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하늘 공활해도 탁하고 매우니

2017.09.15 20:52 입력 2017.09.15 20:55 수정
김인국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

[사유와 성찰]가을 하늘 공활해도 탁하고 매우니

물이나 공기나 웬만하면 걸러 마시는 형편에 새삼 하늘과 땅의 누추한 현실을 탓해서 무엇하랴만 오랜만에 비행기에서 우리 하늘을 내려다보고 깜짝 놀랐다. 언제나 맑고 푸른 창공인 줄로만 알았는데 어제도 오늘도 그저 탁하기만 하다. 황사의 공습에 시달리는 봄은 아예 접어두더라도 유난히 비가 많았던 여름 사나흘쯤 파란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을 보았을 뿐, 가을이 왔는데도 오래된 포장도로처럼 칙칙하다. “누가 하늘을 보았는가” 하고 묻던 그 쪽빛 하늘은 좀처럼 만나기 힘들어졌다.

자고로 우리 겨레의 수심정기(守心正氣)는 하늘을 통해서 이뤄졌다. 하늘을 우러를 때마다 부끄러워했고, 차마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을 때는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쳐지고 파란 바람이 부는 우물”이라도 들여다보며 마음을 살폈다. 그런 하늘도, 우물도 다 잃어버렸으니 어디를 향해서 마음 맑게, 기운 바르게 할 수 있으려나.

흐린 하늘이나마 제발 조용하기를 빌어 보지만 스멀스멀 화약내가 진동하고 있다. “하늘을 보면 눈물이 흐르고, 땅을 보면 한숨만 쏟아지는 나날”이라고 하던데 다들 비슷한 심정이리라. 그런데 역사상 가장 진화한 철학으로 눈부신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던 것은 어둑하고 답답한 암울의 때였다. 최근 이백년 안팎에서는 서학과 동학 공동체가 대표적이다. 하나는 건너편 서쪽에서, 다른 하나는 여기 동쪽에서 떠오른 지혜인지라 각각 서학이며 동학이었다지만 사실 한 뿌리에서 피어난 같은 꽃이었다.

우선 서학이나 동학이나 ‘하늘의 임’을 받들었다. 천주나 한울이나 이름부터 같았다. 둘 다 자기 안에 귀한 하늘이 있는 것처럼 다른 존재들 안에도 하늘이 있음을 말했다. 당연히 사람에 대한 일체의 차별을 거부했다. 둘째, 하느님 나라 혹은 개벽세상을 꿈꾸며 사람이 사는 사람의 나라를 목말라 했다. 셋째, 똑같이 유학을 정학으로 삼는 지배계급에 의해 사학(邪學)으로 불렸고,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반역의 무리로 여겨졌다. 그 결과 대대적인 탄압과 끔찍한 박해에 시달렸다.

어째서 동학과 서학은 그리도 미운 놈들이었을까? 이유는 하나, “모두가 높아지기만 하면 이 세상이 온전히 돌아갈 수 있겠느냐?”는 불안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밤낮으로 궂은일을 감당해줘야 글 읽는 선비와 다스리는 임금이 있을 수 있는 바, 이를 부정하는 것은 근간을 흔들고 법도를 무너뜨리는 위험한 짓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백성이 근본이라고는 하지만 어진 임금과 신하들이 없다면 너희가 하루라도 편하게 지낼 성 부르냐?” 이것이 하나부터 열까지 남의 수고에 기대서 살아가던 양반들의 세계관이었다. 이런 생각은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만일 서학과 동학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일치시키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늘에만 계시는 하느님이니 낮은 데서 사는 사람에게 행하는 사랑을 별개로 알고, 서로 높이고 섬기는 거룩한 나라를 이 땅에 세울 엄두를 내지 않았다면 무난히 유학의 하위체계로 편입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신앙이란 “모순덩어리의 세상에 의문을 갖는 일이었으며 올바른 것을 찾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용기를 내는 일이었다. 그것이 하나뿐인 목숨을 바쳐야 하는 일일지라도.” 결국 동학과 서학은 내내 쫓기다가 마지막에는 신동엽이 말한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요”의 주인공들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훗날 둘의 운명은 달랐다. 장장 백 년에 걸친 박해 동안 만 명이 넘는 신자들과 신부, 주교들의 목을 내놓고서야 1866년 신앙의 자유를 얻고 산에서 내려온 서학은 슬그머니 현실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매 앞에 장사가 없다고 했으니 이해할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하필 그즈음이 백성의 형편이 폭발 직전의 때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두고두고 미안하고 부끄럽다. 그냥 놔두었다가는 나라가 망하게 된 것을 직감한 동학 지도자들이 광제창생과 보국안민의 깃발을 준비하던 1892년, 신생 천주교회는 궁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조선 최초의 성당을 짓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일 서학의 후손들은 순교로 빛을 밝힌 신앙선조들을 기리는 대축일 미사를 봉헌한다. 죽어간 사람들뿐만 아니라 죽이는 데 혈안이 되었던 그 시대의 야만과 함께 오늘의 무자비한 폭력에 스러지고 있는 약자들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날. 무엇보다 우리의 마지막 남은 하늘과 우물은 서럽고 막막해서 쏟아내던 통한의 눈물임을 되새기며 그 눈물로 상대방의 처지를 헤아려주는 날이다. 정부의 인도적 대북 지원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그럴 것 없다. 눈물로 살피면 우리는 다 같이 하늘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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