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아비규환’ 이태원 핼러윈 데이···곳곳에 심폐소생술, 지인 못찾아 절규도

2022.10.30 01:40 입력 2022.10.30 15:59 수정

지난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 핼러윈을 맞아 인파가 몰려 대규모 인명사고가 발생, 인근 도로가 통제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지난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 핼러윈을 맞아 인파가 몰려 대규모 인명사고가 발생, 인근 도로가 통제되고 있다. 권도현 기자

29일 ‘핼러윈 데이’로 인파가 몰린 이태원 일대는 늦은 밤 압사사고로 2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29일 밤부터 30일 새벽까지 119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관들은 호흡 곤란을 호소하며 도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에게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했다. 소방관과 경찰관뿐 아니라 시민들까지 의식을 잃은 사람들의 가슴을 압박하고 팔다리를 주무르며 멎은 숨을 돌아오게 하려 안간힘을 썼다.

현장에는 수십대의 구급차가 차례로 주차됐다. 인근 병원으로 옮겨질 이송자들이 맨발 차림으로 정신을 잃은 채 차량에 실렸다. 심폐소생술로도 살리지 못한 인원 중 일부는 30일 오전 2시 무렵부터 구급차에 실려 인근 병원과 체육관 등으로 속속 옮겨졌다. 사상자들에 대한 인적사항 확인 절차도 동시에 개시됐다.

동행한 지인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해 길거리에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시민들도 보였다. 현장에서 만난 한 남성은 “1시간 정도 기절해 있다가 구출돼 기억이 없다. 일어나니 친구들이 없다. (친구) 3명이 연락이 안 된다”고 말했다. 지인으로 보이는 환자의 손을 붙들고 울부짖거나 놀란 마음에 서로 부둥켜 안고 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보고 연락이 두절된 가족을 찾아 심야에 이태원을 찾기도 했다. 이모씨(67)는 “장사를 마치고 집에 갔는데 서른다섯살 된 아들이 연락이 안돼 뉴스를 보고 왔다”며 “전화를 8통 했는데 연락이 안된다”고 했다. 비슷한 시각 용산구 순천향대학교병원에는 구조된 가족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찾아온 지인과 가족들이 있었다. 가족의 시신을 확인한 이는 주저앉아 울었다.

상대적으로 경미한 부상자들은 이태원역 인근에 모포나 옷가지 등으로 얼굴이 덮인 채 바닥에 누워 있었다. 사고 현장에는 어수선한 분위기를 보여주듯 인형, 머리띠, 마스크, 먹다 남은 닭꼬치 등이 어지럽게 널브러진 상태였다. 20대 남성 A씨는 “1시간 전쯤 사고를 당한 것 같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사상자가 계속 늘어나면서 구급차 출동이 지연되자 A씨는 지인의 오토바이를 타고 인근 병원으로 치료를 받기 위해 이동했다.

지난 29일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핼러윈 인명사고 현장에서 구급차들이 대기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지난 29일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핼러윈 인명사고 현장에서 구급차들이 대기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여기 사람이 죽어간다”···참혹했던 사고 순간

목격자들이 전한 사고 당시 참상은 끔찍했다. 20대 여성 B씨는 “내리막길에서 앞에 사람이 넘어졌다. 사람들은 계속 밀려들었다”며 “내 바로 뒤에 있던 사람이 토를 했다. 얼굴색이 금세 변한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20대 남성 이모씨는 “갑자기 앞에서 안 가니까 (사람들이) 밀기 시작했다. 너도나도 밀기 시작하니 중심이 쏠리다가 (쓰러지게) 된 것”이라며 “몸이 눌리면 숨이 안 쉬어지니 까치발을 들고 있었다. 옆에 있는 사람과 손 잡고 버텼다. 사람들이 ‘여기 사람이 죽어간다’ 외쳤다”고 했다.

구조돼 순천향대 병원을 찾은 남성 C씨(24)는 “현장에서 깔려서 다리를 다쳤다”며 “일행이었던 여성과 연락이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 D씨는 “(오후) 10시10분에 사고가 났는데 (10시)47분쯤 정신을 회복했다. 옆에 있는 사람이 계속 ‘정신 차리라’고 말해줬는데, 안 그랬으면 아마 살지 못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목격담이 올라왔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방금 죽다가 나왔다”며 “이태원 가파른 길 클럽 골목에서 나오는 길에서 위에 사람들이 밀었다. 초반에는 그래도 (공간이) 있었는데 시간 지나면서 (양방향) 대립 상태같은 느낌으로 위에서 밀었다”고 적었다. 또 “유튜버랑 연예인들이 와서 메인거리 차도가 꽉 막혔다”며 “사람들이 ‘꺄 연예인이다!’ 하고 쫓아감. 비키라고 소리지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도로) 중앙에서 셀카찍는 애들도 봤다”는 글도 올라왔다.

사고 당시 주변 업소들의 비협조가 사상자를 늘렸다는 성토의 목소리도 들렸다. 한 시민은 “술집들이 길거리에 테이블을 내놓아 들어오려는 사람과 나가려는 사람이 뒤엉켰다”며 “사람들이 쓰러지자 인근 가게로 대피했으나 마감 시간이라며 거리로 내보내는 바람에 더 큰 피해가 발생했다”고 했다. 다른 시민은 “좁고 난간이 있는 골목쪽에서 (부상자가) 많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되니까 턱이 있는 데로 올라갔지만 (업소) 가드가 막았다”고 했다.

29일 오후 10시15분쯤 소방에는 “압사해서 죽을 것 같다. 사람들이 10명 정도 깔려있다”는 내용의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자는 “사람들이 무질서하게 있어 다칠 것 같다”며 구조를 요청했다. 그 무렵 이태원 일대에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다수의 시민이 쓰러졌고 현장은 그야말로 사람들이 뒤엉켜 아비규환이 됐다.

코로나19 확산으로 3년 만에 많은 인파가 모인 핼러윈 데이의 참상은 예고된 인재였다. 29일 저녁 이태원 일대는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몰렸다. 경찰은 이날 오후 8시쯤부터 현장에서 계도를 했지만 소용 없었다. 이동희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회장은 경찰 단속 현장에 동행한 취재진에게 “작년에는 (오후) 10시 (이후 집합금지) 제한이 있었다. 지금 같은 경우는 3년 만이고 주말도 끼어 있어 역대 최고로 많은 인파”라고 했다.

눈앞에서 사고를 목격한 시민들은 충격을 받은 나머지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경찰과 소방 관계자들이 이태원역 인근에서 시민들의 출입을 통제했지만 일찌감치 몰려든 인파 때문에 통제가 쉽지 않았다. 몇몇 외국인들은 오가는 길을 막아선 경찰관들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핼러윈 데이를 맞아 각양각색의 코스튬을 입고 나온 시민들은 휴대전화로 주변 상황을 파악하다 한참 뒤에야 하나둘 현장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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