 많아서 그런지 PD들도 까다롭다”고 말했다.

은행, 증권 등 금융업계는 짠돌이들이 많다. 강씨는 “셈이 빨라서 그런지 자기들끼리 와서 먹는 게 대부분이다. 주로 지점장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온다. 접대는 잘 안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교수들은 주로 현금으로 거래한다. 강씨는 “교수들은 카드를 안 쓴다. 내가 아는 한 대학 교수는 많으면 일주일에 3번, 한 달에 8번 정도 온다. 그렇게 오면 한 달에 1000만원은 쓸 텐데 한 번도 카드를 쓴 적이 없다”고 전했다.

■ 룸살롱 업주도 접대해야 하는 세무공무원

그렇다고 접대비의 ‘앙꼬’ 격인 ‘진짜 접대’를 무시할 수는 없다. 접대의 효과가 크기 때문에 룸살롱을 이용하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고 강씨는 설명했다. 강씨는 “어제 접대로 온 손님은 두세 팀이었다. 접대하는 쪽이 회계사 사무실 대표였다. 접대비 200만원을 써서 수천만원을 벌 수 있으니 접대를 안 할 수가 없다. 일이 잘만 되면 접대비의 10배 이상 벌 수 있는데 누가 접대를 안 하겠느냐”고 말했다.

외국인 손님으로는 최근 한국계 중국인(조선족)이 늘었다. 강씨는 “접대를 해야 오더(발주)를 따는 회사라면 술집에 안 올 수 없다. 요즘 중국하고 무역하는 곳이 굉장히 많다. 특히 중국 조선족이 많이 온다. 조선족이라고 다 못 사는 것이 아니고 잘사는 이들도 있으니까 잘나가는 사람들이 많이 온다. 중국 공장장이 오면 한국에서 접대하고 자기(한국 업체)도 중국 가면 거기서 접대받는다. 주로 한국인 2명, 중국인 2명식으로 3~4명이 온다”고 설명했다.

불황이 깊어지면서 주요 접대 장소인 유흥업소도 수요층에 맞춰 변화하고 있다. 양주 한 병에 수백만원을 받는 고급 룸살롱이 성업 중인가 하면, 소주를 팔면서 불법으로 접대부를 고용해 룸살롱식 영업을 하는 노래방도 생겨났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불황이 깊어지면서 주요 접대 장소인 유흥업소도 수요층에 맞춰 변화하고 있다. 양주 한 병에 수백만원을 받는 고급 룸살롱이 성업 중인가 하면, 소주를 팔면서 불법으로 접대부를 고용해 룸살롱식 영업을 하는 노래방도 생겨났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공무원 가운데는 세무, 경찰, 구청 공무원이 많이 오는 편이다. 강씨는 “접대하면 공무원이다. 세무서 공무원은 접대를 엄청 받는다. 세무서 직원이 ‘친다(세무조사하러 간다는 뜻)’고 전화하면 상대방은 인사하기 위해 접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친한 업소만 간다고 했다. 강씨는 “아직 경찰도 접대를 은근히 많이 받는 것 같다. 경찰은 갔다가 탈이 날 수 있으니까 믿고 갈 수 있는 곳만 간다”고 말했다. 그는 “구청 공무원은 계장급 이상이 접대를 받는다. 특히 시설과가 많이 받는다”고 전했다.

룸살롱을 운영하는 강씨도 접대를 해야 영업을 할 수 있다. 그가 접대하는 이들은 대부분 세무서 공무원이다. 강씨는 “우리도 ‘관 작업’이 안되면 안된다. 무너지긴 했지만 전국에서 가장 컸던 YTT(어제오늘내일)를 봐라. YTT는 방이 250~300개 정도 됐는데 세무서에서 터지지 않았느냐. 나도 다른 업소 사장에게 ‘세무서 형님 모시고 갈게’라고 전화해서 접대한다. 세무조사 받으면 (여파가) 엄청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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