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벌주의에 반대한다…하지만

2018.08.29 20:54 입력 2018.08.29 20:59 수정

기본적으로 엄벌주의에 반대한다. 가정폭력·학교폭력 등에 노출된 이들이 모두 일탈 행위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 범죄자가 강도 높고 지속적인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떤 환경은 특정 행동이 도출될 가능성을 높인다는 뜻이다. 좋지 못한 환경에서 자라나 범죄자가 되었다면, 그들의 불운을 고려해 적어도 한 번의 기회는 더 줘야 한다고, 사회 시스템으로 교화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론 재판장에서 너무 잔인한 말을 하는 이, 스스로 정의롭다고 생각하며 심판관을 자처하는 이를 목격할 때 느껴지는 반감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특정 개인을 ‘욕받이’로 쓰면서 분노의 감정을 급하게 소모하다보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양분으로 쓰일 분노가 줄어든다는 점을 우려한다.

[직설]엄벌주의에 반대한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호한 징벌이 필요한 범죄는 있다고 생각한다. 성범죄가 그중 하나다. 특히 상대에 대한 악의로 성관계 영상을 온라인에 유포하거나, 혹은 아예 업자가 되어 모텔·여성화장실·탈의실 등을 불법촬영한 뒤 유포해 돈을 버는 디지털 성범죄자 및 동조자들에게 죄의 무게를 실감하게 만들 수단이 미비하다는 점에 개탄한다.

나는 목격하고야 말았다. 피해자의 자살 소식을 “유작” 운운하며 농담처럼 전하고 낄낄대는 광경을. 성관계 동영상뿐만 아니라, 여자화장실 불법촬영물마저 “딸감”이라며 유통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이런 영상들이 이미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매일 새로운 영상이 업로드되고 있었다. 그것이 몇 년 전의 일이다.

불법촬영물로 돈을 쓸어 담아온 이들이 형성한 그물망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이다. 불법촬영물 유포자와 웹하드 업체가 ‘3 대 7’로 수익을 나누며 공생해오고 있었다. 웹하드, 필터링 업체, 영상물 삭제 업체는 모두 한통속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피해 여성의 영상으로 유저들의 유료결제를 유도하고, 그것으로 광고 수익을 창출하고, 피해자가 알고 접촉해오면 삭제를 약속하며 돈을 뜯어내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면 다시 불법촬영물을 올려 또 돈을 벌고, 지워준다며 피해자에게 돈을 거듭 뜯어내고….

절망한 피해자가 스스로 삶을 끝내도 영상은 남는다. 죽어서도 벗어날 수 없는 촘촘한 착취의 그물이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불법촬영 피해자 대다수가 여성이고, 가해자 98%는 남성이었다. 여성이라면, ‘몰래’ 사용되는 변형 카메라가 사방에 널려 있고 죄의식 없이 ‘몰카’를 소비하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이 나라에서는 언제든지 성적으로 착취될 수 있다는 뜻이다. 지성인이라면 이를 보고도 “페미니즘은 정신병이다”라고 말할 수 없다.

호기심에 몇 번 본 것까지는 이해해보자. 한국은 모든 포르노가 불법인 나라니까. 다른 나라에서 합법적으로 촬영된 영상이든 국내에서 불법으로 촬영된 영상이든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며 소비한 것조차 그렇다 치고 넘어가보자. 하지만 피해자들의 고통과 영상의 비윤리성이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뒤에도 계속 소비해왔다면 그것은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일 아닐까? 여러 언론사에서 이 주제를 주요하게 다룬 지 오래고, 이 주제를 파헤친 탐사보도 프로그램과 토론 프로그램이 잇따라 방영됐다. 수만명의 여성들이 거리로 나와 폭염을 견디며 변화를 외쳤던 여름을 건너온 지금 시점에서는 더욱 변명의 여지가 없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는 이미 차고 넘치게 주어졌다.

2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웹하드 카르텔과 디지털 성범죄 산업에 대해 특별 수사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에 서명했다. 여성착취 성산업 근절에 넓은 포복으로 다가가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 당국은 변형 카메라 신고제 도입과 더불어, 디지털 성범죄 촬영물 유포자·웹하드 운영자 그리고 소지자까지 ‘엄벌’에 처하도록 하는 조항의 신설을 진지하게 검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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