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게 떠넘긴 정신질환자 관리, 국가가 나서야”···정신질환자 가족들의 호소

2023.08.08 15:57 입력 2023.08.08 16:34 수정

정신질환 관련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정신질환 관련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분당 서현역 흉기난동’을 계기로 정신질환자 관리 문제가 대두한 데 대해 정신장애인 가족들은 “환자 관리를 가족에게만 맡겨놓은 것이 가장 문제”라며 “국가의 역할이 확대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가족이 정신질환자를 데리고 병원 문턱을 넘는 것부터 쉽지 않다. 병식(자신이 병에 걸려 있다는 자각)이 결여되는 경우가 많은 정신질환의 특성 때문이다. 정신질환 당사자·가족이 모인 단체 ‘심지회’의 배점태 회장은 8일 “정신질환 치료가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일반질환과 달리 정신질환자 본인에게 ‘치료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없기 때문”이라며 “환자 중에는 자신을 입원시키려는 가족과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도 많고, 가족들이 무리해서 입원을 시도하다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입원 결정은 대개 가족들의 몫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행정입원(지방자치단체가 강제로 입원시키는 것)은 전체 강제 입원의 12%에 불과했다. 경찰 소관인 응급입원도 많지 않다. 경찰이 소송 우려 등 이유로 꺼리는 탓이다. 대다수의 강제입원은 보호의무자(가족)에 의한 보호입원이다. 김영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위원장은 “강제입원의 90% 정도는 가족 동의에 의한 보호입원이고, 국가가 개입하는 경우는 10%도 되지 않는다. 사실상 국가가 손을 놓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가족들이 관리를 포기하면 이들을 치료할 방법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적정 입원 시기를 놓쳐 가장 가까운 가족이 위험에 처하는 일도 빈번하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존속살해 46건 중 12건이 정신질환자 범죄였다. 김 위원장도 조현병을 앓는 형과 40여 년을 같이 살면서 여러 번 폭력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는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각오를 하고 형과 함께 살고 있다”며 “정신질환자 관리를 가정에 떠넘기는 국가는 한국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가족들의 생명이 위협에 노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신질환자를 수용할 병원 인프라는 오히려 열악해지고 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 따르면 전국 정신병원의 병상 수는 2017년 6만7000여 병상에서 올해 5만3000여 병상으로 줄었다. 김 위원장은 “정신질환 응급입원 절차는 품이 많이 들어가고 난도는 높은 반면, 수가는 낮은 업무”라며 “병원에서도 굳이 돈이 안되는 환자를 맡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병상 수가 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국가의 역할이 확대돼야 한다고 했다. 배 회장은 “정신질환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게 문제다. 정신질환에 의한 폭력·살인 사건은 국가에서 막지 못해 발생한 것”이라며 “국가가 예산과 인력을 전폭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정신질환자의 가족이 환자를 돌보는 게 힘들어서 떠넘기려고 국가책임제를 주장하는 게 아니다. 가족과 환자 모두가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라고 했다.

강제입원 이후의 사후관리체계가 필요하다. 김 위원장은 “지속적 치료가 필요함에도 우리나라 정신건강 복지시스템은 점검 제도가 없다. 해외 같은 경우에는 임의로 치료를 중단할 시에 경찰이 출동하는 등 환자에 대한 지속적인 점검 제도를 구축하고 있다”고 했다.

배 회장은 “정신질환은 대부분 하루아침에 낫는 병이 아닌 경우가 많다. 재발 시 빠르게 입원 등 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며 “상급병원의 경우 응급 정신질환자 병상 수 등을 종합평가에 반영하는 등 의료 인프라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어 “사건·사고가 있을 때마다 특정 집단을 분류해 ‘위험한 사람’으로 낙인찍어서는 안 된다. 내 아들도 약물치료를 꾸준히 받으면서 사회생활을 잘해나가고 있다”면서 “정신질환자들도 제때 치료만 받는다면 문제없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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