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취록’ 법률 전문가들 판단 “폭동 일으키겠다는 목적·실행계획 등 음모 구체성 떨어져”

2013.08.30 22:31 입력 2013.08.31 00:48 수정

내란음모 혐의로 국가정보원의 수사를 받고 있는 이석기 의원(51) 등 통합진보당 관계자들의 발언이 담긴 것으로 추정되는 녹취록이 공개됐다.

법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녹취록 내용만으로는 내란 실행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견해가 많다. 반면 녹취록 내용만으로 실질적인 위험성이 존재하고, 역할을 나눈 정황이 발견되는 등 내란음모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다. 법원이 30일 진보당 홍순석 경기도당 부위원장, 이상호 경기진보연대 고문, 한동근 전 수원시 위원장 등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점도 녹취록 등이 내란음모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될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통합진보당 김홍열 경기도당 위원장(왼쪽)과 김근래 경기도당 부위원장이 30일 국회 정론관에서 국가정보원이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 녹취록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통합진보당 김홍열 경기도당 위원장(왼쪽)과 김근래 경기도당 부위원장이 30일 국회 정론관에서 국가정보원이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 녹취록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 실질 위험성 입증돼야 하지만 녹취록만으로는 판단 어려워
‘수차례 모여 논의·역할 분담’ ‘내란음모 적용 가능’ 의견도

다만 구속영장 발부는 범죄 정황 등이 어느 정도 소명돼 구속수사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이고, 혐의가 최종적으로 인정될지 여부는 향후 재판에서 결정된다. 이에 따라 내란음모 혐의에 대한 법률적 공방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석기 의원 등은 지난 5월 서울 합정동의 한 종교시설에서 조직원 1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고, 남북 간 전쟁이 일어나면 총기 등 무장을 통해 국가기간시설을 습격하자는 논의를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번에 공개된 녹취록에는 “전쟁을 준비하자. 정치·군사적 준비를 해야 한다” “비비탄총을 개조해 일반 총을 만들자” “평택에 있는 유조창, 혜화동과 분당의 전화국, 철도 통제소 등 통신과 철도, 가스, 유류 시설을 파괴해야 한다” “연락체계, 후방교란, 무장과 파괴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팀을 구성하고 대응책을 준비해 가야 한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녹취록에 담긴 발언이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는 상세하지만 이를 ‘내란음모’로 보기에는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내란음모 혐의를 적용하기 위해선 폭동을 일으키겠다는 목적과 구체적인 실행 계획, 실행 능력(가능성), 이에 따른 실질적인 위험성이 입증돼야 하지만 녹취록만으론 판단이 어렵다는 것이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녹취록 내용으로는 범죄 실행을 위한 합의가 이뤄졌거나 계획이 수립됐는지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녹취록에 담겨 있는 발언에 대해 조직원들이 동의하고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없다”면서 “회의에서 개별 사람들이 문제의 발언을 했다고 해서 조직원들 사이에 합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시설을 파괴해야 한다는 발언 외에 누가, 어떤 역할을 할지 등에 대한 발언이 담겨 있지 않아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웠는지 알 수 없고 총기를 준비한다는 발언도 누가, 언제, 어느 정도 수량을 준비하자는 내용이 없다”며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녹취록만으로는 내란의 음모가 있다고 보기 힘들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범죄 실행의) 합의가 이뤄졌다 해도 조직원들에게 행동을 강제할 만한 조직인지 여부도 확인되지 않는다”며 “녹취록의 공개되지 않은 부분이나 다른 증거들을 확인해봐야 조직의 실체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김도형 변호사는 “녹취록 내용만 가지고는 실질적 위험성이 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시설을 파괴하기 위한 준비작업을 했다는 ‘말’이 아니라 ‘행위’로 드러나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면서 “말에 따르는 구체적인 ‘액션’이 나오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조직 전체가 해당 발언에 동의해 결의를 한 것인지, 아니면 몇 명이 흥분해서 한 말인지, 어떤 경위에서 해당 발언이 나왔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도 “조직의 강령이 있는지 여부나 전쟁이 일어나면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지 않다”면서 “내란음모로 보기에는 섣부르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국정원은 이 의원이 직접 국가시설 습격과 관련된 발언은 하지 않았지만 그를 수장으로 보고 내란음모 혐의를 적용한 것 같다”며 “이 의원이 이 조직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도 혐의 적용에 관건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해당 조직은 예전부터 ‘비상 상황’ ‘혁명적 상황’ 등의 용어를 써가며 내부를 단속하고 긴장 상태를 유지하려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번 발언도 조직의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한 발언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녹취록만으로 상당 부분 위험성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헌 변호사는 “녹취록에 권역별 토론이 등장하는 등 어느 정도 구체성은 있다고 본다”면서 “실없이 하는 농담이나 지나가는 말이 아닌 것 같아 위험성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어떤 경위로 회합이 이뤄졌고, 어떤 분위기로 진행됐는지 등을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녹취록을 통해 수차례 모여 논의를 하고 역할을 나누는 등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것을 알 수 있어 내란음모 적용이 가능하다는 시각이 있다. 국정원이 이 의원 등에 대한 감청영장을 발부받아 3년간 내사해온 만큼 다른 녹취록이나 문건 등 내란음모를 입증할 만한 추가 증거를 확보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있다.

또 이 의원 등이 민혁당을 창당한 혐의 등으로 처벌받은 경험이 있고, 오랫동안 조직이 비밀리에 운영돼왔다는 점도 조직적 음모 혐의를 적용할 가능성을 높인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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