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의 피해자는 누구인가

2017.09.29 21:10 입력 2017.09.29 21:20 수정
법인 스님 대흥사 일지암 주지

[사유와 성찰]거짓말의 피해자는 누구인가

불자들이 늘 독송하는 <천수경>은 관세음보살에게 올리는 기도문이다. 기도문은 ‘정구업 진언’으로 시작한다. 입으로 지은 허물을 정화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릇에 더러움이 가득 차 있으면 맑은 물을 담을 수 없는 법. 그래서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듣고 응답하는 관세음보살에게 다가가기 전에 정직한 자기 고백이 먼저인 것이다.

또 기도문에는 행위와 언어, 의도로 지은 열 가지 허물을 고백하고 참회한다. 그중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신을 속이고 이웃을 아프게 하는 말은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거짓말이다. 없는 일을 있다고 하고, 있는 일을 없다고 하는 등 사실을 속이는 말이다. 둘째는 왜곡하는 말이다. 화려한 언사와 교묘한 논리로 어떤 사실과 행위를 축소하고 과장하고 초점을 흐려놓고 시선을 돌리게 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셋째는 상황에 따라 말을 달리하는 허물이 있다. 이곳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저곳에서는 다르게 말하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상대를 분열시키는 경우를 말한다. 넷째는 차마 들을 수 없는 욕설과 모욕적인 언사로 이웃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말이 있다. 위의 지적이 우리는 낯설지 않다. 그만큼 일상에서 자주 경험하고 내 자신이 저지르기 쉽기 때문이다. 권력과 돈을 얻고자, 혹은 자기 과시를 위하여 거짓말과 허영의 말들은 내면화되고 사회화되어 있다.

근자에 들어 정치권을 비롯하여 사회 곳곳에서 말로 짓는 허물의 실상을 보고 있노라면 더없이 우울하고 씁쓸하다. 이른바 적폐라고 하는, 차라리 치졸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지난 시절 국가기관의 숱한 파렴치한 행위들은, 인간이 과연 이성을 가진 존재인가에 대해 회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간 국가정보기관이 돈을 주고 댓글 공작과 시위를 조정한 의혹에 대해 그들은 꾸준히, 한결같이, 당당하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증거와 함께 하나하나 사실이 드러나니 이제는 마지못해 ‘그렇다’라고 말하고 있다. 거짓, 왜곡, 분열의 말들은 역사 앞에 그 과보를 받고 있다. 한 치 앞을 못 보는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그런데 드러나는 거짓 앞에 부끄러워하고 고백하기보다, 외려 거짓을 거짓으로 덮고 시선을 돌리려는 거짓말을 서슴없이 행하는 자들이 있다. 최근 어느 야당 대표의 노무현의 자살에 대한 발언이 그렇다. 정치인들의 발언을 보고 있노라면 거짓과 말 바꾸기와 선동을 어찌 그리도 진지하고 엄숙하게 하는지 보기가 민망하다. 자기 정당화의 당당함 앞에 실소와 냉소를 금할 수 없다.

이제는 세상을 떠난, 한때 국회의원을 지낸 이주일씨의 말이 생각난다. 코미디언과 정치인의 같은 점은 한마디로 ‘웃긴다’는 것이다, 다른 점은 코미디언은 대중을 웃게 하고자 짐짓 웃기고 정치인은 진지한 태도로 진심을 담아 웃긴다는 것이다. 코미디언의 말들은 사람들에게 유쾌한 웃음과 좋은 기분을 선물하지만 정치인들의 말은 슬픔과 허탈을 준다.

거짓말이 주는 해악은 치명적인 독과 같다. 거짓말로 인해 타인이 받은 고통은 새삼 거론할 여지가 없다. 우리는 거짓말의 또 다른 피해자는 거짓말을 하는 바로 그 자신이라는 성찰이 필요하다. 왜 피해자인가? 거짓말을 행하는 자의 거짓말이 드러나서 그가 불신과 외면을 받는 과보가 따르기 때문이다.

인과응보는 거짓말을 하는 자와 당하는 자의 관계로 드러난다. 그런데 이는 매우 상식적이고 도덕적인 교훈이다. 이런 불이익의 과보 때문에 사람은 거짓말을 해서는 안되는 것일까?

보다 다른 시선에서 보자. 경전에서는 ‘행위가 곧 행위자’라고 말한다. 풀이하면, 거짓말을 하면(행위) 거짓말쟁이(행위자)가 되는 이치다. 행위와 행위자의 사이는 조금의 간극도 없다. 즉시다. 두 번 거짓말 하면 즉시에 두 번 거짓말 하는 사람이 된다. 여러 번 거짓말 하면 그는 전신이 거짓말 덩어리가 된다. 쌓이고 쌓여 마침내 그의 마음과 정신이 거짓으로 굳어지고 삶은 온통 거짓으로 이어진다. 자신이 저지른 허물의 과보가 자신의 내부에서 악순환을 거듭하게 된다. 그렇게 전신이 거짓으로 탈바꿈되면 그는 자가당착에 빠진다. 매사 거짓말을 하면서도 자기가 옳다고 스스로 여긴다. 자기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거짓말을 생산한다. 리언 페스팅이 말하는 인지부조화에 이르게 된다. 세간의 상식과 사실에 맞추어 말과 행동을 하기보다 자기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스스로 자연스레 자신의 생각을 조정하고 말을 한다. 자기가 자기를 속이고, 자기가 자기에게 속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이야말로 거짓말의 최대 피해자가 아닌가. 슬프고 무서운 일이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