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취업

2013.12.06 20:30
황현산 | 고려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예술가 친구들을 만나 당신이 애써 만들어낸 작품을 나는 어떤 방식으로 이해했다고 말하는 것이 평론가인 내 삶의 가장 큰 기쁨에 속한다. 게다가 딸이 연극배우가 되어 아직 병아리 수준이지만 이런저런 연극에 출연하기 시작하니 예술가들의 삶에도 관심이 많다.

[사유와 성찰]예술가의 취업

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예술가를 양성하는 학교에 다시 입학하던 날, 그 학교 총장 명의의 서신을 받았다. 어떤 재능을 지닌 사람이건 자신이 지원하는 기예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만 시간을 연습에 몰두해야 한다는 당부의 말이었다. 이른바 1만 시간의 법칙이다. 자기 재능을 끌어내어 작품으로 실현시키는 데 필요한 이 시간은 하루에 열 시간씩 연습한다고 쳐도 얼추 3년의 세월에 해당한다. 내 경우에도 비평가가 되기 위해, 갖가지 지식을 쌓는 시간을 제외하고, 내게 알맞은 문체를 만들어내고 작품을 보는 눈을 기르기 위해서만도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는 생각이 들어, 딸이 그 편지를 정성 들여 읽기를 바랐다. 한 사람이 예술가가 되는 이 3년 세월에는 깨어 있는 시간은 말할 것도 없고 잠을 자며 꿈을 꾸는 시간까지 오직 그 열망에 바쳐야 한다.

그런데 딸이 또 다른 이야기를 한다. 같은 길에 들어선 자기 친구들이 정작 괴로워하는 것은 그 연습의 고통이 아니라는 것이다. 연습의 고통이야 자기 길을 찾은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의 다른 모습이기도 하지만, 왜 자기가 그 일을 해야 하는지, 부모와 친척들을 설득하는 시간이 연습하는 시간보다 더 많다는 것이다. 연습에는 진전이 있지만 설득에는 진전이 없다.

물론 그 부모나 친척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나도 그 부모들과 같은 처지가 아닌가. 어느 부모나 제 아들딸이 내세울 만한 직업을 지니고 윤택하고 번듯하게 살기를 바란다. 아침마다 정장을 하고 직장에 출근하여 월말에 봉급을 받아오는 직업 이외의 다른 직업을 상상하지 못하는 부모들도 없지 않겠다. 아니 상상한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예술이 좋다는 말이야 늘 들어왔지만,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내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그 일을 왜 하필 자기네 아들딸이 해야 하느냐고 묻는 부모도 있겠다. 나만 하더라도 연극을 하겠다는 딸을 말린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순수 예술가로 성공할 수 있다고 예견되는 아이를 찾기보다 왕이 될 아이를 찾는 편이 더 쉽다는 드니 디드로의 말이 뇌리를 떠난 적도 없다. 재능이 있다고 해서, 노력한다고 해서,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 이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모의 마음과 선생의 마음은 다르다. 재능 있는 학생을 만난 선생은 그 고생스러울 삶을 안타까워하지만, 그의 결심을 격려하고 그를 훌륭한 예술가로 키우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그런데 한 국가에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은 어떤 것일까.

최근에 어느 예술대학에 교수로 재직하는 한 시인을 만났다. 이름을 말하면 이 글의 독자들이 다 알 만한 사람이고, 그의 제자들 가운데는 벌써 이 스승 못지않게 유명해진 사람들도 많다. 그가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한다. 학생들을 취직시키라는 학교의 등쌀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학평가에 취업률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야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예체능계의 취업률은 예외 사항이 되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그것은 4년제 대학에나 해당하고, 2년제 전문대학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전문대학은 전문직업인의 양성이 설립취지이니 취업률이 중요하다는 것이 관료들의 주장이라고 한다. 예술도 밥을 먹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니 밥벌이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직업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일까. 논의를 좁혀 문학에 관해서만 말한다면, 문학 관련 학과를 졸업한 많은 작가들이 출판계나 문화관련 직종에서 직장인으로 생활하기도 하지만, 한 문인이 취직을 하지 않는다면 그가 작가로서 성공했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글쓰기에 방해가 된다고 해서 교수직을 그만둔 작가들도 많다. 그들이 자기 모교에 불명예를 안겼는가. 대통령이 어디선가 가수 싸이를 창조경제의 모범으로 꼽았다는데 싸이가 4대 보험 직장인인가.

나는 창조경제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없지만 창조를 모른다고 할 수는 없다. 정장을 하고 4대 보험 직장에 출근하는 것만이 취업이 아니란 것을 아는 것이 창조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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