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상하귀천

2018.08.22 20:50

처서(處暑), 더위가 그친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날빛 쨍쨍한 동안의 더운 기운이 9월 상순까지 아주 사그라들 리가 없다.

[직설]여름 상하귀천

처서를 지나서도 이어지는 더위는 한반도에서 살다 간 옛사람들에게도 견디기 힘들었다. 한겨울에 강 한가운데서 캐, 초가을까지 석조 또는 목조 빙고(氷庫)에 보관한 얼음 한 조각이 그나마 구원이었다. <삼국사기> 등에 남은 신라시대 여름 얼음의 기록, 고려시대 ‘반빙(頒氷)’의 기록 등은 유구한 이 땅의 더위를 증거한다. 반빙이란 여름부터 입추 앞뒤로 관리나 퇴직 관리에게 사흘, 이레, 열흘 주기로 얼음을 나누어 주는 일이다. 조선시대에는 관리뿐만 아니라 성균관 학생, 환자, 투옥된 죄수에게도 얼음이 돌아갔다. 그때 한여름의 얼음이란 입만 즐겁자고 먹는 식료일 수가 없다. 몸의 열기를 식히고, 더위에 잃은 정신을 돌아오게 하는, 온열질환에 쓰는 약이었다.

이 귀한 얼음을 즐겁게 먹어치운 사람들도 물론 있다.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의 시 ‘착빙행(鑿氷行)’ 가운데 한 대목이 이렇다. “으리으리한 집에서는 오뉴월 푹푹 찌는 날(高堂六月盛炎蒸)/ 미인이 하얀 손에 얼음을 내어 와(美人素手傳淸氷)/ 장식 아로새긴 멋진 칼로 얼음을 깨 여기저기 드리니(鸞刀擊碎四座)/ 느닷없이 대낮에 안개처럼 부서지는 새하얀 얼음 가루(空裏白日流素霰)”

오늘날 동아시아에서도 유명한 한국식 빙수의 원형이 여기 있다. 힘있는 사람들을 위한 빙수의 원형, 또는 얼음 음료에 관한 조선시대의 기록은 여기저기 보인다. 얼음을 이만큼 쓰는 사람들이 여기서 그칠 리 없다. 냉장냉동 시설 없던 시절 여름이란 보통 사람들에게는 변변한 식료를 마련하기 어려운 철이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있는 사람들은 참 잘 먹었다.

19세기 양반가에서 전해진 조리서인 <시의전서(是議全書)>의 ‘외장아찌’ ‘무장아찌’ 조리법을 보자.

오늘날의 한국어로 풀어 읽으면 이렇다. 먼저 어린 오이의 속을 파내고 젓가락 윗마디만큼 끊고 닷 푼(약 1.5㎝) 길이로 정리한다. 이것을 잘 묵어 농도 짙고 감칠맛도 더한 진장에 절였다가 두세 번 달인다. 여기에 가늘게 썰어 두드린 쇠고기를 넣고 볶는다. 그러고는 표고버섯, 석이버섯, 고추, 파, 마늘을 채 썰어서 더해 맛을 낸다. 끝으로 참기름과 깨소금으로 마지막 양념을 한다. 무도 마찬가지로 다룬다. <시의전서>에 따르면 이야말로 “하절(夏節) 반찬 진품”이었다. 반찬이라니, 오늘날의 눈으로 보아도 일품요리 한 접시 아닌가.

또 다른 19세기 조리서인 <음식책(飮食冊)>을 보면 여름에 더 신이 나는 듯도 하다. 여름철 웃기, 곧 음식의 장식으로 쓰는 음식 또는 식료는 병과와 식물 둘로 구분된다. 병과로는 방울 모양으로 앙증맞게 빚은 증편, 깻가루에 굴린 인절미, 주악을 쓰라고 했다. 식물로는 연꽃잎, 국화잎, 승검초잎, 석이버섯을 들었다. 연꽃잎을 쓰고 싶은데 시기를 놓쳐 못 쓰게 되면 장미꽃잎으로 대신하라는 부기도 남겼다. 이렇게 준비해 교자상 한 상을 차릴 때, 색색을 맞추어 꼬치에 꿴 전인 화양누르미, 편육, 담쟁이잎을 깔고 찐 뒤 잣가루로 장식한 우무, 여름 채소 만두 등을 곁으로 놓고는 닭찜 또는 생선찜 또는 추포탕을 반드시 일품요리로 준비한다. 음료로는 수정과나 보리수단이 뒤따른다.

이는 어디까지나 그렇게 식료를 구하고, 이만큼 요리를 해낼 수 있는 사람들의 기록이다.

정약용은 여름철 농민의 식생활을 “상추쌈에 보리밥을 둘둘 싸 삼키고는(葉團包麥飯呑)/ 고추장에 파뿌리 곁들여 먹는다(合同椒醬與)”라고 했지만 이쯤이면 그래도 꽤 잘 먹은 편이다. 홑으로 고추장이 서민대중에게 으뜸가는 별미였고, 반찬으로는 오이와 부추와 무가 여름에 그저 무난했다. 간장도 귀해서 채소에 찔끔 뿌려 먹거나 그마저 안되면 소금으로 숨을 죽여 먹는 수밖에 없었다. 참외만은 서민대중에게도 돌아갔지만 유실수에서 거둔 잘 익은 과일은 도성 사람 차지였다. 복달임도 별것 없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논이나 둠벙의 미꾸리, 천렵으로 거둔 민물 잡어가 가장 만만한 단백질원이었다. 얼음, 얼음 음료, 과일, 장식용 꽃잎이란 거둘 겨를도 먹을 여지도 별로 없었다. 진부한 말이겠지만 구체제와 프랑스대혁명을 아울러 겪은 프랑스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이 남긴 한마디가 새삼스럽다.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 주면,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 주겠다.”

한여름 하늘 아래, 얼음과 꽃잎과 과일을 기다리던 사람이 살았고, 고추장에 파뿌리가 고마운 사람이 살았다. 여름은 이전에도 상하귀천을 갈랐다. 갈라도 이렇게 극명히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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