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볜음식은 한식인가

2014.12.11 20:49 입력 2014.12.11 20:57 수정

1993년의 일이다. 어쩌다가 중국 옌볜에 가게 됐다.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 당시 옌볜은 조그마한 도시였다. 조선족이라고 불리는 우리 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어 감회가 큰 지역이었다. 나이든 한국사람들이 방문해 특별한 감회가 있었다. 바로 잃어버린 과거가 있기 때문이었다. 밥 짓는 연기를 뿜는 굴뚝, 구들장, 할머니들의 손맛, 페인트로 쓴 가게 간판과 낡은 운동화의 소년들….

어제는 옌볜 음식을 다루는 한 세미나에 다녀왔다. 옌볜의 음식을 한식의 카테고리에 넣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를 떠나 넓게 보면 민족 음식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였다. 특이한 것은 옌볜 음식의 오늘에는 한식의 영향이 컸다는 사실이다.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일하고 귀국, 한식의 요리법이 현지 음식에 접목되었다.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옌볜음식은 한식인가

그런데 현지 조선족 식당을 찾는 손님의 다수는 한족(漢族)이라고 한다. 한식 스타일이 가미된 조선족 음식을 본토의 중국인들이 즐기고 있는 셈이다. 시식회도 열렸다. 옌볜 음식은 세 가지 성격이 있다. 그들의 선조가 처음 건너간 19세기 중반 이후 끈질기게 지켜오고 있는 조선의 음식, 중국 한족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음식, 그리고 한식과 관련된 음식이다. 나는 그중에 조선의 음식에 관심이 갔다. 어쩌면 잃어버린 한국 음식의 뿌리가 거기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였다.

조선족의 대다수는 함경도와 평안도, 경상도 출신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면과 감자요리, 증편 같은 경상도 요리가 아직도 인기를 끌고 있다. 냉면은 평양식과 다르게 육수에 간장을 타고 양배추를 얹어 낸다. 온갖 면 요리의 왕국인 중국에서 10대 면에 이 옌볜 냉면이 꼽힌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 냉면이 이룩한 위대한 성과다.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옌볜음식은 한식인가

최근 옌볜을 비롯한 중국 동북3성의 조선족 숫자가 크게 줄었다고 한다. 다수가 한국에 와 있기 때문이다. 근래의 통계는 자못 놀랍다. 한국 요식업 인구의 40%쯤을 조선족 동포가 채우고 있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과거에는 요리보조를 주로 하던 조선족들이 이제는 요리사 몫도 감당하고 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조선족 동포들의 솜씨로 밥을 얻어먹고 있다. 넓게 보면 이미 우리 음식물의 생산현장, 즉 농사와 어로는 외국인의 가담이 없으면 지탱하지 못할 단계에 왔다. 낮은 보수와 열악한 노동 현장, 전망 없는 일에 누구도 뛰어들려 하지 않는다.

이탈리아는 피자와 파스타의 나라인데, 이미 그것을 만드는 이들은 다수가 외국인이다. 유명한 미슐랭 별이 달린 고급 식당이라면 모를까 평범한 밥집 일을 하려는 현지 젊은이들이 드물기 때문이다. 조선족뿐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낮은 출산율로 더 이상 우리는 충분한 노동력을 공급하지 못한다. 그들은 우리 음식을 만들면서 동시에 새로운 음식 문화를 전파할 게 틀림없다. 이미 조선족이 퍼뜨린 양뀀집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요식업소가 되지 않았는가. 우리 음식 문화는 바야흐로 새로운 세기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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