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노동절

7명 중 1명 최저임금 미만…소처럼 일해도 ‘마이너스 늪’

2017.04.30 21:32 입력 2017.04.30 23:42 수정

최저임금 도입 30년째…혼자 살기도 벅찬 20대 ‘슬픈 노동절’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전수찬 이마트노조 위원장이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노동조합준비위원회는 127돌 노동절을 앞두고 지난 25일부터 점심 한 끼 단식을 하며 최저임금 인상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전수찬 이마트노조 위원장이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노동조합준비위원회는 127돌 노동절을 앞두고 지난 25일부터 점심 한 끼 단식을 하며 최저임금 인상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서울 마포구에 사는 김영재씨(21·가명)가 고교 졸업 후 일자리를 찾기 위해 서울에 온 것은 2년4개월 전이다. 그에게 자신의 자취방 한구석을 내준 친구는 처음부터 이렇게 말했다. “나는 혼자 쉴 공간이 있어야 살아갈 힘이 생겨.” 빨리 독립해주기를 바란다는 얘기였다. 김씨는 장애인 활동보조인으로 하루 11시간씩 일하기 시작했다. 시급은 6800원. 하지만 주휴수당은 생략된 금액으로 사실상 ‘최저임금 미달’이었다.

127돌 노동절을 맞는 올해는 노동의 대가로 최소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최저임금’이 도입된 지 30년째 되는 해다. 경향신문은 최저임금 결정기준 중 하나인 ‘생계비’를 20·30·60대 ‘최저임금 노동자’들이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지 살폈다. 결과는 참담했다. 특히 생계비 충족률(최저임금으로 생계비를 얼마나 충당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비율)이 가장 높은 ‘1인 미혼 노동자’의 삶조차 피폐했다.

김영재씨는 소처럼 일했다고 했다. 장애인 활동보조를 하며 음식을 만들다 화상을 입은 다음날, 신발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발이 부어올랐다. 고통이 심했지만 병원에 갈 시간이 없었다. 가을에 슬리퍼를 신고 출근했다. 그렇게 월 150만원을 벌었다. 그러나 친구의 자취방 월세를 보태고, 통신비·교통비를 내고, 밥을 사먹으면 저축할 여유는 없었다. 때로는 스트레스 때문에 쓰는 비용인 “시발비용”으로도 돈을 썼다. “머리로는 이래선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너무 지쳐서 택시를 탈 때가 있어요. 가끔 술도 마시고….”

일감이 줄어 120여만원씩 벌게 된 때엔 어떻게든 돈을 아끼려 “500원이라도 더 싼” 편의점 도시락을 골라 먹었다.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했던 그는 미래 계획도 세우지 못하고 있다. “곧 군대를 가야 하고…. 글쎄요.” 올 2월 또 다른 지인과 함께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50만원의 방 2개짜리 월셋집을 마련한 지금은 그저 ‘내 방’이 생긴 점에 안도하고 있다.

만약 김씨가 하루 8시간씩 일하며 의식주 비용, 즉 생계비에 걸맞은 임금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김씨는 주저없이 답했다. “제가 그토록 서럽지는 않았겠죠.”

최저임금 도입 첫해인 1988년 최저임금의 생계비 충족률은 79.8%였다. 그러나 2015년의 충족률은 69.6%가 됐다. 부양가족이 있는 최저임금 노동자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2인 가구와 3인 가구의 최저임금 생계비 충족률(2015년)은 각각 43%, 33.9%다.

한국의 경제 규모는 세계 11위다. 최저임금으로 생계를 잇는 이들은 묻는다. 국가는 풍족해졌는데 왜 난 열심히 일해도 의식주마저 해결하지 못하는가. “사회가 나의 가치를 부정하는 듯한 비참함”(김씨)을 언제까지 견뎌야 하는가.

[1일 노동절]7명 중 1명 최저임금 미만…소처럼 일해도 ‘마이너스 늪’

한국 사회는 30년 전 민주화를 이뤘고 눈부신 성장으로 국민소득은 10년 전 2만달러를 넘겼다. 하지만 열심히 일해도 ‘마이너스 인생’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의 숫자는 점차 늘고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따르면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2년 이후 ‘최저임금의 90% 이상~110% 미만을 받는 노동자’ 규모는 57만7000명에서 지난해 184만3000명으로 늘었다. 국제노동기구는 최저임금의 90~110%를 수령하는 노동자를 ‘최저임금 수혜자’로 정의한다.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 규모 역시 같은 기간 70만2000명에서 266만3000명으로 늘었다. 이들은 임금 노동자의 13.6%에 이른다. 7명 중 1명 꼴이다.

통계를 종합하면 최저임금 110% 미만을 받는 노동자는 348만3000명이다. 이들은 주로 청년·노년층(69.8%)과 비정규직(71.7%)에 분포돼 있다.

“한국은 마이너스 인생을 권하는 사회예요. 그리고 일하는 노동자를 개같이 다루는 사회.”

이희근씨(32·가명)는 최저임금으로 버텨온 지난 10여년의 세월을 이렇게 압축해 표현했다. 이씨는 대학 시절인 21세 때부터 통운회사에서 비정규직으로 ‘까대기’(가대기·창고 등에서 짐을 어깨에 메고 나르는 일)를 했다. 그 후로도 택배물 상·하차, 동대문 의류시장에서의 화물 상·하차, 음료박스 배송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인력파견업체가 연결해주는 업체에선 ‘최저임금’이 ‘기준임금’이었다.

2013년 군대에 가기 직전, 7년간 몸을 험하게 다루며 번 돈을 계산해봤다. 9700만원이었다. 그러나 수중에 남은 돈은 없었다. 혼자 주절거렸다. “희근아, 되게 고생했네. 근데 다 어디 갔지?”

이씨는 “먹고살며 숨 쉬는 것만 해도 100만원은 든다”고 했다. 월세·교통비·통신비로 50만원, 식료품과 생필품에 가끔 사는 옷·신발 비용, 가끔 친구를 만나 쓰는 돈까지 합하면 140만원이다. 지금도 백화점에서 화물 나르는 일과 방과후 교사로 ‘투잡’을 하고 있다. 두 곳의 월급 모두 최저임금 수준이다. 지난 10여년간 그토록 일했어도 겨우 400만원을 모았고 학자금 빚이 1000만원 남아 있다.

[1일 노동절]7명 중 1명 최저임금 미만…소처럼 일해도 ‘마이너스 늪’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부양가족이 있는 ‘외벌이’일 때는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하다.

용인의 한 대학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하는 박재순씨(63·가명)는 아픈 남편 대신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하루 7시간 일하고 받는 월급은 110만원 정도다. 최저임금 수준이다. 젊은 시절 병을 얻은 남편의 약값·병원비, 가스료·전기료·통신비와 식비를 지출하고 나면 남는 돈이 없다. 박씨는 30년 넘는 세월 동안 건설사무소 업무보조, 식당 설거지, 놀이공원 도우미 등 ‘저임금 노동’으로 생계를 책임졌다. 박씨는 “외아들에게 용돈 한번 제대로 못 준 것이 한이 된다”며 가슴을 쳤다.

또 다른 대학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하는 노희선씨(66·가명) 역시 아픈 남편을 부양하는 노동자다. 8시간 일하며 최저임금이 조금 넘는 155만원을 받고 있다. 남편의 병원비가 100만원에 이르는 노씨는 식비를 아끼고 아낀다. 20㎏에 4만~5만원 하는 쌀과 두부, 된장찌개, 김치 정도로 상을 차린다. 때로는 이웃에게 얻어오기도 한다.

[1일 노동절]7명 중 1명 최저임금 미만…소처럼 일해도 ‘마이너스 늪’

현재 최저임금의 2인 가구 생계비 충족률은 43%(2015년 기준)다. 애초 최저임금 결정 기준을 ‘1인 미혼 노동자’ 생계비로 삼기 때문이다. 이희근씨 같은 1인 가구 노동자가 ‘숨만 쉬어도’ 적자를 보는 형편에, 이 돈으로 부양가족들의 ‘인간다운 삶’까지 보장하기란 언감생심이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최저임금 이하 또는 최저임금 110% 미만을 받는 가구주의 60% 이상이 외벌이로 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의 평균 가구원 수는 2.5명이다.

노동계가 주장해온 ‘최저임금 1만원’은 박씨와 노씨 같은 2인 가구 생계비(2015년·270만7573원)서 나온 수치다. 만약 시급 1만원으로 주 40시간 일하면 월급이 209만원이 된다. ‘최저임금 1만원’을 당장 실현하면 2인 가구 평균 생계비 충족률을 70%대로 끌어올릴 수 있다.

[1일 노동절]7명 중 1명 최저임금 미만…소처럼 일해도 ‘마이너스 늪’

60대인 박씨와 노씨는 ‘최저임금 1만원이 당장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묻자 모두 손주를 얘기했다. “할미할비 보러오면 못 사먹이니까 돌아가는 걸 볼 때 눈물이 나.”(노씨) “아들네도 형편이 어려워 손주들 헌 옷을 입히는데 학교 가기 전에 ‘똑똑한’ 옷 한 벌 사주고 싶어.”(박씨)

같은 질문에 30대인 이씨는 “결혼을 하고 싶다”고 했고 고교 시절 문학을 좋아했던 20대 김씨는 “돈 걱정 없이 책 읽고 글 쓰는 시간이 간절하다”고 했다.

인간은 ‘목숨부지’만 하며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미래를 꿈꿀 권리, 읽고 사색하는 시간, 사랑을 나누는 기쁨은 왜 최저임금 노동자에게는 허락되지 않는가. 빠른 시일 내의 ‘최저시급 1만원 달성’은 인간적인 삶을 조금이라도 누릴 수 있길 바라는 348만여 노동자들의 절절한 외침이다.

■최저임금 1만원 도입하면 영세기업 다 죽는다고?

[1일 노동절]7명 중 1명 최저임금 미만…소처럼 일해도 ‘마이너스 늪’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인상되면 소상공인·영세기업의 생존이 위태로워진다.’

최저임금 인상 논의 때마다 재계가 내놓는 주장이다. 정말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사업주들의 타격이 클까. 노동계에서는 일단 ‘공장, 점포가 다 문 닫는다’는 논리는 과장이라고 말한다. 민주노총은 “300인 이상 기업체와 공공부문이 책임지는 고용 비중이 최소한 60%(간접고용 포함)는 된다”고 밝혔다. 즉 이들 60%의 노동자는 최저임금 인상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사업주와 근로계약을 맺고 있다는 얘기다. 다만 나머지 40%의 노동자는 영세 사업주에게 고용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영세기업 재정난의 근본 원인은 원청(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에 있다. 소상공인의 생존 위협 역시 골목상권을 파고드는 유통재벌, 대리점·프랜차이즈 점포에 대한 모기업의 ‘착취’ 탓이 크다. 이 때문에 노동계에서는 불공정한 원·하청 구조 개선, 유통재벌 규제, 프랜차이즈 점포에 대한 ‘갑질’ 근절, 임대료 폭등 방지 등만 실현돼도 ‘상생’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사업주들도 이 같은 논리엔 공감한다. 하지만 “해결에 오랜 시간이 걸릴 것”(김대준 소상공인연합회 이사)이라는 입장이다. 오민규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전략사업실장은 “대기업의 갑질 등은 현행법으로도 충분히 바로잡을 수 있는데 방치돼 왔다”면서 “장기적 차원의 문제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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