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요리사

2014.11.27 21:25 입력 2014.11.27 21:49 수정

오래된 식당을 찾아서 먹고 마시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 한 그릇의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도 사람이 만든 오랜 역사에 내가 참여하기 때문이다. 박물관에는 역사가 있지만, 내가 그곳의 주인공이 된다는 기분이 들지는 않는다. 전시와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간격이 존재한다. 그곳에서 애쓰는 분들에게는 송구하지만, 화석처럼 여겨질 뿐 생명력 있는 공간이 되기는 힘든 것이다. 그러나 식당은 아무리 오래되었어도 박제는 없다. 이 공간과 파는 음식, 수저를 드는 사람들이 모두 그대로 하나의 생생한 역사다. 단돈 몇 천원을 내고 내가 바로 역사가 되는 흥분을 맛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오래된 식당을 찾아 한 술의 밥을 뜬다. 그런 식당을 노포라고 부르고, 경의와 애정을 바친다. 두어 해 동안 집중적으로 그런 식당을 찾아다녔다.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노인 요리사

지금 대한민국은 거대한 음식 전쟁터다. 온갖 기업들이 돈보따리를 펴고 식당을 연다. 취업이 어려우니 청년창업이 식당으로 몰린다. ‘사오정’과 ‘오륙도’의 종착역도 식당이다. 이런 판국에 노포 식당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는 그것이 노인문제의 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오래된 식당의 공통점 중의 하나는 숙련된 노인 노동자들이 있다는 점이다. 요리사든, 홀의 지배인이든 말이다. 그들은 정년도 없다. 칠십, 팔십까지 기운이 남아 있으면 일한다.

우래옥의 김지억 전무는 여든넷의 연세로 지금도 홀에서 일한다. 물론 고용 노동자다. 해장국 명가 청진옥과 남대문 냉면집 부원면옥의 주방장도 사십년차다. 우스운 얘기지만, 부원면옥의 홀 ‘알바’는 중년에 들어와 할머니가 된 오늘까지 이십년차가 넘었다. 출산율이 떨어져서 난리다. 그렇지만 우리 노동시장은 아직까지 노인이 있다. 청진옥의 최준용 사장은 젊다. 그가 아버지의 대를 이어 가게를 맡고는 노인 노동자들을 일부 정리하려고 했다. ‘굼뜬 동작이 불만’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계속 일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노인의 경험과 지혜가 있어요. 동작은 느리지만 군더더기가 없고 완벽해요. 우리 식당은 노인들이 만드는 곳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수십 년 경력의 노인 요리사들은 정확하고 일관된 맛을 낸다. 잘되는 식당의 영업비결 중 하나는 변하지 않는 맛이다. 이런 숙달되고 일관된 일은 노인들이 잘한다. 감정의 동요도 적고, 숙련도도 높다. 인터넷에서 할머니나 할매집이라는 상호의 식당을 검색하면 수십, 수백 개가 뜬다. 할머니 손맛의 비결은 바로 그 오랜 노동에서 숙련된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외국에 가니, 나비넥타이 맨 할아버지 할머니가 서빙과 요리를 하더라, 라며 신기한 구경거리 본 듯 말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서 그들을 부러워한다. 그럴 필요없다. 우리 노포들에 가면 그런 광경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들의 굽은 등, 느린 동작에 대해 우리는 존경을 바쳐야 한다. 그들이 일구어온 맛을 우리가 여전히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중구 주교동 우래옥에 가면 지팡이를 짚고 손님을 맞는 노 ‘웨이터’를 볼 수 있다. 그 집에서 먹는 냉면 맛이 각별하리란 건 두 말 해서 무엇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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